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이상형

시북(허지수) 2015. 11. 25. 23:36

 

 2015년의 어느 가을 날. 저는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겨우 이틀, 그리고 그 중에서도 불과 몇 시간이었음에도, 한 사람의 진지한 태도에 깊이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나는 프로필에 이렇게 적은 바 있습니다.

 넘어지고, 상처입고, 속상한 일 있어도, 그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그 프로필에 적어놓은 것처럼, 그 당시의 저는 상처투성이의 지친 마음으로 가득했었기에,

 햇살 같이 예쁜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현실도피적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와, 어떻게 세상에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지?"

 

 "작은 일에 성실한 태도" 한글로는 고작 9글자 입니다만, 그 글자 그대로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픈 사람들의 사연을 진지하게 들어주시던 인턴 선생님이셨습니다.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나름의 최선을, 답을 구해서 어드바이스(조언)를 해주셨고, 큰 도움을 매번 받습니다.

 키도 크시고, 하얀 가운이 잘 어울리는 데다가, 눈동자가 너무나 맑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자꾸 시선을 쳐다보게 되어서, 얼굴이 새빨개 질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외사랑의 기억이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0일이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떠올라 부끄럽습니다.

 

 .

 

 저는 17~18년 전인, 10대 시절에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어서 병원 신세를 오래 졌습니다.

 지역에 있는 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오래도록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11월 25일 오늘, 사정이 있어서 그 때의 원장 선생님을 만나뵈러 갔습니다. 장애인 판정 상의차 였지요.

 이제는 백발이 되셨지만, 2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순수하고 때묻지 않으신 그 선생님을 뵈자마자 기쁨부터 올라옵니다.

 

 저를 보자마자,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 했었다는 17~18년 전의 기억을 선명한 어조로, 고백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정확히 제 또래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고교에서 전교 1등을 해서 너무 기뻐하고, PR(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그 이야기가 결국 당시 그 병원의 고교생 또래였던 외래 환자 허지수 라는 제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당시 학업 중단 상태였던) 저는 공부라면 누구에게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제가 꽤 많이 속상해 했었다는 이야기.

 

 백발의 원장님은 얼굴까지 새빨개 져가면서, 그 당시의 병원장 의사로서의 자신의 철없음을 쑥쓰럽게 고백하시더라고요.

 그 정직한 고백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 했습니다. 아들의 전교 1등 만큼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돌고 돌아서, 아들 또래의 환자였던 제 귀에 들어갔다면서 부인에게 매우 혼이 났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사람은 그토록 지혜로워져 가는구나, 그토록 머리 숙여 가며, 겸허해져 가며, 아름다워져 가는구나. 참 멋진 원장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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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십년이 흘러서라도 그토록 또렷하다는 이야기를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저는 공부방의 제자녀석에게 "그 사람과 함께 살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야"

 이것이야말로 인간관계, 결혼관계의 비결이라고 제 나름의 비의를 전달해 준 바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에게 배운 제 나름의 인간관이자, 지혜로움 입니다. 그러자, 현실적인 그 제자녀석은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사랑이 있기야 하겠어요? 라고 반문을 하기에, 오히려 말문이 막힌 것은 저였습니다. "하긴..."

 

 그래서 이렇게 이상형에 대하여, 20년 전의 이야기까지 꺼내가며 제 나름의 가진 힘을 다해서 글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저는 고작 34년 동안 살아가면서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란, 오래도록 알아가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파악해 나가야지 실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행동부터가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게 자신의 주어진 일을 해나가려고 즐겁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는 것입니다.

 

 야학 시절에도 물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그 때의 추억 하나 하나들이 제게는 값진 보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교회 공부방에서 간단한 중등 수학을 알려주면서,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신나게 문제를 풀어나가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올해에 만나게 되었던 그 이상형 선생님의 이미지를 이제는 잘 간직해 놓으려고 합니다. 가수 박정현의 노래가사를 빌리자면, 잊는 것보다는 차라리 선명하게 잘 기억하는게 제게는 조금은 더 쉬운 일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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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좋은 인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볼 것,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해 볼 것" 그 성품 자체를 행동으로 배웠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감사하며, 행복해 한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고 싶었습니다. 저는 말하는대로, 써놓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편입니다. 언젠가 좋은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과도 함께 행복한 하루 하루를 그려나가기 위해서 서로가 배려부터 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 합니다. 이적 - 김동률이 함께 불렀던 그녀를 잡아요 라는 노래 가사 처럼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난 니가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