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을 합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산을 오르고, 기분에 따라선 거리 산책도 합니다. 겨울날이라서 산의 풍경이 다소 아쉽습니다. 봄날처럼 화사한 느낌 보다는, 오히려 청명하고 시원한 산의 공기가 가장 강렬합니다. 서민 교수님의 특징은 독특하고 강렬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바둑으로 비유하자면, 실력을 발휘하고자 마음을 품은 뒤로는, 어떻게든 시행착오를 거치며 훈련하고 글의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노력했고, 마침내 유머러스하고 성공적인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 한마디로 멋있습니다. 정직하면서도 강렬하게 글쓰는 것. 지금의 저로써는 부럽기만 합니다. 하하.
글로 요약하는 것 하나 만큼은 저도 꽤 자신이 있었습니다. 2007년부터 블로그를 했으니, 거의 10년차 블로그에, 방문자도 그럭저럭 만족할 만큼 다녀가셨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막상 돌이켜보면 내 이야기가 없고, 정보를 요약한 블로그가 되었습니다. 뭐 인포머, 정보용 블로그, 정리용 블로그 같은 용어도 있는가 보던데 문외한인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냥 나는 왜 쓰는가? 그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저에게 고마웠습니다. 질문하게 해주는 책이나 영화,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 아무튼, 나는 왜 쓰는가, 답하려니까 쑥쓰럽고 어렵습니다.
저자 : 서민 / 출판사 : 생각정원
출간 : 2015년 08월 31일 / 가격 : 14,000원 / 페이지 : 252쪽
작년에 제가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이상형" 이라는 글입니다. 병원에서 만났던 예쁜 인턴 선생님과의 짝사랑 이야기 입니다. 단짝 친구에게 보여주니까 눈이 그렇게 높아서야... 라며 웃더군요. 하하.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인생을 기록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쩌면 사진작가와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제가 그림을 잘 그렸다면 그림으로 기록했을테고, 사진을 잘 찍었다면 사진으로 기록했겠지요. 그러나 제 얕은 재능은 글쓰기가 편리한 것 같습니다.
MBTI 적성 검사를 했을 때도 유독 I, 그러니까 내향적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으면, 마음이 무척이나 안정됩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쓰면, 평생을 책 읽고 영화 보면서, 글 쓰며 살고 싶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꽤 훌륭한 직업이 있어야 겠네요. 저는 은수저 아니니까요 :)
이 책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빵 터졌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인데다가, 무려 서민 교수님의 멋진 사진까지 실려있는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p.74~75)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아내가 저렇게 예쁜데 왜 당신이랑 계속 살고 있냐고. 그때마다 이렇게 답하곤 한다. 얼굴보다 중요한 건, 편. 지. 라. 고."
저는 이 짧은 대목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느꼈습니다. 서민 교수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살아가는 것을 행복해 하는 사람, 아 당신은 그런 분이구나, 그리고 그 원동력이 예쁜 아내를 두었다는 게, 세상 무엇보다도 감사하고, 커다란 행복이구나를 절실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편지를 쓰자! 이것도 하나의 큰 도전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제일 중요한 것은 어쩌면 용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p.50~51) 을 인용하면, "일단 편하게 써내려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정말 그냥 무작정 자판을 두드려서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있어요. 이런 태도 변화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냥 쓰라는 것. 그러고보니, 저는 작은 개척교회에서 설교 원고 정리를 수 년째 맡아오고 있습니다. 설교를 블로그에 그냥 올리면 아무래도 심심하니까, 말미에 (목회자가 아닌, 일반 신도의 관점으로)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이는데, 그 때마다 목사님께서 한다는 조언이 제발 코멘트 대충 써라, 그렇게 공을 들이려고 하다가 계속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이 조언과 서민 교수님의 조언이 거의 완전히 겹쳐 들리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2~3일에 1번씩 업데이트 해가면서, 즐겁게 블로그 관리하는 게, 어쩌면 가장 유익한 훈련법이라고 배워갑니다. 이로톡 간단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늘 좋은 글을 써야 한다고 쓸데없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충분했습니다. 마음을 부지런히 먹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 그저 마음껏 업데이트 해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읽고 싶었던 책들 틈틈이 읽어나가는 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핑계, 핑계로 시간을 낭비하는 그 젊은 날의 습관부터 고쳐나가야 함을 생각해 봅니다.
이제 리뷰를 마치며, 나도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이 책을 열독해 나간 동기는 불순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자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희망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것. 이것은 서민 선생님 본인의 꿈을 당당히 포부로 밝힌 것이라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도 무명블로그로서, 반드시 대성해서 방문자 숫자 천만을 평생에 찍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참 뒤인 40대에는 ~ 50대에는 그 정도 숫자를 찍어서, 사회에 대한 무명 칼럼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안정적으로 일도 하면서, 최선의 최선을 다하는, 꿈만 같은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서민 교수님 같은 괴짜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연속 술먹기 밖에 없었다고 고백할 줄 아는 그 솔직함에 반할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열심히 게임이나 즐겨 하는 놀이꾼에 불과했습니다. 열심히 책을 읽는다고, 들고 다닌다고, 떠들었지만 겨우 책 리뷰 130권이네요. 숫자는 거짓말 안 하니까요. 영어공부 하면서, 그런 표현을 배웠습니다. 압박감 속에서도 때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사람의 능력이라고. 이제 바쁘다는 핑계는 그만 대고, 하나하나 자기를 계속 탐험해 가는 인생 되어보겠습니다. 내 머리는 아직도 변덕쟁이처럼 빠르기만 하고, 거기에 비해 내 다리는 아직도 움직이기 귀찮아하고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 2016. 01. 2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