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 을사조약. 이것을 가독성 좋게 써보려고, 괜히 며칠 끙끙되었던 것 같습니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우리는 다만 을사조약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핵심은 간단합니다. 스스로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즉 주권을 팔아 넘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참, 우선은 지난 문서에 이어지는 내용부터 살펴볼께요. 고문으로 파견되었던 메가타는 재정장악을 위해서 화폐정리사업을 전개합니다. 자, 이제부터 1905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이 화폐정리사업 (참고문서 → http://srw.kr/1454) 을 통해 국내자본은 많은 타격을 입게 됩니다. 예컨대 국내자본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요. (오늘날 주식회사로 볼 수 있는) 상업자본으로는 상회사들이 있습니다. 대동상회나 장통회사 같은 상회사들이 있었지요. 국내의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상업회사였어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산업자본도 당시 여럿 있었습니다. 유기(그릇)공장, 직조(옷감)공장 등 덩치 있는 국내자본들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이 관리하는 은행들도 있었습니다. 갑오-을미개혁 이후 등장하는 은행들로는, 조선은행(1896), 한성은행(97), 천일은행(98) 같이 국내자본을 관리하는 금융자본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렇게 방대한 국내의 민족자본들을 뒤흔들어서 경제적 피해를 입히게 만든, 참 나쁜 정책이 바로 메가타의 화폐정리사업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화폐관리는 사실상 일본쪽 권한으로 넘어갔고, 이를 계기로 직접적으로 상인들이 몰락하며, 파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요.
안타까운 것은,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재정권 뿐만 아니라 1905년에는 외교권도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외교권이 박탈당하는 "1905년 을사조약"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 잠깐 10년 전의 한 장면을 가져와 볼께요. 일본은 1895년의 청일전쟁을 겪으면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쪽은 일본이었는데요.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면서, 넓은 만주땅의 서쪽 지역에 마침내 일장기를 꽂기 바로 직전까지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섬나라를 벗어나 요동반도를 차지할 수 있는! 일본의 오랜 바람이 이루어졌는가 싶었는데, 삼국간섭을 통해 강대국들이 곧바로 "뭐냐 일본? 너네 마음대로 땅을 먹다니? 그거 문제 있으니까, 요동반도에서 당장 나가주시지!"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일본은 꼬리를 내리며 곧장 철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과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이 얻었던 씁쓸한 교훈은 무엇일까요. 네, 바로 주변국들의 실질적인 승인이 있어야만 이권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배경을 살펴봤고요. 이야기로 되돌아와서, 그러면 지금 1905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해 나가려는 프로젝트를 착착 추진 중이고, 또한 재정까지 장악해 나가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일본은 함부로 조선을 집어삼키기 보다는 일단 외국(강대국)과 협상을 하고, 외교력을 발휘해서, "앞으로 일본이 조선땅을 통치할테니까 인정해주시지!" 라는 실질적 승인을 얻어내는게 무엇보다 필요했습니다. 놀랍게도, 일본은 을사조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서둘러서 외국과 외교작업을 펼치며, 조선 지배의 승인을 우선적으로 받아내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예전엔 만주 땅에서 물러났을지 몰라도, 이번에야말로 한반도를 확실하게 가져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잘 알려진 가쓰라-태프트 밀약 (1905년 7월)이 등장합니다. 미국과 일본이 맺은 약속인데요. 일본은 조선을 가져가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서로의 이득이 맞아 떨어진 셈이지요. 조선과 필리핀은 각각 일본과 미국이 지배할테니까, 상호 넘보지 말자라는 밀약입니다.
