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청지기 비유 (누가복음16:1-)
오늘 나오는 청지기는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4복음서 중에서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부자와 나사로 비유 역시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사실 청지기는 다르게 번역하면 ‘감독’이란 말도 됩니다. 축구 감독이란 말이 아니라 그러니까 교회의 감독도 들어갑니다. 감독은 목사입니다. 목사 역시 주님의 제자인 것이고 그래서 여기서의 청지기는 사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청지기 비유는 여기 우리 주님의 제자인 우리 성도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으로 보아도 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인 이 청지기는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8절에 보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라는 말이 나옵니다. 제가 저를 생각하면 역시나 불의한 청지기가 맞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축내고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심했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그래서 불의한 청지기인 것이지요.
참고로 1절은 다시 제대로 번역하면 “한 청지기를 소유하고 있는 어떤 부자가 있었다”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주어는 청지기가 아니라 주인입니다. 굳이 여기서 주인이 주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청지기는 언제든지 주인의 마음에 따라 해고될 수 있는 신분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재물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본문을 보면 사실상 우리가 바로 청지기이며 주인은 하나님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은 바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맡아서 관리할 뿐이며 주인은 언제든지 우리를 해고하고 다른 이에게 자기의 재물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말도 안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보다 크게 본다면 우리는 지극히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착각하고 불확실한 세상을 사는 겁니다. 확실하고 안정된 것은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우리는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이 안정되고 확실하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 청지기 비유를 보면서 생각나는 본문이 있습니다. 다윗의 도움 요청을 거부하고 다윗의 병사들에게 “내떡, 내 양털, 내 물” 이라고 끊임없이 내 것을 강조하다가 그 모든 것을 두고 죽어버린 나발, 어리석은 바보가 생각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하고 언제까지나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이 본문은 우리네 재물이 우리네 건강이 심지어 우리네 목숨이 결코 영원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종종 우리가 재물의 주인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영원히 나의 소유일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하면서도 내것이고 그래서 내맘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이 맡긴 재물을 가지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즉시 우리를 해고하고
즉시 우리에게 맡긴 재물을 도로 찾아서 다른이에게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청지기적 사고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그가 나로 하여금 이 재물을 맡아서 자신의 뜻에 맞게 잘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있었고 이 말이 주인에게 들렸습니다. 옛날 성경본문에는 ‘허비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이나 두 번 이렇게 허비한다는 말이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돈을 허비한다는 뜻이 그 말속에 들어 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가 자기의 재산을 늘려 주기를 바라서 재물을 맡겼는데 그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인의 재물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낭비’라는 뜻은 원문상 ‘재산을 흩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낭비해서 재산을 자꾸 흩어버리고 그래서 지속적으로 재산이 줄어든다는 말입니다. 어떤 주인도 좋아할 수 없습니다. 청지기를 바꾸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는 말에서 ‘들린지라’는 문자 그대로 소문이 들렸다는 중립적인 뜻이 아니라 ‘밀고되다, 고발되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사탄이 성도들을 ‘참소한다’고 할 때도 이 말이 쓰일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이 청지기가 주인의 돈을 지속적으로 낭비해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낭비하고 허비하고 재산을 줄인다는 악의적인 고발이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아마 이 고발이 진실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에 합당한 처분을 내립니다. 물론 불의한 청지기도 할말이 없는지 순순히 수긍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우리의 일에 대해서 이와 같이 대응하십니다. 즉 우리가 뭔가 잘못하면 이걸 본 사탄이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참소해서 마구 고자질을 합니다. 그러면 진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가 정하신대로 벌을 내리지 않으실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셔도 그의 법에 어긋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틈을 타지 못하게 항상 자신을 지키며 하나님의 법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하튼 청지기의 비위가 고발되었고 이를 접수한 주인이 이 청지기를 불러 청지기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라고 말합니다. 참고로 주인은 고발자의 말만으로 이 청지기를 내치는게 아닙니다. 아마 이 고발자의 말이 참인지를 가리기위해 정밀한 내사가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 고발이 사실로 밝혀졌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지기 역시 아무런 변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 됨이냐“라고 말하는데 이 말에는 ‘네가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아마 주인은 그 동안 청지기를 매우 신임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주인은 청지기에게 더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청지기에게 말합니다.
