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당신도, 그림처럼 리뷰

시북(허지수) 2014. 2. 12. 22:01

 기억이란, 낭만이란, 그리고 이상이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던가! 라고 슬퍼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 속의 나는 한결 괜찮았던 모습이었던 것 같고, 낭만 속의 나는 꽤나 고결해 보이는 모습이기도 해서, 거기에 파묻혀 현실을 좀처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루소의 표현을 빌려 써본다면, 우리는 현실 바깥으로 나가야만 행복과 위안을 찾을 수 있는걸까요. 지금을 떠나, 주말이 되어, 축제 현장을 가보고, 나들이를 다녀오고, 여행을 떠나야만, 정말 그래야만 보다 삶이 낫게 느껴질까요. 그렇지만, 이 대목에선 무엇인가 힌트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덧칠을 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질 것 같지만, 결국 거짓된 색만 켜켜이 쌓여 우리도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색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p.87)" 음, 좋아요! 삶에 덧칠하지 않기! 따라서, 포장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면, 진정성이 느껴지거나, 자부심이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경우 우리는 포장에 공을 들입니다. 차라리 이상한 색이 되더라도,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거나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러면 대체 우리는 무엇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면, 무엇이 남게 되는걸까요.

 

 저자 : 이주은 / 출판사 : 앨리스

 출간 : 2009년 07월 12일 / 가격 : 13,000원 / 페이지 : 232쪽

 

 

 예술은 "현실이 보잘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외모가 조각처럼 뛰어나거나, 몸매가 멋지거나 착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라는 존재가 스스로의 모습을 아낄 때, 비로소 사랑받을만 하다라고 천천히 안내해주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목표를 120% 달성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서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고 말해줍니다. 이처럼, 삶에 대한 넉넉한 시선은 참 근사합니다.

 

 커피 예찬의 대목에선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한 잔의 커피는 그야말로 기적! 기적,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내가 무언가를 잘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적을 불러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p.142)" 저의 경우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커피와 음악이 있어야 작업이 진행되어 갈 만큼, 무엇인가의 도움을 받아서 글을 쓸 때가 많습니다. 자가 발전이 되지 못한다는 자책도 오래도록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정신을 깨우는 작은 힘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 지점은 색다른 영감을 주었습니다. 커피를 즐겨마시는 프랑스의 천재 문인 발자크의 동상은 번쩍번쩍 광채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땅딸하고 이상한 옷을 걸친 초라한 모습" 이었던 겁니다. 잠에서 깨어나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실내가운을 걸친 채 커피와 함께 새벽을 여는 모습. 이것이 현실에 훨씬 가깝다는 점은, 참 인상적입니다. 카프카가 냉방에서 추위와 싸우면서 글을 써내려갔다는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본다면, 현실과 주변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의 모습은,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는게 아닐까요.

 

 삶의 이유에 대하여, 이주은 선생님은 단 한 가지의 장점으로도 오만하게 살아보자라고 흥미롭게 표현합니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 자기가 잘 하는 단 한 가지에서 자신이 사는 이유를 찾는 것, 그것만이 사방에서 억누르는 권위들에 상관하지 않고 진정 오만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p.163)" 아, 굳이 오해를 피하고자 덧붙인다면, 여기서 오만하게 살자라는 것은, 주눅들지 말고, 쫄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의 재능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이 될 수 있다는게 참 좋았습니다.

 

 이제 리뷰의 마지막. 이번에도 꼭 담아두고 싶은 표현이 있어서, 통째로 옮겨놓습니다.

 "진정한 삶의 보람과 만족감은 바로 이런 잡스러운 것들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는 수다 속에서 기쁨 호르몬이 솟아나와 몸에 쌓이고, 목적 없는 몰두 속에 뇌는 생기를 얻는다. 잡담과 잡학에서 모은 잡다한 소재들을 가지고 정말로 행복한 자기만의 궁전을 조금씩 지어나가야 할 것 같다. 그것만이 쳇바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지 않을까. (p.223)"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자책, 쳇바퀴 같은 피로한 날들 앞에 지쳐가는 일상의 절망 앞에서, 한 잔의 커피처럼 따뜻한 위로가 전해집니다. 비록 괴로움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목적 없는 몰두 속에서 활력을 얻고, 커피에 의지해서 기적을 소망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자신을 끝까지 사랑해 나가는 인생. 그렇게 자신만의 행복한 궁전을 건축해 나갈 수 있다면, 마침내 우리는 쳇바퀴 같은 똑같고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허무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 감사했던 책이었습니다.

 

 저는 생각와 행동이 따로 움직인다는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또한, 선명한 목표를 세우고, 무슨 일이 있어도 중요한 일에만 몰두하고, 최고의 나로서 살아갈 때까지,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것 등등... 고백하자면, 이런 류의 일들은 정말 안 되었습니다. 언제나 잡다한 책들을 주로 끌어안으면서 지냈고, 중요한 목표에는 절반도 채 가보지 못하곤 했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럴 때, 내 안의 잠든 거인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지치고 초라한 자신을 말없이 다독이며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어쩌면 잡담일 수도 있다는 것.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 인해서 생기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한 발만 떨어져 바라본다면, 우리는 삶의 어둡고 우울한 부분까지도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과거를 미화하고 덧칠하지 않고도, 오늘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면서, 현실을 좀 더 똑바로 보게 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사실은 소중하다는 것,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 2014.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