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마지막 문서입니다.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니 우선 기쁜 일입니다. 장기 프로젝트를 재밌게 봐주신 분들께는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이번 문서에서는 먼저 연극과 영화를 살펴보려해요. 개항기에서 꼭 기억할 것은 다시 언급하지만 원각사 입니다. 은세계라는 신소설을 처음으로 올리더라 라는 것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1910년대의 연극으로는 신파극이 있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 중요한 작품 나운규의 아리랑 (1926) 이라는 작품입니다. 이를테면, 신파극이 주로 3류소설처럼 남녀간의 사랑을 주로 다루었다면, 아리랑은 놀랍게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항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놀라운 문화적 충격을 주었지요.
줄거리를 보면요, 영진이라는 주인공이 3.1 운동에서 충격을 받고 미치광이가 되는거에요. 그러면서 영진이는 정신이 반쯤 나가서 미치광이로 허허실실대면서 다니게 되요. 한편 영진이에게는 예쁜 여동생이 있었는데요. 그 여동생을 마을 악덕 지주의 머슴인 (+친일인) 라는 기호라는 인간이, 기회가 생기면 예쁜 여동생을 범하려고 하지요. 이 장면을 말리는 과정 속에서 미친 영진이는 상상속의 나래를 펼치는 거에요. 그러다가 범하는 장면에서 오빠인 영진이가 딱 낫으로 기호를 찌르게 되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에요.
헐, 영진이는 주인공이면서도 낫으로 사람을 죽였으니 어딘가로 끌려 가는겁니다. 나쁜 놈을 죽였는데... 마을사람들이 오열하고 울분을 토할 때 영진이는 이야기 하지요. 울지 마시라. 나는 이 삼천리강산에 태어났기 때문에 미칠 수 밖에 없었지. 내가 가는 것은 죽음의 길이 아니라 갱생의 길로 가는 것이니 울지 마시라. 마지막 엔딩에는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쫙~ 흘러나옵니다.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거에요. 민중들의 아픈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친일 앞잡이를 찔러야만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은 지식인들에게 뭘 의미하는걸까요. 일제시대란 그런 잔혹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명확하지요. 아리랑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집니다. 나운규의 아리랑은 그래서 시험에 잘 나옵니다. 카프문학과 시점이 유사하기도 합니다. 이 시대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은 것은? 이라는 지문에, 아리랑을 보고 있는 부녀자가 있다면 바로 1920년대를 떠올리면 되겠죠.
연극에서는 1920년대 토월회라는 연극단체가 있습니다. 토월회가 1930년대로 가면 극예술 연구회로 바꿉니다. 여기에선 유치진의 토막이라는 작품을 연극에 올리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험에 종종 나오는데요. 시대구분이 나눠져 있기 때문이에요. 20년대와 30년대 각각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정리를 잘 해둬야 만점을 노릴 수 있습니다. 문화파트에서 토월회가 어디있더라 찾아보려면 많이 어렵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시기별로 정리하는 연습,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해 봅니다.
그 다음으로 역사를 한 번 살펴볼께요. 개항기의 역사는, 당시의 문학이 계몽문학이듯이, 계몽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구한말 1905년 이후 국권피탈기에 나오고 있는 역사학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망하고 있지만 힘내라. 결코 나약한 민족이 아니었다. 우리 역사에 위대한 것들을 한 번 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요. 그래서 개항기의 역사는 위인전이라든지 흥망사가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신채호가 있지요. 신채호가 쓴 독사신론은 민족주의 사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라는게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의입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일제 식민사관들이 만들어 집니다. 역사라는 게 참 중요해요. 왜 우리가 고구려사에 대해서 그렇게 강조를 하는걸까요. 왜 일본이 독도에 대해서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걸까요. 우리가 고구려사를 살펴보면 만주지역을 지배하고 다스렸던 역사를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혹시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거에요. 훗날 한국이 강대해져 그 지역을 우리의 영토로 만들 가능성이 있을 때 역사라는 게 존재함으로서, 어떤 명분이 있어야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옛날에 강할 때 우리가 지배했던 땅이니까, 지금처럼 강한 시기에 다시 지배하는 것일 뿐이야 같은 명분과 논리 말이에요. 그러한 명분을 역사에서 찾으려고 하는 거에요.
독도는 대한민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이 맘대로 가져갈 수가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네들은 끊임없이 후손들에게 독도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느냐 하면, 언젠가 독도가 일본의 땅이 되거나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갈 때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미리 선 작업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즉, 정치적인 목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역사를 도구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역사라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용되고 또 적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식민사관을 만든 이유는 뭘까요? 일제가 조선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결국 조선 사람들 너희들 "역사"는 별 볼일 없었다 라는, 우리가 너희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줄텐데 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었던 거지요. 간단히 말해,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는 거지요. 황국신민의 정책이라는 것이 1930년대에 뻥 하고 등장하는게 아니라, 다만 1930년대 시기부터 더욱 강화되고 있었을 뿐, 실제로 일제는 강점기 내내 식민사관을 주입시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면 식민사관을 만드는 곳은 어디냐 말이지요. 1910년대 총독부의 자문기구역할을 하는 중추원도 일조를 하고요. 조선사편찬 위원회가 있는데, 조선사 편수회로 이름을 바꿉니다. 또 있어요. 청구학회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많죠. 그러면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것들을 한 번 살펴봅시다.
