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돼지의 왕 (The King of Pigs,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6. 8. 1. 00:23

 

 어쩐지 요즘 스릴러 영화만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만, 그래도 느낀 바도 많고 즐거운 영화 릴레이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채널CGV에서 고맙게도 보고 싶었던 돼지의 왕을 방영해주었습니다. 소감은 역시 잘 만들었다! 한국 애니메이션 참 멋지다! 입니다. 그리고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죽음, 그것은 절대로 피해야 하는 것. 고통, 그것은 때로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 이런 생각들이 일단 지나가니까, 마음에 꼭 담아둡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절망을 담고 있지만, 단지 절망에 관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바꿀 수 없었던 인간, 그리고 마침내 눈물로 각성하는 모습이 참 눈부시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잔혹합니다. 보기에 녹록치 않은, 괴로운 컷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산다는 게 본디 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만 해도, 매일 돈벌이를 하는 고단함을 겪고, 실수도 하고, 가끔은 싫은 소리도 듣고 합니다. 아주 능숙한 일을 하는데도 이렇습니다. 그래도 삶이 고단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참 좋습니다. 그럼요, 살아있다는 것은 언제나 가능성이라 생각합니다. 서론은 이쯤하고, 본격적인 영화 속 이야기로 어서 들어가겠습니다. 19세 영화에 맞춘 리뷰이므로, 미성년자는 뒤로가기 눌러주시는 것을 조심스레 권장합니다. 리뷰 내용이 좀 자극적이라...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경민이라는 친구는 부자입니다. 아버지가 가라오케를 운영하고 있고, 고기반찬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이른바 중산층입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는 울보입니다. 아이들의 심한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애처롭습니다. 그리고 친구인 종석이 이 장면을 어찌할 바 모르고 지켜보고 있지요. 이 때, 멋지게 등장해서 주먹을 날려주는 친구, 철이가 있었습니다.

 

 멋지고 강한 친구 철이! 철이는 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습니다. 친구들이 괴롭힘을 당하자 명대사를 날립니다. 너희들 해도해도 너무 심하지 않아? 그러면서 중학교의 질서를 흔들어 놓습니다. 말이 중학교지, 여기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써도 크게 틀리지는 않겠지요. 공부 잘하고, 능력 있고, 힘 센 자들이 윗자리에 앉아서 높으신 분들의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한 자들은 얻어 터지고, 놀림 받고, 희롱당하기까지 합니다. 세상의 슬픈 현실이지요. 그래서 맹랑한 중학생 철이는 감히 제안합니다. 답은 악이야! 악으로 이겨내면 되는 거야!

 

 악해지자는 겁니다. 철이 손에는 여러 번, 칼이라는 도구가 쥐어지게 됩니다. 싸우다 안 되면 도구를 휘둘러서라도 나는 지지 않을꺼라는 신념까지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무섭다기 보다는,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철이의 삶 자체가 "이미 버림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매우 깊숙하게 폐부를 찔린 듯한 통증이 옵니다.

 

 이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라, 글을 쓸 때는 거의 꺼내지 않지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 그것도 여럿이나 "진지한 생각, 혹은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고백을 한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나는 그게 언제나 미안했고, 가책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비교적 사랑받는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자살 같은 건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10대 시절, 세 친구의 이야기 입니다.

 

 한 친구는 빚에 시달리고, 부모님이 별거하면서,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공부를 포기하고 맙니다. 한참 열의를 불태울 10대에 성경 연구와 진리 연구에 몰입하더니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성실한 그 친구가 지금도 열정을 엉뚱한 곳에서 불태우고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두 번째, 이 친구는 친누나에게 수천만원대 인감 사기를 당했고, 그 채무를 지금까지도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술잔을 들이키며 죽고 싶었다는 말을 할 때,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해서 자책감이 심했습니다.

 

 아마 영화 마지막에 종석이 눈물 흘리던 장면도, 친구들이 죽어가는데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가담까지 해버렸던 자신의 과거 앞에서, 삶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였어! 라고 깨닫는 것, 말을 함부로, 행동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반성적으로 되묻게 됩니다.

 

 저의 마지막 친구는, 가정폭력에 심하게 시달리던 친구였는데, 어느날 손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커터칼 자국이 몇 번씩 나있었습니다. 차마 깊숙히 그을 용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삶이 질기다고 해야할까요. 저는 그 삶의 질김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친구들로 인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조금은 넓어지게 됩니다. 삶이 얼마나 힘들고, 아픈 일인지를 이 친구들을 통해서 매우 강하게 배워나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영화를 보며 철이와 철이의 엄마가 새로운 삶을 그려나가자 라고 다짐하는 장면이 제일 좋았습니다. 거기서 구원이자, 희망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철이 엄마가 사회가 낙인찍는 험한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고, 철이는 학교를 좀 더 늦게 다녀야 할지도 모르지만, 악에 의한 변화가 아니라, 사람은 결국 소중한 존재로 인해서 힘을 내는구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존재가 있어서 삶은 특별하고 행복해 진다는 생각, 요즘 제가 글로 자주 결론 짓는 방법입니다.

 

 그래요. 어쩌면, 철이는 돼지의 왕이 될만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왕이 되었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요. 중학교 3년을 왕처럼 보냈다고 해서, 그렇게 남 위에서 주먹질 짱으로 시간을 보낸것이 행복이었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철이가 나중에 보여주는 비겁한 태도가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제 그들의 질서에 맞춰서 살아보려고 해, 죽은 듯이 살아가겠지만, 학교 교과과정을 끝까지 마치려고 해, 그 솔직함이 매우 좋았습니다.

 

 .단지, 철이가 참 불쌍하기만 합니다. 또한, 사회안전망도 없이, 두 번째의 기회가 없이 빚더미에서 절망해버린 경민이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사는게 무섭다며, 미안하다며 눈물흘리는 종석이를 통해서, 사는 게 무엇인지 힘써 생각합니다.

 

 안 되면 죽음 으로 해결한다는 사고방식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사는게 참으로 억울하다면 국민신문고 라도 두드려 봐야 합니다. 방법을 모색해 봐야 합니다.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면 개인회생이라도 신청해서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는 반문할테죠? 그렇게 힘든 재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요!

 

 다시 노력하는 삶을 산다는 것, 저는 이런 표현들이 참 좋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강자들이 저질스럽기 까지 한 세계이지만, 그럼에도 성실히 찾아본다면, 우리가 견뎌나갈 수 있는 희망의 길도 발견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뭐, 사는 것이 결국은 어려움의 연속이 맞습니다만, 그 속에서 행복하기를 추구할 수 있기 바랍니다. 괴물이 되지 않고도, 괴물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버텨나가는 우리들 자신을 힘껏 격려해 주기를! 이번 스릴러 애니메이션 참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CGV, 그리고 연상호 감독님! / 2016. 08.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