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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11년 만의 업데이트는 에펜베르크 편! 실력은 레전드 성격은 개차반. 으앗! 에릭 칸토나, 폴 개스코인과 함께 유럽 3대 악동이라 불러도 될까요? 이단옆차기 날리신 칸토나, 감옥에 가신 개스코인... 그리고 오늘 이야기는 관중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시며 Fxxx Yxx (모자이크 처리!) 를 날려주신 에펜베르크님의 이야기입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데... 허허.

 

 프로필

 

 이름 : Stefan Effenberg
 생년월일 : 1968년 8월 2일
 신장/체중 : 188cm / 85kg
 포지션 : MF
 국적 : 독일
 국가대표 : 35시합 5득점
 주요수상 : 2000-01 시즌 챔피언스리그 MVP

 

 천재, 그리고 대악동. 에펜베르크의 이야기.

 

 1987년 프로선수생활을 시작하는 에펜베르크. 그가 이렇게까지 유명해질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에펜베르크는 독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선수입니다. 보루시아MG에서 데뷔를 한 이후로, 뛰어난 패스감각을 자랑하면서 주전이자, 중심선수로 우뚝 섭니다. 뛰어난 어린 유망주였습니다.

 

 1990년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로 명문 바이에른뮌헨으로 이적해서 멋진 활약을 펼칩니다. 두 시즌 동안 65시합 출장에 무려 19득점! 물론 실력은 뛰어났으나, 한편으로 트러블메이커 이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못 말리는 문제아 였지요. 축구는 잘했지만 이런 저런 문제를 달고 다니던 에펜베르크는 결국 뮌헨에서 떠나게 됩니다. 1992년부터는 세리에A의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합니다. 역시나 좋은 활약을 펼쳐나가던 에펜베르크는 드디어 독일대표팀에도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는데.... 좀 대형 사고입니다. 하하.

 

 에펜베르크는 독일국가대표로 1994년 미국월드컵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조별리그에서 바로 우리 한국을 만나지요. 원래 에펜베르크는 미드필더였는데, 이 경기에서는 측면수비수로 출장했습니다. 왠지 어색한 에펜베르크의 삽질활약이 계속됩니다. 한국도 이 틈을 제대로 잘 공략하면서 기회를 만듭니다. 열받은 독일 관중들은 웅성거리다가, 마침내 에펜베르크에게 대놓고 야유하기 시작합니다. "에페 교대해라, 에페 바꿔라!" 에펜베르크가 문제아 였다는 것은 앞서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에펜베르크는 멀리서 응원온 독일 서포터들을 향해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그대로 올려버립니다. 쉽게 말해 당신들은 닥치고 엿이나 먹으라는 거지요. 이 행동은 관중에게 거침없이 쿵푸킥을 날린 칸토나와 함께 비신사적인 행동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감독은 격분했고, 바로 에펜베르크를 불러들입니다. 더 이상 그에게는 독일대표팀의 자리도, 또한 자격도 없었습니다. 에펜베르크는 바로 짐을 싸고 독일로 돌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길 까지도 에펜베르크의 거침없는 막말은 계속됩니다. "더 이상 대표 따위 뛰지 않아!" 그리고 정말로 더 이상 대표로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에펜베르크가 이렇게 대표팀에서 나가버린 탓도 있었던 걸까요? 94년 미국월드컵, 98년 프랑스월드컵 모두 독일은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에펜베르크를 합류시키라는 독일 팬들의 목소리도 있었고, 그는 이후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막말을 잠시 번복한채 잠깐 동안 국가대표로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불과 대표복귀후 2시합 출장하고 난 뒤에 아예 영원히 대표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대표로 35시합 5득점, 실력에 비해서 국가대표 활약은 참으로 아쉬웠던 에펜베르크 입니다.

 

 클럽에서는 1994년 다시 독일로 돌아와서 보루시아MG에서 멋지게 활약하다가, 1998년 다시 명문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30살 무렵인 이맘때 부터, 주장 완장을 차고 바이에른 뮌헨의 중핵으로 팀을 이끌어 나갑니다. 에펜베르크가 복귀한 후, 1998-99시즌부터 2000-01시즌까지 3년 연속으로 뮌헨은 분데스리가 정상에 섭니다.

 

 유명한 이야기 하나 더, 챔피언스리그 이야기 입니다. 1999년, 챔피언스리그. 당시 맨유는 트레블을 노리고 있었고, 결승에서 뮌헨을 만났습니다. 에펜베르크가 이끌던 뮌헨은 선제골을 넣으면서 잘 나가다가 경기 종료 직전 맨유에게 극적으로 1-2 역전패를 당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이를 두고 당시 경기장의 이름을 따서 누 캄프의 비극이라고 부릅니다. (맨유 팬들은 누 캄프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웃음.)

 

 비록 한 인간으로 성격은 정말 좋지 못했지만, 축구선수로서의 에펜베르크는 정말 대단한 실력을 지닌 천재였습니다. 그는 30대가 넘어서도 실력이 죽지 않았고, 다시 한 번 기막히게 부활합니다. 뮌헨과 에펜베르크는 다시 한 번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도전했고, 이번에는 맨유도 레알도 그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2001년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따냅니다. 뮌헨으로서도 무려 25년만의 유럽 정상이었지요. 에펜베르크는 대회 MVP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렇게 뮌헨의 빛나는 영광의 시기를 만들고, 에펜베르크는 선수생활 말년에 카타르에서 활약하다가 2005년에 은퇴하게 됩니다.

 

 에펜베르크는 큰 덩치에 걸맞지 않는, 화려한 패스 감각과 뛰어난 득점 능력까지 겸비한 천재 미드필더였습니다. 프리킥도 잘 찼습니다. 한 성격하는 강렬한 인상 덕분에 축구선수로 인기도 굉장했습니다. 막말의 달인이자, 악역 중의 악역이었지요. 피구나 지단, 베컴 같은 빅스타 들에게도 대놓고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았던 것은, 바로 실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클래스였다는 것이지요. 에릭 칸토나 역시 워낙 축구를 잘해서 쿵푸킥을 관중에게 날려도 퍼거슨 감독이 끝까지 중용했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를 최고라고 해야 할까요? 최악이라고 해야 할까요? 적어도 뮌헨 팬이라면 그를 레전드로서 잊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리고 축구팬으로서 요런 독특한 선수도 있다는 것 역시 하나의 기막힌 사례(!)로 남아있으니 그것도 또한 흥미롭고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는 실력만 있다면, 성격은 극복해가며(?) 통하는 세계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이상으로 에펜베르크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갱신을 기념해 유튜브 영상도 함께 합니다!

 

 2008. 04. 24. 초안작성.

 2019. 12. 16.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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