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삼십세라(창세기41:46-)/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6. 6. 10. 01:31

 

삼십세라 (창세기41:46-)

 

성경에서 삼십세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이 삼십세 때였고 레위인들이 공직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30이었으며 요셉이 바로의 앞에 설 때가 삼십이었습니다. 당시 중근동 지역의 정서는 나이 30이 되어야 남 앞에서 공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 전에는 나아르, 즉 소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들 소년들은 아직 여러모로 미숙하여 남 앞에서 공직을 맡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감옥에서 학문과 영성을 갈고 닦다가 나이 설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바로의 앞에 서게 된 것이지요. 만일 요셉이 나이 설흔이 되기 전에 바로의 앞에서 이러한 꿈을 해몽하고 계책을 내었다고 한다면 요셉은 총리대신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아직 소년의 몸이므로. 아마 그렇다면 요셉은 기껏 몇가지의 상품만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아비를 찾아 가는 입장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정하신 때가 있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는 그 때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결코 나를 이대로 두지 않으실 것을 믿고 나간다면 반드시 그때가 당도할 것이고 그때를 위하여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요즘 청년 실업 때문에 참 말이 많습니다. 이 땅의 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백수가 된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합니다. 솔직히 별 쓸데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자격증도 따고 봉사 경력도 쌓고 심지어 졸업을 미루면서까지 취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준비합니다. 청년의 때에 취직을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다 합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비현실적인 제안을 하나 해볼까요?
나이 삼십이 되기 전의 이십대에 취직을 위해서 스펙을 쌓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알바자리는 아직 쉬운 것 같은데 그거라도 해서 약간의 돈을 마련해서 이 세상을 향해서 배낭하나 매고 나가보세요.

 

이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젊은 날의 여행은 일생을 사는데 있어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돈중심의 사회가 아닌 정을 소중히 여기는 관계 중심의 사회도 우리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한발 느리지만 더 여유있는 그런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말도 있지만 생존경쟁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기위 해서도 한번 다녀오실 것을 권합니다.

 

돈도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정부 주도의 봉사단으로 오지에 가서 봉사하는 경험을 제안합니다. 전 세계의 오지에 가서 봉사도 하고 적지만 급료도 주니까 그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요셉의 때에는 인간의 수명이 매우 짧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삼십전 까지는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공직을 맡기지 않았지요.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명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너무 일찍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진짜로 돈이 없어서 안되겠다. 그렇다면 시골체험을 한번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농사도 지어보고 산판에 가서 나무도 베어보고 녹차 잎도 따보고 버섯도 키워보고 산정에서 혼자서 몇일간 비박도 해보고...이러한 삶도 젊은이들에게는 미래를 사는 귀중한 재산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언제부턴가 너무나 여유가 없어 졌다고 하는 사실을 상기시켜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왜 여유가 없어졌나면 모든 놀고 여유를 찾는 일에는 반드시 돈이 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불과 육십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는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봄을 춘궁기라고 했지요. 먹을게 없어서 뒷산의 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는 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그때 제일 소원이 당연히 살밥에 고깃국을 실컷 먹는 것 이었겠지요. 아니 그건 놔두고 뭐라도 실컷 배터지게 먹는게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무리 가난해도 먹을게 없어서 배를 곯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노숙자들에게도 아침마다 점심마다 공짜 식사를 제공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돈을 벌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돈 돈 돈 거립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돈이 안되는 것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의 요지는 돈이 적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보라는 말입니다. 돈이 들지 않고도 얼마 던지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느껴보라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영성을 추구하라는 말씀을 드리면 그건 서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뛰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단계를 차근 차근 밟아가면서 성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영성이 아니라 영혼의 가치, 정신의 가치, 관계의 가치를 깨닫는 것, 정의 가치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아마 젊어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일생을 살면서 지나치게 돈 돈 돈 거리는 물질중심의 사고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순찰하니-요셉은 총리가 되고 제일 처음 한 일이 바로 애굽을 순찰한 것입니다. 그는 출세하고 난 다음에도 결코 태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가장 실수하는 것이 뭐냐하면 자기의 출세가 확정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출세는 자기의 쾌락이나 행복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해진 자리에서 더 열심히 하라는 주님의 계시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 자리에 합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설혹 우리가 그러한 직위에 임명된다 해도 얼마 가지 않아 직위를 잃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출세를 한 것이지만 제가 말하는 출세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출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요, 이걸 우리는 출세라고 하지 말고 성공이라고 부르면 좋겠네요.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며 생활비를 받는다는 것 만큼 좋은 일도 드물것입니다.

