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인생의 끝에서 다시 만난 것들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1. 19. 18:23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다. 그래도 괜찮다. 단지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거다. 일단 시작하기만 한다면, 어느새 세상은 더 좋은 곳으로 바뀌어 있을 테니." 레지너 브릿의 이 따뜻한 책은 기적에 관한 이야기 이며,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큰 위안을 받은 대목도 있었고요. 이번 리뷰에서는 몇 가지 대목을 꺼내어 중점적으로 다루며, 골똘히 한 번 생각해볼까 합니다.

 

 올해에 제가 열심히 밀고 있는 메시지가 있는데, "부족하게 생각되어도 한 번 부딪혀봐!" 입니다. 저는 근래에 두 가지 정도 생각이 바뀐게 있는데, 그 첫째가 부족해도 일단 하는 것이며, 둘째가 최적화 대신에 여분을! 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정확한 길로 가서,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하는 것이 최적화인데, 이런 달콤한 생각을 접었습니다. 오히려 여분을 더 준비하고, 혹여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충분히 괜찮아 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시행착오 역시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 번 만에 잘 안 되면, 두 번을 해보려는 마음을 가지고자 노력 중입니다. 두려운 생각을 무시하고, 계속 전진하는게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느낌입니다.

 

 저자 : 레지너 브릿 / 문수민 역 / 출판사 : 비즈니스북스

 출간 : 2013년 02월 25일 / 가격 : 14,000원 / 페이지 : 320쪽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 있어서도, 저자는 간단하게 단언합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보다 큰 사랑으로, 더욱 집중해서, 열정적으로 해내자. 눈앞에 있는 가능성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저는 결론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그 말을 오래도록 생각해 봤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알 수 없다" 라는 의미에는, 지금 내가 내리고 있는 판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지혜롭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호의나 친절이, 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고, 강력한 자극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가능성을 만났을 때는, 일단 해보는게 필요합니다!

 

 상당히 부담으로 다가오던 대목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당장에 편안한 삶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시간도 훨씬 넉넉해 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상처 하나 없는 인생이 된다면 어떨까요? 책에서는 (106p에) "싸워서 보호해야 할 가치가 하나도 없었느냐?" 라고 신이 되묻는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며 살아간다는 것은, 보호해야 할 가치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와 가깝습니다. 많은 가장들이, 딸래미를 위해, 아들을 위해, 무거운 어깨의 짐을 감내하며, 힘내서 살아간다는 것. 그 상처투성이의 불편한 인생이, 사실은 충분히 훌륭한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킬 가치가 있는 인생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윽고 질문이 떠올랐고요.

 

 "내게 있어서 지켜내고 보호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또한 내가 목소리를 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솔직히 거의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인생을 헛살았나봐... 라면서 내면의 자책도 적잖게 들었습니다. 그나마 작게나마 떠오른 것은, "기쁘게 살기,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기" 정도가 저의 답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가치라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싶었는데요. 내심 한편으로는, 너무 무겁고 사치스러운 목표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행히 저자는 다정하게 말해줍니다. "성공이란 말이에요.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책에서는 온두라스 허리케인 구호대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5일 만에 19,000명 이상이 사망했던 괴로운 현장이었지요. 그래서 구호를 서둘러 가는데요. 그 구호물품 중에는 희한하게도 거대한 장난감 인형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구호팀의 케빈은 거대 인형을 지고 언덕을 오르며, 회의를 느낍니다. "대체 이 망할 것을 왜 갖고 온 거야?" 그런데! 해질녘 무렵에 여덟 살짜리 소녀를 만납니다. 태풍이 마을을 만신창이로 만들었음에도, 소녀는 누군가 인형을 가져다주는 꿈을 꾸었고, 기적처럼 그 인형은 소녀에게 배달되었습니다. 다음은 케빈의 이야기 입니다.

 

 "의약품을 가져오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니라 한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어지는 작가 레지너 브릿의 포근한 코멘트가 이어집니다. "때로는 가치가 없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이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쩌면, 합리적이고 차가운 판단 대신에, 보다 따뜻하고 감성충만한 사람이 되는 편이, 인생을 더 경이롭게 살아가는게 아닐까 라는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형 하나가 기적이 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한 사람이 경험하고 만나게 되는 놀라운 일들은 훨씬 더 많지 않을까요.

 

 끝으로, (136p) 존 굴리의 이야기를 읽고, 저는 기적이 정말 있구나 싶었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5년이 넘은 고민의 해답이 담겨있었습니다. 저는 블로그에서 축구선수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 이야기를 하거나, 요사이는 한국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세계사나 경제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고요. 그런데 결정적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어떤 분야를 좋아할 뿐인 저같은 사람이, 괜히 나서서 전문가인 마냥 위선적으로 행동해도 되는가? 라는 내면의 질문에 번번이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혹여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만약 스스로가 심리학 박사라면, 심리학 이야기를 매일같이 신나게 했겠지요. 혹여 미디어 분야를 깊이 있게 전공했다면 영화를 논하며 훨씬 다양한 관점을 담을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나선다는 생각에 자주 번민했습니다.

 

 존 굴리는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퇴직 후 무료 이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발 기술을 배우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존 굴리는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제 눈과 손을 이끌어주시고 다리에 힘을 실어주십사 하고 기도를 해요. 전문 이발사가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요." 놀랍게도 그의 무료 이발 기술은 상당한 경지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불평하는 사람도 지금까지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좋아서 이렇게 일과를 산다는 존 굴리의 인생은 제게 커다란 충격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꼭 저렇게 살아야지! 라는 확신과 열망이 들었고, 마치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완벽하게 해낼 수 없어도 해봐!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저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편이 좋았습니다. 답이 보이지 않는데도 뛰어들어서, 괜히 헤매인다면 어리석은 게 아닐까 주저할 때도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가장 좋은 길로, 후회하지 않는, 그런 최선의 결정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게 뭐에요? 라는 질문에, "모르겠어요"라고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고, 어떻게 지내요? 라는 질문에, "열심히 즐겁게 살아요" 라고 대충 흘려넘기기 만큼은 잘했습니다. 그렇게 항상 제자리에 머무른 채 돌다리를 두드리는 편이 편했으니까요.

 

 이제서야 쑨원의 이야기 "황허가 맑아질 때까지 기다리겠는가. 나는 행동가이다" 라는 의미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어떠하든지, 가장 중요한 일을 지금 할 수 있는 사람. 재능이 어떠하든지, 정말로 원했던 일을 지금 시도하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의지만으로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마음 먹은대로 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테니까요. 결국, 결론은 매일 힘을 내서, 매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단지 그것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택임을 받아들여야 겠지요.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거대 인형을 등에 지고 언덕을 올라야 할지라도, 중간에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 의미도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까지 가보고, 행동해 봐야만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미래가 불안하니까, 지금 이대로 주어진 일상을 버티기만 한다면, 끝내 그렇게 살다가 쓰러지지 않을까요. 매일 죽음에 다가가야 하는 인생일테고, 이왕에 쓰러진다면, 차라리 걷기라도 하다가 쓰러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의문이 있을 때라도, 그것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면, 삶은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망설이기보다는 결정하기, 불안 속에서도 앞으로 가기, 이 통찰들을 잘 간직하려고 합니다. 인생의 끝에서는, 분명 망설이며 불안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후회할 것이 뻔할테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바라던 바람의 절반도 채 이루지 못하고, 죽음 앞에 선다고 합니다. 저는 그 명제에 한 번 도전해보며, 보다 더 치열하게 살 수 있는 힘이 있기를 다만 바랍니다. / 2013. 1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