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비긴즈 같은 뛰어난 오락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진지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이 친구들은 참 영화를 잘 만드는구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는구나! 당당히 싸울 수 있는 힘이 있고,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 간단히 말해 영웅이 되는 것이 얼핏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 선의 영역 뿐만 아니라 "악의 영역"에도 충분히 가까울 수 있음을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범한 영웅이 되어서 잘난 체 하기 보다는 (잘난 척이라! 배트맨의 스승격인 듀커드가 딱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각자의 주어진 자리에서 선을 향해서 살아가는 소박한 발걸음이 사실은 더욱 고귀한 것일 수 있습니다. 경찰로서, 검사보로서, 배트맨으로서, 집사로서, 과학자로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고담시는 살만한 곳이라는 브루스의 주장은 너무 근사합니다. 그는 이 어지러운 세계도 희망이 꽃필 수 있는 곳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비록 브루스가 이중생활에 매우 고된 노력을 해야 하지만, 선한 사람들을 믿고 함께 하는 모습이 다정하고 근사하고 멋집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사실 영웅이 무적이고, 적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된다는 식의 간단한 구성이면 차라리 이해하기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브루스가 배트맨이 되어서 활약하기까지를 매우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술훈련을 강도높게 받았기에 싸움에 능숙해져도, 결코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체포되고, 구속되어, 감옥에 갇히는 절차를 따르게 합니다. 정의가 질서 있게 구현되는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힘은 해방되기 보다는 자제 되어 있습니다. 집사 알프레드가 TV를 보면서 농담을 던지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너무 화려한 행동들이 아닙니까.
고든 형사를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는 이야기를 잠시 나눈 후,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데 건물에서 건물로 뛰어다니다가 부상을 입고 참 안쓰러운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차례차례 브루스는 과학자 폭스와 함께 복장과 무기들을 업그레이드 했고, 신문에 실리는 것도 각오한 채, 고담 시의 새로운 상징이 되고자 움직입니다. 세상에 선이 없다면, 모든 곳이 부패하고 있다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음을 이제 알려주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부패경찰들은 이제 떨게 되었으며, 일반 시민들은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꿈을 향해서 달려가는 배트맨의 모습이 정말이지 아름답고 눈부십니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니까 말이에요.
소꿉친구 레이첼의 명대사가 영화에서는 결정적 순간마다 두 번이나 등장하는데, 배트맨 비긴즈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본래 모습은 행동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 그러므로 나는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느냐가, 현재의 나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무척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속으로는 오늘도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결심하지만, 늘상 행동은 의식만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그 후에 합리화 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무척 많았으니까요. 읽고 있는 책의 대목을 빌려본다면, 저는 심적 표상의 질이 높지 못했고, 행동을 편안한 곳에 안주시켜 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쉽게 말해, 삶에 지쳐 어느새 나도 모르게 대충 살아가게 되었던 것!
그래서 이른바 컴포트 존 (편안한 영역) 을 넘어서는 활약을 매번 보여주는 브루스의 대단한 마음의 힘에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적의 잔혹한 공격으로 이틀이나 사경을 헤매는 등 죽을 위기를 겪었음에도, 그는 자신에게 해야할 일이 있으며, 그 불편한 영역으로 자신의 몸을 이끕니다. 함께 해독제를 만들고,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악의 세력과 마지막까지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해외 리뷰에는 이런 멋진 평가가 붙어 있는 작품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목적을 잃어버릴 만한 사람이나, 매일의 일상에서 여러 사람에 현혹되어 버리는 사람이라면 꼭 1번은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저도 그래서 배트맨 비긴즈에 커다란 매력을 느꼈습니다. 행동을 하고 있느냐 라는 질문에 오늘 YES 라고 답하기 위해서, 재도약할 것을,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게 채찍질 할 것을 아주 강하게 요구받게 되었으니까요. 한 영화를 통해서 이토록 분발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네요.
삶에 대한 재발견, 각성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요. 더 많이 읽어나가겠습니다.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더욱 성실해지겠습니다. 그렇게 넘어져 있던 태도를 고치고 바로 잡게 됩니다. 추구하고 있는 목적 앞에서 이제부터는 쉽게 게을러 지지 않기를! / 2016. 12.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