1. 타율성론 - 한반도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은 늘 대륙의 영향을 받고 있고, 해양의 영향을 받거나 하면서, 자주적으로 뭔가를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임나일본부 - 한반도 남부지역을 일본이 이미 점령을 했었고 백제와 신라 나라들이 일본에게 조공을 바치던 식민지 속국이었다 아주 먼 고대에도 우리의 지배를 받지 않았더냐 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도 지배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거에요. 당연히 임나일본부"설"이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그리고 반도사관. 반도에 있어서 스스로 못한다는 거에요. (써내려가다보니 괜히 열받는군요 -_-.... 하여간, 아무거나 다 갖다붙인다니까요. 너네들이나 잘하시지.)
2. 당파성론 - 조선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파와 당을 짓고 싸우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붕당과 환국정치를 보라면서 몸 속에는 더러운 피가 흐르고 있다 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런데 당파성론이라고 한다는 게, 조선 사람들만 이렇게 싸우겠어요. 그럴 리 없습니다. 생물학적인 접근도 황당한것이고요. 조선시기의 당파성론은 물론 일부 시기에 권력투쟁이 첨예한 시기가 있었지요. 그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접근하는 것은 당연히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정체성론 - 이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중요한 논거가 되기도 하는데요. 조선의 역사는 정체되어 있다, 멈춰져있다 라는 이야기에요. 일본과 비교해 봤더니 조선 역사는 일본 고대의 수준만큼 멈춰있더라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농업국가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거에요. 근대적인 소유관념도 없다, 다 왕의 것이다 라는 의식을 갖고 있더라 라는 겁니다. 따라서, 식민지배를 통해서 조선을 환골탈태 새롭게 바꾸어주고 있는 것이다 라는 논리라는 것이지요.
이렇듯 식민사관을 만들어서 끊임없이 주입하는거에요. 그런 의도와 무시무시한 영향력이 있는 것입니다. 만들어진 논리들 앞에서, 우리 사회에서 역사교육이 자꾸 후퇴하고 있는데요. 역사를 선택 안하는 사람들, 외우는 사람들 많아지는데 그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일제도 이렇게 150% 넘게 활용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우리도 200% 활용을 해서 맞서야겠지요!
그럼 식민사관에 맞서서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저항하였는가, 그 저항의 역사도 살펴 봐야겠지요. 민족주의사학, 실증주의사학, 사회경제사학 이 세 가지를 살펴볼까 해요.
먼저, 민족주의사학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신채호와 박은식을 들 수 있겠죠. 신채호는 역사학자이기도 하지만, 1920년대에 조선혁명선언을 하고, 무정부주의에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고민하는 흔적을 보면,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왔다갔다 하며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실천하려고 했던 학자라서요. 신채호가 폭력을 이야기하면서 민족주의도 선택할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한다면, 한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한 분야, 한 이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따라서, 일제 강점기의 특수성을 배려한다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광복에 대한 끊임없이 고민하다보면 때로는 민족주의자 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무정부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그렇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신채호 처럼 말이에요. 그러면 신채호의 저서 두 가지를 보도록 할께요.
