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Vengeance! 이 단어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살아가면서 원수를 갚는다는 복수를 생각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간접 경험의 보물창고인 영화를 통해, 복수가 무엇이며, 또한 복수하는 삶이 끝내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친절한 금자씨는 바로 철저한 복수, 성공적인 복수가 무엇인지 스타일 좋게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기본 스토리의 구성은 간단합니다. 아름다운 미모의 금자씨는 겨우 20살에 살인이라는 죄를 덮어쓰고, 13년간이나 감방 생활을 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로 불리는 모범수였고, 마침내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대사를 교회 전도사에게 날려주지요. "너나 잘하세요." 이제 자유의 몸이 된 금자씨. 가야할 길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그녀의 당당한 초연함은 영화 끝까지 계속되는데...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아리따운 여성인 금자씨를 강하게 해주는 것은 주변의 도움들이었습니다. 머무를 숙소를 제공받았고, 복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무기를 제공 받습니다. 그것도 아름다운 권총으로 말이지요. 이로써, 그녀는 완벽하게 복수를 위한 준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찾아가는 원수 백선생! 한치의 망설임이 없습니다. 고심하지도 않습니다. 백선생을 찾아가는 도중에 어려움이 있으면 곧장 총구를 들이밉니다. 방해할 꺼면, 당장 내 앞에서 사라지라는 포스가 대단합니다. 와우.
총도 가지고 있겠다, 드디어 백선생까지 완전히 제압한 금자씨. 그리고 그녀는 백선생의 휴대폰에서 유추한 단서를 통해서, 이 나쁜 인간이 연쇄 살인마였음을 밝혀냅니다. 그것도 단지 자신이 돈을 쉽게 벌기 위해서 아이들을 유괴해서 살인한 끔찍한 잔혹범이라는 것. 이 때, 금자씨는 공동의 복수를 기획해 냅니다. 정말로 친절하게 말이지요. 살해당한 아이들의 가족들을 백선생과 마주하게 만들어, 직접 벌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범인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금자씨에게 그런 상식은 통하지 않습니다. 악에 의해서 나의 시간과 행복이 희생되었으니까, 복수할 기회도, 그 선택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실제로 법에 의한 처벌 대신에, 자의에 의한 처벌로 함께 죄인(!)이 되기로 결정했습니다. 직접 칼을 들고, 도끼를 들고 백선생을 벌하는 셈. 아! 그러고보면, 악인, 그것도 살인마를 쳐죽였다고 해서 죄인이라고 쓰기엔 어쩐지 조금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진짜로 나쁜 악이 여기에 존재하는데, 이 악을 제거해야만 하는데, 그래야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밝아지는데,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없앨 놈은 없애 버려야 한다. 설령 나는 구원받지 못해도 괜찮아! 라는 냉소적인 쿨함이 영화 후반부에 잔잔하게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구원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는 금자씨의 예쁜 딸이, 그녀를 꼬옥 안아주는 장면으로 엔딩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첫 문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함께 읽어봅시다. "정말이지… 착하게 살고 싶었답니다" 금자씨가 꿈꾸는 인생이란, 자신의 아이를 낳고, 예쁘게 잘 길러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착한 인생이었다는 것. 그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그녀는 한 손에 무기를 들고 달려가는 인생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읽고 있는 책 발칙한 예술가들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표현해야만 한다. 결정해야 하는 건 어떤 수단을 이용할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뿐이다." 친절한 "마녀" 금자씨는 복수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교회나 성경 대신에 총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며, 악인을 처벌하며 자신의 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을 벌하고자 했습니다.
예쁜 화장 보다는, 복수의 화장을 선택하는 모습을 통해서, "인간"은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대로 살아가게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가 끝나고서 저는, 우리의 인생에서 "악"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상을 "행복"으로 채워갔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상황을 만나면, 우리의 마음이 버티지 못할 수 있음을 저는 직감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니, 친절한 금자씨 같은 고혹적인 영화를 통해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절망적인 악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잔혹한 복수극에 가담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의 한계이자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쁜 일을 많이 계획하고,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수극은 끝났겠다, 친절한 금자씨는 이제 영어를 배우는 일을 시작하지 않을까요? 다시금 빵을 만드는 일에서 전문가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세계를 바꿔나가기를 원했고, 마침내 이루어 냈습니다. 어쩐지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실은 참 고마운 일이라는 것을 저는 매번 배우게 됩니다. / 2016. 06.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