곧바로 한 달 뒤(1905년 8월)에는, 2차 영일 동맹이 체결됩니다. 영국과는 어떻게 약속했을까요. 일본이야 뭐 뻔히 조선을 지배하겠다는 거고,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겠다고 나옵니다. 이제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들이 일본의 조선 통치를 인정해주며 승인하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가을 (9월) 이 오면서 마침내 러일전쟁도 끝이 납니다. 전쟁이 끝나면 조약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 한테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맺습니다. 이 내용은 간단히 말해, 러시아는 이제 조선에서 완전히 손을 떼시오! 라는 조약입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또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본다면, 1895년 청일전쟁을 통해서는, 조선에서 청나라가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고요. 이번 러일전쟁을 통해서는, 조선에서 러시아마저도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리며 빠이빠이 되는 겁니다.
이제 이쯤에서 한반도 주변을 생각해 봅시다. 조선이라는 나라? 중국과 러시아는 손을 뗐지요. 게다가 일본은 재빨리 미국과 밀약해 버렸고, 영국과 동맹맺었지요. 따라서, 조선은 일본의 막강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차단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04년과 1905년이 매우 중요한 지점인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만, 이제와서 조선이 주변을 둘러봐도 누구도 섣불리 도와줄 수 없게 되었고,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일본에 대한 견제가 전혀 되지 않으니까요.
일본의 철저한 사전작업과 영리한 계획이 무서우리만큼 정확하고 빠르게 진행되어 나갔고, 결국 1905년 10월,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기에 이릅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2차 한일 협약, 다시 말해 "을사조약"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의 중대한 국권을 넘겨준 꼴이지요.
한편, 이 당시의 주역들을 우리는 을사오적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이 오적은 지금까지도 매국노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대대로 욕을 먹는 인간들입니다. 악랄한 짓을 하면 그 당시는 편안하게 살 수 있고, 자기합리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는 엄중히 이들의 매국을 기억한다는 것이지요.
여하튼, 매국노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금 조선은 힘없는 나라이며, 서구를 비롯해 강대국들의 먹잇감으로 추락해서 아주 위급한 비상상황에 놓여있다. 어쩔 수 없다. 일본이 조선의 외교를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것만큼 현실적인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외교권을 일본에게 넘겨주자!" 의외로(?) 상당히 논리적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얼핏 맞는 말 같아 보이니까요.
게다가 이 점도 흥미로운데, 을사오적이 지식인 계층이라는 점, 당시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점도 잘 눈여겨 봐야 합니다. 보다시피 언변이 유창하고, 똑 부러지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해 본다면 이렇게 쓸 수 있겠지요. "아, 조선 너무 힘들다 힘들어, 이제는 먹고 살 길도 없어보이는데, 그나마 좀 선진국이고 강한 나라 일본의 우산 아래 좀 들어가서 편하게 지내보자."
매국노의 대표인 이완용 같은 인물을 보면, 조선이 낳은 천재로 손꼽힐 만큼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 앞에서, 한 번쯤 생각해 봐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화려한 성공을 거두거나, 또는 공부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서, 혹은 아주 유능한 인간이라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세상의 부러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비록 그가 그토록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타인과 공동체, 사회와 국가에 대해서 진지함과 따뜻함을 잃어버렸다면, 그 타락한 똑똑이로 인해 얼마나 세상이 슬퍼지겠어요.
그러면 을사조약의 중요한 내용들을 살펴봐야겠지요. 이 때부터 통감이 파견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파견된 초대 통감이 바로 이등박문! 그러니까, 이토 히로부미 였습니다. 후에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조약 체결을 일본측에서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했고요. (참고로,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은 조선을 앞장서서 팔아넘긴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매국노를 처단해야 한다며, 오적암살단이 조직되기도 했고요.)
을사조약의 중요한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① 통감정치의 시작입니다. ② 외교권이 박탈되었습니다. 외교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이제 조선의 외교는 오직 일본의 중개(개입)에 의해서만, 외교행위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을사조약이 왜 중요합니까? 엄밀하게 본다면, 여기서부터는 사실상 나라가 빼앗긴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지난 문서까지만 해도, 일본과 상호승인이라든지, 또는 서로 협의를 해서 외교를 진행한다고 정했지만, 을사조약 부터는 그런 거 싹~ 없습니다. 오직 일본에 의해서만 우리의 외교가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참담한 일이었지요. 조금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조선은 가만히 있어! 일본이 알아서 해줄께.
