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리뷰

시북(허지수) 2014. 3. 4. 23:13

 영화이야기와 여행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는 이동진 선생님의 다정한 책, 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리뷰 입니다. 손이 가는대로 즐겁게 리뷰를 써놓고 싶은, 향이 풍부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달콤한, 맛있는 커피같은 책이랄까요. 저는 영화에 푹 빠져서 지내는 사람은 아니었던터라,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 중에서, 미리 영화를 보았던 것은 음악이 좋았던 작품인 원스 정도였고, 스웨덴의 잉마르 베리만 감독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 마음 같아서는 매일 매일 영화보면서 천 편 정도 리뷰를 써내려간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피할 수 없는 밥벌이의 슬픔! 근래에 그런 우울한 감정이 있어서, 대리만족(?)을 겸해서, 이동진 샘의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동진 선생님의 감성 중에서 특히 와닿는 것은, "질보다는 투입하는 양이 중요하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읽고, 그렇게 인풋(입력)을 진득하게 밀어넣고서, 또 끙끙거리며 꾸준히 아웃풋(출력)을 해나가는 인생. 얼핏 보기에는 특별할 것이 없어보이지만, 사실 이동진 샘은 정말로 이렇게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아서, 참 멋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 쉬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밀어붙이는 순수한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본격적인 책 이야기 시작합니다.

 

 저자 : 이동진 저 / 출판사 : 예담

 출간 : 2010년 03월 15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288쪽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녹슬어버리는 것보다는 닳아버리는 게 낫다. 변치 않는 미래를 꿈꾸느라 녹슬어버리느니, 들끓는 현재를 겪어내느라 해져버리는 게 차라리 좋다. 사랑에는 자물쇠보다 종이비행기가 더 어울린다. (p.29)"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꾸준히 무엇인가를 움직이는 관계라면, 녹슬지 않을테지요. 그리고 한편으론, 닳아버릴 만큼 치열한 사랑을 꿈꾼다면, 다툼이 오가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자물쇠 같은 약속의 관계가 겉으로는 튼튼해 보이지만, 인간의 약속이라는 것이 종종 그렇듯이, 쉽게 잊혀지기도 하고, 심지어 자신과의 약속 조차도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무거움과 부담감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녹슬어 간다면 삶이 슬퍼질 것 같았습니다. 종이비행기처럼 가볍게, 때로는 바람가는대로 자연스럽게, 오래도록 편안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무척 근사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현재를 겪어내려고 노력하는 태도, 머무르지 않고자 노력하는 태도, 그 마음의 의지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꿈꾸며, 피지의 무인도 까지 가서 무모한(?) 1박2일 체험을 해보는 대목은 특히 즐거웠습니다. 무인도에서 식사를 해결해 보려고, 오랜 시간 게를 잡아보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맛난 게 대신에 다리에 괜한 상처만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이어지는 이동진샘 특유의 통찰, "실패 이유는 단 한 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기껏 한 끼 식사를 위해 몸을 분주히 움직인 것이지만, 게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였을 테니까. (영화에서처럼) 4년의 긴 세월을 이곳에서 지내야 했다면 훨씬 능숙해질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때는 내게도 생존의 문제로 바뀌어 있을 테니까. (p.167)"

 

 짧은 에피소드였지만, 생사를 걸 만큼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은,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을만큼 놀라운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해 본다면, 원하지 않았던 실망스러운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먼저 "내가 정말로 치열하게 여기에 집중했었던가?" 라고 되물어보는 반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느린 광경들 앞에서 로세트로 후아로스의 시를 떠올리며, 멈춤의 아름다움도 이야기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 가끔은 그게 세상의 균형을 유지시키네 / 중요한 어떤 것이 / 저울의 빈 접시에 올라감으로써 (p.246)" 저는 이 대목에서는 이병률 시인의 한 구절이 겹쳐보였습니다. "마음속에 빈 새장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안에 무언가를 담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 한 편에, 여유를 확보하고, 비워둘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 삶의 중요한 것들을 담아나갈 수 있는게 아닐까요.

 

 중요한 것을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인생 교훈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고 있으면, 중요한 어떤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걸까요? 아직은 확신을 하진 못하겠습니다.

 

 다만, 때때로 멈춰서서 "이것이 지금 나에게 중요한가?" 라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는 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중요한 일은 미루고 미뤄두면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그렇게나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고, 스스로를 체크해 보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는 70대의 노부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30대에 잘 알려진 장소에서 약혼을 했고, 그 두 사람은 40년이나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고마워하고 여행을 떠났으며, 또 다시 찾아간 장소에서 황혼의 입맞춤을 나눕니다.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여전히 인생은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음을... 서로가 살짝 잡은 주름진 손만으로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럼, 오늘 책이야기는 이쯤에서 이만 마칠까 합니다. / 2014.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