 

꼭 로또나 연금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나,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일 만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도 그걸로 생활비 걱정을 안해도 된다면 이 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일이라면 그는 너무나 신이 나서 계속해서 일할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생활이므로. 남자들의 관심사 중에 오디오가 있습니다. 스피커와 엠프 그리고 케이블에 관심을 쏟고 이것저것 바꿈질을 하고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는 둥 하면서 신나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오디오점에서 일한다면 그 사람이 스피커를 만드는 곳에서 일한다면 그 사람은 매일 매일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 같아서 행복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이 각각 있습니다. 일률적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행복의 조건을 정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가령 피를 싫어하고 칼을 싫어하며 화학이나 생물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의사는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삶이 될 것입니다.

 

저축하되 저장하매—그는 7년간의 대풍년에 거두어들인 것을 저축했습니다. 잘나갈 때 풍족할 때 저축하여 흉년을 대비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지요. 사실 좁게 본다면 이 저축은 애굽의 국민들을 위함이지만 그 속에 요셉이 아버지와 가족이 먹을 양식을 준비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큰 민족으로 만들고 그때까지 그들을 보호하여 마침내 그들이 가나안의 주인이 될 때가지 애굽 땅에서 히브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거대한 섭리의 일환으로 히브리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함께 복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약속의 자녀들이 가는 곳에는 어디나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있기 때문에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이 이 땅에 임하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이 땅을 위하는 길인가를 잘 살펴보고 나아가야 할 바를 정해야 합니다. 단지 이 땅 한반도에서 그냥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이 땅이 우리로 말미암아 얼마나 살기 좋게 바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인들의 십일조의 삼분의 일은 이웃에 이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삼분의 일을 가난한 이웃과 인근의 레위인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이미 많이 쌓아놓은 곳이 아니라 정말 그 물질이 필요한 곳에 십일조가 흘러가게 된다면 세상은 교회를 다시 보게 될 것이므로 전도도 저절로 될 것이요, 하나님의 물질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쓰여 지므로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늘의 천국을 소망하지만 최후의 때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법이 이 땅을 통치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그 일을 오늘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원래 그렇습니다. 이 땅에 드디어 사탄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 통치규범이 되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 교회가 필요하고 교인이 필요하며 목사가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군사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렇다면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가치관을 가지고 그냥 그대로 살다가 교회에서 그러한 가치관을 나타낸다면 더 이상 그것은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사탄의 사역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성은 원래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가 육신의 눈을 가짐으로, 먹고 입고 느끼는 육체를 가짐으로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육체의 본능이 영성을 갉아먹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싸인에 대해서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려고 하면 우리가 영적이어야 합니다.

 

비록 내가 눈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느낌, 성령의 만지시는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이 땅에서 항상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영적인 민감성이 없다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냥 세상의 가치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오분의 일을 모았음에도 바다모래같이 많아서 세기를 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요셉은 이때 오분의 일이 아니라 삼분의 일이나 절반을 모아두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만일 그랬다면 사람들은 요셉에게 반항하며 욕하고 폭동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내 것을 빼앗는 폭군이라고 생각해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결국 요셉은 일을 하기도 전에 총리자리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일반인들은 항상 배고팠고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유례없는 대 풍년을 경험하고 이제 조금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데 그걸 또 흉년을 대비한답시고 빼앗았다면 사람들은 즉각 반발하고 정부를 불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7년의 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처음으로 맞는 대풍년 때문에 바로의 치세를 칭송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대비도 좋지만 정권을 튼튼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무릇 요셉이 한 일은 적은 양으로 백성들의 반발을 막는 한도 내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삼한 말 전국에 군웅이 일어나고 왕이 되려는 사람들이 넘쳐났지만 왕건이 결국 나라를 세운 것은 그가 제시한 부십일세, 즉 십분의 일만을 세금으로 거둔다는 정책이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저항이 가장 적으면서도 정부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위한 세금이 바로 이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단지 이것을 흉년에 받지 못하니까 풍년에 미리 거두어 들인 것 뿐입니다. 물론 세율은 똑 같아도 대풍을 기록했으니까 양은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사실 정부가 거두는 세금을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특별히 세금을 더 거두어 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국책사업도 해나가면서 공무원들 월급도 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산의 많은 부분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중간에 새버리고 사람들이 착복하고 하기 때문에 항상 예산부족이란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그렇습니다. 내일의 필요보다 오늘 내 배가 부른 것을 더 좋아하는 단순한 족속들입니다. 이기적이며 근시안적이므로 이들과 더불어 국가와 나라의 내일을 논의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평소의 두배를 징수해서 국가의 대환난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워낙 철저하게 관리해서 비능률과 중간의 착복과정을 없앴기 때문에 이 적은 양을 가지고도 그는 충분히 애굽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더불어 중근동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동아줄을 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라가 유지되기 위해서 세금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것은 누군가 낸 세금으로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흉년이라고 해서 국가가 할 일을 안 할 수 없으므로 미리 풍년 때 흉년에 거둘 세금을 거두어 둔 것입니다. 애굽의 세금은 평소에는 십분의 일이었고 그 두배를 거두었으므로 오분의 일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흉년때는 세금을 감면해준 것입니다.

