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서두에 미리 밝혀둬야 겠습니다. 동학에 이어서 독립협회에 대해서도, 제 역량에서 온전히 정리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과서적 관점을 중심으로 해서, 할 수 있는데까지 중요지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또한 구조화를 통해서 시간적인 흐름으로 이해를 해보려고 합니다. 장문이 될터이니, 1부, 2부로 나누어 놓겠습니다. 기본적인 논지 전개는 언제나처럼 열정의 최선생님과 EBS 5분사탐의 내용을 소스로 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문서들은 참고자료이므로, 꼭 교과서나 기본서를 함께 보시기를 바랍니다 :) 그럼 출발~
음, 독립협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있어요.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친일적 색채가 강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 근거로, 조선에 이토 히로부미가 왔을 때, 꽃다발을 안겨주고 동양평화를 부탁했던 사람 중에는 독립협회 소속 사람들도 있었으니, 역시 친일 단체였다 라는 차가운 의견이 있습니다. 반대로, 한편으로는, 그 시대에 있어서 기층민중의 힘을 함께 조직해서, 당시 쓰러져가던 나라의 국운을 일으키려는 단체였다 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습니다.
즉 독립협회를 바라보는 이른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자자, 그렇다면 1부와 2부 문서들을 살펴보면서 독립협회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볼께요. 완전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확실히 파격적인 전개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독립협회에서 엿볼 수 있는 민(民)의 힘은 무엇인가! 이 점을 생각해 보기에도 좋겠고요. 우선 배경지점은 1896년 아관파천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던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고종의 아관파천 당시에 격렬하게 반대했던 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독립협회였지요. 원래 이 사람들은 처음엔 독립신문을 간행하기 위해서 모였던 소수였습니다. 신문을 발행한다고 하니, 정부에서 이들을 지원도 해주었고요. 말하자면, 독립신문이나 독립협회나 첫 출발 시기에는 비교적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요. 또한 이들은 독립문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 순으로 정리한다면, 독립신문을 간행하고자 사람이 모였고, 나중에 아관파천 반대하며 독립협회가 되고, 그 후 독립문을 세우려고 합니다. 외세에게 다 뜯기지 말자는 취지라 볼 수 있겠지요. (아관파천 때, 열강에게 각종 이권을 다 뜯기거든요.)
여하튼, 독립협회가 무슨 일을 주로 했는가 하니, 1896년부터 98년 3월까지는 주로 하는 일이 계몽활동이었어요. 이른바, 소수의 엘리트들이 주도해 나가는 개혁 형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어라? 소수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운동이라? 갑신정변과 비슷한 거에요? 네, 그렇지만 이들은 과거의 실패와 똑같은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갑신정변처럼, 혼자 좋은 말을 떠든다고 해서 그 영향력이 커지지 않는다면, 너무 허무한 운동으로 끝나고 결국엔 실패하고 말테니까요. 그래서 독립협회를 주도하던 이들은, 왜 우리가 이런 개혁을 하는지, 왜 우리가 지금 바뀌어야 하는지, 대체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 사람들을 계속 설득하려는 모습 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독립협회가 했던 계몽적 활동이라 하겠습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만 그친게 아니었습니다. 1898년 3월 무렵부터는 정치활동에도 나섭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 계속 뒤에서 계몽에 힘을 쏟아보지만 금방 세상이 바뀌는 느낌이 별로 안 들거든요. 이러다보니, 독립협회가 직접 시스템에 손을 대기 위해서, 정치 권력을 얻기 위해서, 마침내 본격적인 정치활동에까지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정치적 활동의 중요지점이자 핵심 키워드가 있으니, 두 번의 집회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살펴보아요~ 만민공동회, 관민공동회 입니다! 1부 문서에서는 만민공동회 속으로 갑니다.
1898년 3월에 있었던, 만민공동회. 서울의 보신각 앞에서 집회가 열립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단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봄에 집회를 여는거지요. 관점에 따라서, 최초의 근대적 시위, 근대적 집회의 모습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요. 중요한 건, 만민공동회 - 무려 만여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이건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당시 한양의 인구가 20만명 정도로 추정하는데, 그 중에서 만명이나 모였으니, 이 얼마나 뜨겁게 불붙은 열정적인 장면입니까. 그죠?
"민란"이 아님에도, 이렇게나 사람이 모인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다시 말해, 저마다 사람들이 의견을 내기 위해서 모였다는 것은 충분히 새롭고 충격적인 상황이었으며, 게다가 사람들의 주장들이 힘있게도 고스란히 전달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였던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첫째, 러시아의 절영도조차(석탄차출계획)를 저지 합니다. 쉽게 표현해, 부산의 영도땅을 임대로 가져가서, 석탄공급을 원활히 하려던 러시아의 전략에, 독립 협회와 조선 민중이 정통으로 치명타를 날리는 것이지요.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 거세게 반대하고 있으니, 상당히 당황스럽고, 또 움찔하거든요. 그래서,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 역시 절영도에 있던 석탄창고를 반환합니다. 그리고, 한-러 은행도 폐쇄해 버립니다. 만명이나 모여서, 거세게 요구하고 있으니, 그 전달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의 구체적 성과를 냈습니다. 외국세력들의 막돼먹은 이권침탈을 기층 민중이 대거 모여서 막아내는 이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제 조선에서, 너희들 맘대로 못한다라며 "NO" 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민과 함께 발맞추어 나가려는 모습들, 지속적인 계몽 활동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열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만명의 목소리가 되니까, 강력한 외세 열강 조차도 마음대로 이권을 집어삼킬 수 없었다는 점은 참으로 매력적인 역사의 장면입니다.
