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세바시 11회 - 고전이 주는 찬란한 유산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시북(허지수) 2016. 7. 15. 05:48

 

 세바시 2011년도 강의의 내용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15분의 이야기들, 그 매력 속으로 빠져봅니다.

 ※ 11회 원본 강의 주소를 함께 첨부합니다. 아래 본문은 제 느낀 바대로 편집 및 요약되어 있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ROBMNLwxU74

 

 고전이라는 것 안에는 뭔가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고전이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제이콥스 라는 작가가 쓴 짧은 단편, 원숭이의 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세 식구가 살았는데요, 아버지, 어머니, 20대 청년이 살고 있었어요. 이 때, 인도에서 근무하던 먼 친척이 오지요. 같이 식사를 하다가, 원숭이 손을 내놓고 이야기 합니다. 인도의 주술사가 만든 건데, 이 손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거에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불행해 진대요! 나는 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그 소원 때문에 못 버렸다는 것!

 

 나중에 친척이 떠나자, 세 식구는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원숭이 손을 들고 소원을 말해보는겁니다. 75만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손이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돈은 어디에도 없었고, 그만 잊어버린 채 다들 잠을 청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20대 청년 아들이 공장에서 그만 윤전기에 끼는 참변을 당해 죽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 아들이 죽은 것은, 아들 스스로의 잘못이 컸기에 회사에서 보상은 못해주고, 회사동료인 우리끼리나마 호의를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 얼마였겠어요? 바로 75만원이었습니다.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나보죠. 이제 어머니는 마음을 굳게 먹고 두 번째 소원을 빌기에 이릅니다. 소원은 뭐였을까요? 예상하신 분들도 있으시겠죠, 아들이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아버지는 또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며 반대했지만, 어머니의 결심을 막진 못했습니다. 소원을 빌자마자, 저 멀리서 누군가가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머니는 윤전기에 끼어 이미 참혹하게 생을 떠난 아들을 맞이하며 문쪽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아버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재회가 되었음을 직감합니다. 아들이 무덤에서 일어나서, 썩어가는 도중에 어머니를 만난다면 그것만큼 공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을 원숭이의 손을 잡고 빕니다. 아, 제발 아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는 집의 현관을 열었고, 아무도 오지 않은 채, 바람만 쌩하고 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서양에서 오래된 세 가지 소원의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첫째, 사소하고 하찮은 소원을 빕니다. 둘째, 그 소원 때문에 이루어진 비극과 관련된 소원을 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소원입니다. 결국 제이콥스의 세 가지 소원 이야기는 비록 행복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이러한 패턴을 따랐기에, 힘이 있고, 재미가 있고,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계모가 아이들을 갖다 버리지요. 그보다 먼저된 판본을 살펴보면, 부모가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갖다 버립니다. 계모까지는 사람이 나빠서 그럴 수 있다고 이해가 되었지만, 엄마가 아이들을 버리다니요. 시대적인 상황을 봐야 합니다. 당시에는 노동력이 중요했고, 엄마도 나서서 일을 해야했고, 그럼에도 가난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럼에도 계속 낳게 되었지요.

 

 어쩔 수 없이 공동 위탁 시설에 아이들을 맡겨야 했습니다. 결국 그 시설 속에서 많게는 80%까지 아이들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기록이 끔찍하지만 남아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이렇게도 헨젤과 그레텔이 이해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은 부모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성인식을 위해 내다버리는 이야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일정한 의식 후에, 아이들이 되돌아오면, 이들을 성인으로 인정해주는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즉, 시대에 따라 같은 이야기가 여러가지로 다르게 읽혔던 겁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세월이 흐르면서 바뀌기도 합니다.

 

 E.T.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지요. 엘리엇과 E.T.의 손가락이 서로 마주치는 장면은 참 유명합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어낸 외계인 이야기의 핵심은, 외계인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러 오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러 올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손가락씬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에서 가져온게 아닐까 싶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려야 했습니다. 왼쪽이 아담이고, 오른쪽이 하나님인데, 그의 상상 속에서는 천지창조의 과정이 이렇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 고전이 있었기에, 스필버그 감독은 E.T.와 엘리엇의 만남을 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듯 고전에서 무엇인가를 가져온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보티첼리의 비너스 입니다. 비너스 그림들의 특징이 있는데, 누드라는 겁니다. 또 물과 바다가 강조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물거품에 의해서 비너스가 탄생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비너스의 그림도 있습니다. 옷을 입고 있는 비너스도 있다는 겁니다. 즉, 다른 쪽의 그림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편견이라고도 하죠.

 

 깊이 있는 시각이, 깊이 있는 생각을 만들고, 나아가 깊이 있는 생각이, 깊이 있는 삶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밝은 눈으로, 예쁜 눈으로 잘 찾고, 우리의 마음 속에 잘 담아갈 때, 행복한 삶, 의미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겠습니다.

 

 2016년 7월 15일자 오늘의 영감 - (며칠간 몸이 아파서 세바시 글쓰기를 쉬었습니다.) 이번 강의는 조금 독특하게 들렸습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찾아보라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주로 자기계발서, 경영학, 심리학 서적 등을 즐겨보다가, 현대고전으로 꼽히는 어린왕자를 읽고, 매우 놀랐던 경험 말이에요. 그 짧은 이야기 속에, 행복이 무엇인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나는대로 떠올려보면, 바오밥나무 이야기가 아직도 머리에 남아 생각납니다. 자신의 별에 나쁜 습관처럼 바오밥나무가 살고 있는데, 이 나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소중하고 아름다운 별을 잡아먹어 버린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삶을 망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시간을 관리하지 못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오밥나무 관리는 간단한 일이라는 충고도 덧붙입니다. 작고, 사소한 것부터 노력하면, 우리는 삶을 다시금 통제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더 많은 꿈을 꿀수록 더 많은 두려움이 솟아난다. 두려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야망을 품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신호로 이해하는 것이 희망을 유지하고 스스로와 세상을 더 낙관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 중에서)"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장면으로 글을 쓸 때마다, 두려움이 있습니다. 또 다르게는 강연을 듣고 요약해서 글을 써야 하는데 소화불량이 될까봐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전진해 나갈 때, 자신감이 생기고, 세상을 재밌게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깊이 있는 시각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직, 간접 경험이 쌓일 때, 지혜로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날의 시행착오도 이제는 지나간 일이니 괜찮아 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유배 중에도 책을 읽음으로서 삶의 즐거움을 발견해 나가던 정약용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순간에도 삶은 긍정적으로 발견되어져 나간다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내봅니다. 이런 저런 실수를 하지만, 그렇게 또 커나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욕심이겠지만, 계속해서 더 많은 영화, 그리고 더 많은 강의, 더 많은 책 앞에 풍부하게 서 보기를. 그렇게 조금씩 훈련되어져 가기를 열망해 봅니다. 오늘의 자기반성 이야기는 여기까지. /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