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구매 리스트에 있지 않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게다가 조금 이상한 일인데, 점점 많이 벌게 될 수록, 점점 많이 쓰는 모습들을 같이 목격하게 됩니다. 애석한 일이지만, 적은 소유로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많은 소유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짧은 표현들이 위로를 줍니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다" 나에게 꼭 맞고, 맛있어서, 행복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보편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는, 우정, 자유, 사색, 의식주가 있다고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언급합니다. 이 지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라서, 예컨대 우리가 넉넉한 부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친구가 있고, 자유가 있고, 사색을 누릴 수 있는 마음 한 편의 여유가 존재한다면,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저에게 있어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희망을 이루어 갈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요.
저자 알랭 드 보통의 결론은 곱씹을수록 좀 더 엄격합니다. "행복은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행복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는 대부분 금전적인 것이 아니기에. (p.99)" 그러면 대체 행복의 뒷면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행복과 함께 하고 있으며, 행복과 떨어질 수 없는 어떤 서늘한 진실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고통의 깊이" 였습니다. 행복과 고통이 나란히 함께 걸어간다는 느낌. 아, 정말 좋았던 순간입니다.
저자 : 알랭 드 보통 저 / 정명진 역 / 출판사 : 청미래
출간 : 2012년 04월 02일 / 가격 : 14,000원 / 페이지 : 336쪽
인간이 완성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답하기에 어렵습니다. 저는 차라리 책에 나오는 몽테뉴적인 시각이 건강해 보입니다. 겉으로 존경스러워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초라한 면이 있으며, 그 역시 밥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발톱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하는 존재. 별 것 아닌 존재로서의 사람 이라는 관념을 좋아합니다. 인간 존재의 겸손함으로 표현되어도 좋겠지요. 그런데, 철학자 니체는 거기서 적당히 멈추지 말고, 산을 가져와 우리에게 한 번만 삶을 더 생각해 볼 것을 권합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두려움에 마음 졸이며, 고통을 회피하고, 적당한 쾌락에 머물러 있는 삶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저 높은 산을 오르는 고통을 감당해서, 완성된 인간(초인)으로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권합니다. 좌절 앞에서 초연한 태도에 대해서 저자는 니체를 빌려 이렇게 설명합니다.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심지어 우리가 그것을 가지지 않았을 때라도, 아니 결코 가질 수 없을 때라도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계속 굳게 믿어야 한다. 손에 넣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을 모욕하지 말기를."
저는 이룰 수 없는 꿈 앞에서도, 여전히 걸어가는 초인의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어쩌면 니체의 삶 자체가 그랬겠지요. 살아 있을 동안에 그의 저서는 지독히 팔리지 않았으며, 새 옷도 사지 못하고, 좋아하던 음식을 사먹을 돈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건강까지 문제가 심각해서, 40대 중반부터는 보호시설에서 요양하며 지내다 생을 마쳤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표현대로, 니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싸웠으나, 그 목표에는 닿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니체의 진짜 멋진 모습은, "갈구했던 대상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가는 그 모습 자체로 대철학자의 기풍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인생에서 예술의 꽃이 피고, 아름다움의 향기가 나고, 사랑이 만개하며 하루가 행복으로 물들어 갈 때, 그 뿌리에 있던 것이, 분노와 연민, 호기심, 허영 같은 것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은 탁월함을 넘어서 저에게는 짜릿한 전율을 전해주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덧붙임은 절절합니다. "긍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이 성공적으로 다듬어진 결과일 수 있다는 뜻"
눈물 날 만큼 기쁜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못난 모습, 처절한 모습과 싸우거나 뿌리 뽑아 제거 하라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나약한 모습" 그 자체가 결코 아닙니다. 그 모습을 그대로 방치하며 놔두고, 좌절하고 비탄에 빠진 상태에 머물러서,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그 "절망" 이야말로 가장 나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슴 아프게도, 이러한 나쁜 태도와 습관은 저의 삶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고백컨대, 절망적인 존재가 어떻게 삶을 회복해 나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조금이나마 힌트를 찾고자, 철학자의 책을 읽게 되었고, 뜻밖의 고마운 통찰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땅을 파는 사이사이에 우리는 자신의 눈물을 승화시켜 지식으로 바꾸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p.274)" 고통을 피하지 말고, 고통을 가까이 할 때, 우리는 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다고 위로를 건넵니다. 이것은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펑펑 울어도 괜찮으니, 이대로 머물러 있으면 고통이 계속될 뿐이라고 콕 찌르는 바늘과 같은 이야기 입니다. 이를테면, 비참한 기분을 높게 평가하고,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라파엘로 같은 예술가들의 경지. 즉, 우리는 고통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고단한 과정에 익숙해 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삶은, 좀 더 놀라운 경지로, 장엄한 경지로 안내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의 모습에 절대로 절망하지 않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고통과 결핍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훌륭한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이라면, 비록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우둔함에서 결코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성취를 이룬 삶이다. (p.229)"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가 성취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바라보기만 하는 태도를 죽여버리고, 고통을 껴안고,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 달라진 인생 역시도 맞은 편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걸어오지 않을까요. 인간은 완성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완성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점, 이것을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 2014.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