그러므로 을사조약 부터는 조선의 국권이 거의 80퍼센트 정도 일본에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외교라는 것은 종종 친구를 사귀는 행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외국에 나가서 친구를 사귀고, 협력을 해가며, 함께 발전적인 일들을 해나가는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란 말이지요. 그러면 외교권이 박탈된 상황이 찾아왔다는 것은 어떤 그림일까요. 마음대로 친구를 만나지도 못해요, 함께 이야기 하지도 못해요. 외톨이가 된 것이고, 노예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주장을 내세워도 전혀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시키는대로만 해야한다니요. 즉,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빼앗긴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을사조약을 잘 기억해야 하는 것이며, 을사오적 처럼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하며 잘못된 일을 합리화 시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상황이 참 심각합니다. 그죠?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어요? 당장에 고종이 강하게 반발합니다. "이게 뭔가! 말도 안 된다! 내가 여기 도장도 찍지 않았는데, 외교권이 이렇게 넘어가다니 세상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는가!" 사실 고종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테지요. 을사조약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 고종의 반대를 무시하고 국가적 결정을 멋대로 해버렸으니까요. 고종은 이렇게 파렴치한 진실을 널리 알려야 겠다고, 지금 단단히 뿔이 났습니다!
(다음 문서에서 이어지겠지만)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맞춰서, 고종은 멀리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기에 이릅니다. 지금 조선은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일본이 제멋대로, 입맛대로 지배하고 있으니, 세계의 여러분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고종이 특사를 통해 간곡히 호소하려는 것이지요... 앞으로 조선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앗! 문서가 너무 기네요. 잠깐 쉬었다가, 3부 다음 문서에서 계속 이어갈께요. 알다시피 일제는 이런 고종도 가만히 두지 않을테지요. 업데이트가 너무 늦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노력하고 있습니다 ㅠ_ㅠ... 정말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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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감 - 현대 경영 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은 신간에서, 세상은 거대한 거인의 힘이 아닌, 상처받은 약자에 의해 발전할 수 있음을 언급합니다. 그가 구체적 사례로 들었던, 근대 미술사의 인상파 화가들 이야기를 보고서 저는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잠깐 소개해 볼까 합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모으면 현재 가치로 1조원이 훌쩍 넘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화가들은 유명해 지기 전인 1860년대에는 우표를 살 돈이 없을만큼 가난한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굶어 죽지 않도록 빵을 친구가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주류 비평가들은 인상파 화가들을 대체로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안팎으로 암울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정치, 문학, 예술에 대해서 논쟁했습니다. 중요한 질문을 외면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실천했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당대 주류가 되는 험난하고 좁은 길 대신에, 놀랍게도 훨씬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영감들을 표현하고 세상에 내놓는 쪽을 선택합니다. "큰 물이 아니면 뭐 어때, 우리는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겠어."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작은 실천을 시작했고, 외부에서는 저게 뭐냐고 경멸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틀에 벗어난 이 과감한 시도가 근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래지 않아 세계는 이들의 새로운 그림들에 찬사를 보냈고, 이들의 도전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대목입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밀려났기 때문에, 오히려 틀에 박힌 뻔한 선택 대신, 훨씬 더 자유로운 생각과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말콤 글래드웰은 지적합니다. 이른바 "약자가 누리는 놀라운 장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얼마나 더 과감해 질 수 있을까. 나는 주변의 부조리한 환경 탓 대신에, 내가 이루어 보고 싶은 것을 위해서 무엇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그 열정이야말로, 얼마나 사랑스럽고 멋있는지...
어쩌면, 정말로, 세계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용기 있는 모습들로 인해 발전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