 

비록 7년의 대풍때에 세율이 두배가 되엇지만 풍년으로 인해 거두어들인  절대적인 양이 많아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혀 거부감 없이 두배의 세금도 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수인한도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 정도까지는 참을 수 있다는 정도가 있는데 이것을 넘게 되면 참지 못하고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이 수인한도를 잘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아마 애굽 주민들의 수인한도는 오분의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사람들만 수인한도가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에게 이러한 수인한도를 정하고 계시는데 그 안에서 우리를 인내하게 하시고 연단시키십니다. 그러나 그 수인한도는 상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개인을 너무 잘 파악해서 개인별로 정하는 것이고
그 수인한도는 우리가 잘 날수록,
더 큰 일을 해야 할수록 수인한도가 높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하나님의 극심한 연단과 인내가 온다면 나는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나를 더 크고 놀랍게 사용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통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결혼 연령이 남자32세 여자 30세가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32.3과 29.8이지만 대략 그렇다는 말입니다. 부산은 남자 32.9 여자 30.5입니다. 예전에 비해서 결혼 시기가 많이 늦어 졌습니다. 노총각 노처녀로 불릴만도 합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연령이 19셉니까? 여하튼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서도 십년도 더 지나서 결혼한다는 말이지요.

 

이들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두가지라고 합니다. 취직은 했느냐? 결혼은 언제 할꺼냐?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님의 조급함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들에게 숨 쉴 구멍을 주세요. 그래서 자녀들에게 너무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지 마세요. 삼십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바로의 앞에선 요셉처럼 모든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알지 못합니다.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조한 것이지요. 정하신 때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평하지 않고 얼마나 잘 기다리느냐가 사실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굳센가하는 시험인 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더 확실히 믿을수록 나는 더 잘 기다립니다. 그가 결코 나를 이대로 두시지 않을 것을 내가 더 잘 믿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래도 머리를 들면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고 황금빛 태양아래 연녹색의 초목들을 즐길 수 있습니다. 요셉은 삼십세로 바로의 앞에 서기 4년 전에 국사범을 가두는 지하 감옥에 갇혀서 그 모든 자연이 주는 혜택들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희망고문이라고 합니까?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이 “너의 무죄를 밝히고 너를 풀어 주겠다”고 약속하고도 거의 3년 정도를 더 감옥에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달 두달, 한해 두해가 지나면서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 까요? 금방이라도 해결될 것 같았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을 때 그는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요셉의 꿈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애굽과 중동전역의 기근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하는 거창한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런일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다만 누명을 벗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것만이 그에게 유일한 꿈이었지요.

 

오래 기다렸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자유에다 총리대신에다 아내와 자식과 형제와 동족의 구원자에다 세계를 구원한 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아 주셨습니다. 그래요,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변함없이 불평하지 말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확고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가기를 바랍니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자비를 만날 것입니다. 마침내 아버지의 정하신 때가 되었을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준비한 시험과 연단을 모두 통과하고 인내한 끝에 영광의 면류관, 생명이 면류관을 받아 쓰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6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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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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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한 사람이 장성해서 사람답게 살아가기가 마냥 쉽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돈은 벌어야 하고, 빠져나가는 돈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요. 그러다보니 머릿속이 돈 밖에 없습니다.

일이 힘들 때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합니다. 보수가 2배~3배라면 그 일을 할 것인가?

YES라면 일이 힘든 것보다는 보수에 대한 불만이 큰 것일테지요.

그래도 NO라면, 일을 그만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이니까요.

 

나와 맞는 일, 나와 맞는 사람, 청춘시기에 이 두 가지를 발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축복이 아닌가 합니다.

적은 돈이라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괜찮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은 또 찾아지니까 말이에요.

많이 소유하기 보다는,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지런해지기, 하나님 앞에서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보기, 그런 바람을 적어봅니다.

 

아무쪼록 힘내시길 응원합니다. 20대, 30대 여러분, 삶을 긍정적으로 버텨가며, 포기하지 맙시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