지식채널의 김진혁PD는 인상적인 말을 했습니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5분을 채우기 위해 나머지 23시간 55분을 미련 없이 살아왔지만,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5분이라는 짧아보이는 시간에, 가득한 밀도를 채워왔던 지식채널e, 책으로 만나보니 또 한 번 새로운 느낌이 있습니다. 자세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엿보였습니다. 40꼭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인상적인 대목 몇 개만 소개해도, 이 리뷰는 충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올림픽 마라톤 최초로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수년 후, 아베베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마라토너에게 달릴 수 있는 발이 없다면, 이건 너무 가혹하고 치명적입니다. 아베베는 말합니다. "더 이상 내 다리는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아직 두 팔이 있다" 그래서, 장애인 대회에 참가한 아베베는 또 다시 메달을 획득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달렸던 남자, 고통과 괴로움에 지지 않으려고 달리는 남자, 아베베. 늘상 변명부터 하는 나약한 우리의 마음에 통렬한 한 방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노력하고 있는가요?
저자 : EBS 지식채널 e / 출판사 : 북하우스
출간 : 2007년 04월 09일 / 가격 : 12,800원 / 페이지 : 351쪽
물론 가볍고 흥미로운 주제들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쇼핑의 법칙 대목은 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 경우, 방을 한 번 돌아보면, "대체 이걸 그 때 왜 샀을까?" 싶은 게 있습니다. 당장에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질렀던 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름신에 대하여, 반성을 해볼 지언정, 지나치게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식e에서는 "물건 구매행위의 80%는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라며, 쇼핑의 법칙을 적나라하게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쇼핑이라는 것은, 패배가 예정된 게임일 수 있다며, 한 발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선을 지혜롭게 이야기 해줍니다.
대부분의 쇼핑센터에서는 시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가격표에는 유달리 9자가 많이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이게 사실인지 궁금증이 문득 들었습니다. 포털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X마켓에 가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정말로 9자가 많이 보입니다. 망고 씨드 크림은 꼭 900원으로 뒷자리가 끝나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9 입니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확실히 제품 가격표의 절반 넘게 9자가 들어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쇼핑의 치명적 유혹 앞에서, 사방에 멋진 것이 보이고, 무의식 상태에서 물건을 결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비교적 소비를 즐기지 않는 저도, 한번쯤 사고 싶은 물건을 바라보기만 해도, 괜히 흐뭇해 질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순간 지름신에 굴복했다 해도, 너무 자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쇼핑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소비자가 지기 쉬운 승부이며, 우리는 유혹당하고 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네요. 하기야 쇼핑 패턴 분석을 위해 통계기법을 비롯해서, 각종 심리적 전략까지 동원되고 있는 시대니까요. 결론! 눈요기라 할지라도 쇼핑하는 시간을 줄이고, 생각하는 시간을 늘린다면, 적어도 불필요한 구매는 확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헐, 쇼핑 이야기로 너무 길어졌군요! 다른 이야기를 또 꺼내보면,
왕따 문제와 자살 충동에 관련된 무거운 주제도 있습니다. 아주 묘하게도 9.1%의 학생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이중적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이 경우 자살률이 일반 학생의 무려 2.8배나 된다고 합니다. 비교적 냉정하게 책에선,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해자 역시 심각한 정신 장애를 겪는다" 라고 써놓았습니다. 또한, 저는 이 내용을 직접 지식채널 영상에서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이 뒤늦게 아주 인상적인 까닭은, 인간이 가진 거울 뉴런의 효과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가령 "공을 찬다" 라고만 말해도, 벌써(!) 거울 뉴런은 발화된다고 합니다.
약간 다른 방식으로도, 거울 뉴런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가 비교적 확신하는 게 있는데, "먼저 호의적으로 대했을 때, 상대방이 적대적으로 받아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또한 저는 예쁘게 미소 짓는 얼굴에 약합니다. 명랑하고 잘 웃는 사람이 좋습니다.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도 거울 뉴런의 효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놓고 볼 때, 만약 인간이 타인을 지독하게 괴롭히고, 정서적으로 붕괴되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면, 우리가 제정신이라면 "비슷한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힘든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게, 거울 뉴런이 가진 놀라운 대목입니다. 뭐, 가끔 사이코패스 같은 정신 나간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은 우리가 남을 괴롭게 하면, 적잖게 불편해 합니다. 옛날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살펴봐도, 회초리를 들고 아이를 때리다 보면, 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악랄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정서는 상처입고 황폐해져 간다."
타인에 대한 친절, 저는 이 짧은 단어야 말로, 정말 사람이 사람 답기 위한, 중요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속 0km의 고찰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21세기 인류는 음속의 8배라는, 시속 8,000km까지 성취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최고 속력은, 불과 시속 36km가 한계이지만, KTX만 해도 최고 350을 능가합니다. 빠른 것이 어느 때보다 추앙받고 있지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시속 0km로 서 있는, 스스로 영양분을 섭취하고 만들어내는 나무라는 존재는 대단히 독립적인 생명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는 폐허가 된 땅에서도 태양, 물, 이산화탄소의 동력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빠른 속도를 위해서,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식e 에선, 인간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종속적인 생명체가 아닐까 라고 강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 (당시 8만여명 즉사) 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숙고해 보면서, 독립적으로 서 있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가 싶었습니다.
최근 저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자가 발전 시스템을 구축해서,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신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곤 합니다. 어떤 외부적인 기준, 예를 들어, 평판 높은 직업, 충분한 보수, 바라던 것의 구입 을 달성한다고 해도, 처음에는 즐겁다가도, 이내 또 다른 것을 욕망하거나, 뒤늦은 공허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더 빠르게,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 그 중 하나는 내면의 기준을 좇아가는 것, 따라서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름을 남기려는 욕심, 명예를 높이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삶이 더욱 독립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는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님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적 명함을 다 떼어버리고 나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신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무엇보다 빛나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그것을 실행하며, 인생을 기쁘게 살다가 죽음 앞에 선다면, 별로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지식e 책은 서론부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비어 있는 공간, 마음을 낮게 하는 것" 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선택을 하며, "나답게", "환경을 주체적으로 조정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비유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빈 그릇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폭과 깊이도 얼마든지 스스로가 그려나갈 수 있고요. 또한, 자신의 인생 여정에 무엇을 담아볼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고, 또 책임져야 합니다. 주변에서 "야 빨리 부어" 라고 떠든다고, 인생에 아무거나 담고, 남이 시키는 것을 담아서 살아간다면, 저는 그 인생이 안타깝고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느리면 뭐 어떻습니까, 스스로가 결정해서, 꾸준히 실행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발견해 나간다면, 그것 만큼 유쾌한 일은 없지 않을까 싶네요. 솔직히 고백컨대, 저는 어린 시절 너무 늦게 가는게 아닐까, 진짜로 하고 싶은 건 왜 나타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실망하곤 했습니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야 이 문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은 우리에게 무작정 더 열심히 뛰고, 이게 현실이니 종속적인 삶을 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늘 덧붙일 것입니다. 남들처럼 안 뛰면 결국 뒤쳐지고, 낙오되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남이 시키는 대로, 착하게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사회가 원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선택한, 하고 싶은 일을 누구보다 잘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비전을 그려내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가능할테니까요.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