(지난 문서에도 잠시 언급했듯이, 후에 끝내 독립협회가 무너지고, 뒤이어 99년 광무개혁을 통해 황제권 강화 노선을 결정함으로서, 오히려 외세 앞에 순식간에 나가떨어지는 역설적 모순을 보게 되는데요. 그러므로, 당시 침략적 제국주의 외세에 제대로 맞서려면, 몰빵된 한 사람의 힘이 아닌, 다수의 NO라는 분명한 모습이 훨씬 더 중요했던게 아닐까요. 그러므로 조선말, 계속해서 일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어누르려는 경향이 망국의 큰 원인이 되었다는 자각과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자, 여하튼 지금 만민공동회의 거센 요구가 관철되었고, 정치 활동에도 뛰어들고 있으니, 역시나!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아요. 역사에서 꼭 보게 되는 장면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정치인들은 두려운 민의 힘보다는, 차라리 외세의 힘을 더 친숙해하고 편안해 합니다. 외세의 힘에 기대면, 어쨌든 자신의 자리와 기득권이 보장되니까요. 지난 날 정부가 위기 때마다 외세에 의존하려 했음을 여러 번 봤잖아요. 이렇듯 민의 힘이 커지자, 거부감이 자리잡고, 사람들의 선택과 결정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권력을 쥐고 있어서 일까요? 사람들의 비참한 일상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세에게는 이권도 퍼주고, 말을 잘 듣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민에게는 조금의 권력도 잘 양보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찌나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지요. 정말이지 ctrl+c → ctrl+v로 그렇게 복사한 것처럼 딱 똑같은지요, 그야말로 소름 돋는 전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생각한다는 것이, 흥미롭고, 즐거우며, 때로는 무섭다는 느낌이 듭니다. 비유하자면, 역사란 오늘을 비추고 있는 훌륭한 거울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거울을 보면서 때묻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듬을 수 있듯이, 역사를 보면서 되풀이 되는 장면을 발견하고, 때로는 좋은 통찰을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정부에서는 "헉, 뭔가 불안한데, 이게 뭐지?" 이러면서 찝찝함을 느낍니다. 이러다가 우리 권력도 달라고 하는거 아냐? 점점 의구심이 생깁니다. 이제 정부의 태도가 달라지는 거지요. 예전에 정부는 독립신문도 지원하고, 독립협회의 계몽활동에 있어서, 어느정도 우호적이었다는 것을 처음에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이 정부가 원하지 않는 정치적 활동을 전개하자, 바로 견제와 압박에 들어갑니다. 구체적으로는, 연좌제 부활을 시도합니다. 갑오개혁 때 없어진 연좌제를 다시 부활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독립협회를 이끌었던 핵심멤버인 서재필에게 "너 나가" 아예 국외로 추방시켜 버립니다. 즉 급진적인 서재필계와 만민공동회를 부정적으로 정부가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거꾸로 접근한다면, 서재필 입장에서는 조선 정치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요. 조선이 변해야 한다며, 나름의 노력을 했고, 드디어 성과도 거두어 가는 시점에서, "당장 꺼져!" 라는 단호한 정부의 압박에 곧장 나라에서 쫓겨났으니, 아마도 "이제 이 나라는 끝났구나"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요. 알려진 것처럼, 서재필은 나중에는 아예 한국 국적을 거부하고, 필립 제이슨이라는 미국인으로 살아가길 원했다고 합니다. 이번 문서는 여담이 조금씩 들어가는데요. 이렇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하하.
서재필 추방까지 봤군요. 살펴본 것처럼 정부에서는 계속 압박해 들어왔고, 사람들은 이에 질세라 계속 집회를 이어갑니다. 상점 문을 닫는 "철시"까지 해가며, 여전히 저항 중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정부의 결정 앞에서, 파업하고, 데모하고 그런 식이지요. 민이 이런 식으로 끝까지 버티자, 정부는 결국 민의 의견을 듣고 수용해 보기로 결정합니다. 한편으로, 정부 입장에서는 연설도 잘하고 급진적 성향이던 서재필이 추방되자, 당장은 기득권에 큰 위협이 되지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펼쳐지는 헌의6조 및 중추원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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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감 - 사상가들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어떤 이는 최후의 시대에는 건강과 미를 탐할 것이라고 표현했으며, 또 다른 이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개인으로서 엄청난 지위를 누리는 사람들은 아이돌이나 스포츠스타, 배우가 인기가 높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혼 없는 전문가는 철저하게 일과 감정을 분리하겠지요. 가령, 사람들을 고치거나 아이들을 양육하고 혹은 가르치는 일들이 단지 일로만 느껴지고 전혀 보람이 없다는 사람의 비율도 생각보다 엄청 높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대안을 찾고 싶었습니다. 전략가 라는 책에서는,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갈 때, 보다 월등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조금 놀라운 일인데, 많은 경우 아무 목적 없이, 단지 나는 할 수 있다며 위험에 뛰어들다가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나는 이것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 "이것이 없을 때 무슨 변화가 있을까?" 라는 질문. 그렇게 질문을 던져보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들은 피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오늘날은, 의미 없는 일에 사로잡히기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보았던, 논점이 확연히 달랐던 두 개의 경영서에서, 유독 겹쳐서 등장하던 힌트는 이러했습니다. 손대었을 때 바꿀 수 없는 일들은 하지 않기를... 그리고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일들은 치열하게 해보기를... 부디 바꿀 수 없는 일들과, 바꿀 수 있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있기를! 그래서 현명한 선택을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부터 제일 먼저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