신채호의 저서로는 조선사연구초에서 낭가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민족주의 사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정신이에요.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것이에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 이것만 잊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나라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평가를 해요. 여기서 실패한 이후 나오는 유학을 숭상하는 유약한 모습이 결국 일제 강점기로 가는 도화선이다 라고 보는 것이에요. 원래 우리는 화랑도 할 때, 그 랑 이라는 글자, 좋은 산과 좋은 자연을 찾아다니면서 활달한 기상, 기개를 가지고 살아나가는 활발한 민족이었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잃어버린 사건으로, 유학자 김부식의 개경파가 승리한 사건, 묘청이 실패한 사건을 아주 비중있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조선역사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이 서경 천도 운동이었다.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으로 나아갔을 텐데, 김부식이 이김으로서 조선사가 사대적, 속박적 유교 사상에 정복되었으니 이 얼마나 (역사적) 대사건인가"
그 다음에 조선상고사(1931)가 있습니다.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즉,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투쟁이라는 거에요.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이 뭐냐하면, 싸움의 역사에서 계속 되어 왔던 것이고, 지금도 나와 일제와 투쟁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거에요. 봤더니 끊임없이 외세와 싸우면서 흘러왔고, 지금도 이것이 진행중이다 라고 신채호는 바라봤던 것입니다. 결론은 일제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때요. 멋지지 않나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선비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한 분, 박은식이 있지요. 대표적인 저서로는 한국통사가 있습니다. 1915년이고, 통자가 아플 통자인데,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박은식의 저서, 한국독립지혈사는 독립운동을 피로 쓴 역사라는 것이지요.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바는 혼 입니다. 우리가 혼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혼을 잃지 않는다면 지금 나라는 없어졌지만 언젠가 그 형태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을 강조하고 있지요. 민족주의 사학은 1930년대로 오면 조선학 연구로 계승이 됩니다. 정인보는 얼을 강조하구요. 안재홍 이런 인물들로 전통이 계승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민족주의사학이 정신을 강조한다는 큰 흐름을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실증주의사학은 이병도와 손진태를 들 수 있습니다. 이병도 같은 경우 논란의 여지도 있고, 남한 역사학계의 태두와 같은 인물이에요. 우리가 굳이 많이 연구하고 많이 알지 않는다면, 너무 쉽게 이 인물들에 대해서 쉽게 재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알아보고, 좀 더 연구하고 그 이후에 평가해도 늦지 않겠지요. 실증주의 사학이라고 한다면, 민족주의와는 달라요. 민족주의 사학은 아무래도 상당히 감정에 치우친 그런 역사일 수 밖에 없어요. 한마디로 우리민족 잘났어 라고 이야기 하는 거였잖아요. 현실과 전혀 타협하지 않고 식민지 노예 아니야 , 위대한 민족의 핏줄이야 힘내 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나 실증주의 사학은 냉정하게 접근하면서 평가는 "노" 라고 말합니다. 역사는 그냥 있는 그대로만 보여줘야 한다고 접근하며,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며,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 사건이 이랬다 라고 하는 팩트만 전달하면 된다고 접근하는 것이 실증주의 사학입니다. 그러다보니 진단학회라는 것을 만들었고요. 진단학보를 간행했습니다. 아, 진단학회 진단학보는 1930년대 이야기에요.
그리고 1930년대 확장되고 있는 사학 중에 하나는 사회경제사학이 있습니다. 사회경제사학이라고 하는 것은, 인물로는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라는 책을 써요. 사회경제사학은, 모든 역사는 법칙성을 갖고 있고 비슷하다,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접근하는 거에요. 그렇게 역사는 발전해왔다, 라고 보시면 되겠지요.
다시 말해, 역사는 발전한다는 거에요.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그 다음에 자본주의를 거치며, 사회주의로 간다는 발전사관이에요. 조선사도 마찬가지라는거에요. 조선사도 그렇게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라는거에요. 특히 사회경제사학이라는 것은 바로 이 정체성론(식민지근대화론)에 정면으로 아니다 라고 비판할 수 있는 역사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사회가 무슨 정체되었냐고 구체적인 자료와 수치를 통해서 증명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여하튼, 법칙, 보편, 발전 이런 단어 나오면 사회경제사학이라는 것. 알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종교에서 기억할 것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천도교는, 동학이 이름을 바꾼거고요. 제2의 3.1운동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대종교가 있습니다. 단군을 믿고요. 대종교는 중광단, 북로군정서와 연결되어 있겠네요. 천주교는 무장투쟁조직 의민단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북로군정서, 의민단은 청산리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원불교는 불교의 대중화운동, 새생활 운동을 전재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아 담배도 끊고 하자는 거에요. 기독교에서는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다음 문서는 광복 이후가 되겠네요. 현대사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미리 인사를!
오늘의 영감 - E.H.카 였던가요. 역사란 무엇인가에 보면, 객관적 역사 서술이란 없다며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에 따라서 무엇이 더 들어가고, 더 강조되고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역사는 가만히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하는 관점에 따라서, 한 분야가 더 확장될 수 있고, 한 분야가 더 축소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언론과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인명진 목사님께서 이런 인터뷰를 한 것이 강렬해서 기억이 납니다.
"1970년대 국립공원의 크낙새가 죽으면 신문 사회면 톱인데 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도 기사 한 줄 안 나오던 때예요. 새의 권리 조권은 있고 인간의 권리 인권은 없는 사회라고 한탄했었죠" 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일제와 그럼에도 저항하는 역사를 살펴보면서,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었는지를 배웠습니다. 오늘날의 아와 비아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역사는 여전히 법과 상식이 통하는 바른 세계와 비상식적인 불편한 세계가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곤 합니다.
저는 2015년을 앞둔, 오늘날 이 한 마디를 꼭 전달하고 싶습니다. " 기업인과 노동자 모두가 주역입니다. 물론 야당도 노동자를 위한 정책 대안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네요" 노동자가 일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나라라면, 그렇게 계층이동이 단절되고 차단된 나라는 틀림없이 망하더라고요. 부디 한국이 서로가 눈을 맞추어 대화하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그런 자랑스러운 나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