네가 관계하던 모든 재무관계를 정산하고 다른이에게 넘겨 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해고통보를 받은 겁니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살다보면 이런 일이 많습니다. 이번에도 은행권에서 명퇴를 신청받는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여기 이 청지기는 명퇴도 아닙니다. 부정을 저지르다가 적발되었기 때문에 퇴직금도 위로금도 없습니다. 멍석말이를 당하지 않은 것만해도 감사할 정도입니다.
한달 후에 퇴사를 하라는 해고통보를 받게 되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할까요? 일이 손에 안잡혀서 울분에 젖어 시간만 보낼까요? 아니면 그래도 최후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는 상사를 찾아 다니면서 구명운동을 할까요? 아니면 보다 지능적으로 회사에 빅엿을 선사할 준비를 할까요? 소극적으로 인수인계는 모르겠고 나는 당장 회사에 안나갈란다라고 하며 잠적할까요?
다른 대응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각자 나름 퇴직 준비를 합니다. 그것도 자기의 앞날을 위한 준비를 하는거지요. 그런데 이 청지기처럼 대응하는 이는 참으로 드물겁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해고통보를 받자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하는 일마다 잘돼서 이익을 남기냐. 어쩌다 보면 손해를 볼 때도 있지’
‘내가 이제까지 벌어준 돈이 얼만데. 겨우 몇푼 낭비한 걸로 너무한다’
‘내가 조금만 떼먹을걸. 너무 많이 떼먹어서 들통이 났구나’
‘조금만 더 조심해야 되었는데 . 안타깝다. 이제 어디서 돈을 떼먹지?’
‘몇푼 떼먹지도 않았는데 그 큰 부자가 겨우 그정도 가지고 인색하기는, 하여튼 부자들은 안돼. 내가 이때까지 봉사한게 몇년인데’
‘그래도 멍석말이는 당하지 않은게 어디야. 주인이 생각이 바뀌기 전에 빨리 멀리 떠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합니다. 넋두리나 원망의 말을 쏟아 내는게 아니라 제 살 궁리를 합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이 불의한 청지기가 뭐할지를 몰라서 한탄하는 말에서 우리는 청지기가 재산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규모로 횡령한게 아니라는 거지요. 단순히 주인의 재산을 증식시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손해를 봐서 줄어들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라고 해서 무슨 대규모로 주인의 돈을 횡령하거나 주인의 눈을 속이고 이상한 짓을 한 사기꾼인줄 알았지만 그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청지기가 주인의 돈을 횡령한게 아니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불가피하게 손해를 끼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투자해서 이익만 보겠나요?
여하튼 우리는 이 상황이 정확하게 어떤 경우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 청지기는 해고통보를 받은 겁니다. 명퇴가 아니라서 위로금도 퇴직금도 없어서 그는 이제부터 뭐를 하면서 먹고 살아야 될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김밥집? 치킨집? 이 두 개는 제가 진짜로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편의점, 커피, 프랜차이즈 식당? 돈이 좀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다른 기술이 필요로 하는 수리점? 지식이나 연줄이 있어야 하는 대리점? 뭐해서 먹고 살지를 걱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졸지에 실업자가 될 것이고 재산은 없어서 이제부터 뭐해서 먹고 살아야 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이 사람은 특이하게 자신이 주인의 돈을 낭비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도 없고 더 지혜롭게 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도 없습니다. 엄청나게 현실을 잘 받아 들이고 재빠르게 제 살 궁리를 하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하던 일을 셈하라” 이 말은 청산절차니 인수인계절차를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던일을 즉시 그만두고 회계장부를 넘기라는 말입니다. 이제 이 사람의 퇴직날짜는 더 당겨졌습니다.
이 청지기는 우리가 편의상 불의한 청지기로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이 사람이 하는 양을 보면 불의한 청지기 이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입니다.
그는 누가 자신의 비리를 고발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그는 과거에 잡혀 있기 보다는 미래로 나가려고 합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인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보통 보면 자기를 잘 모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사업에 덤벼들었다가 2년후에 재산을 다 날리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뭐 이 사람은 재산이란게 없는 모양입니다만. 오죽 했으면 빌어먹는 이야기까지 나오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 이 사람 같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 일해서 먹고 살고, 조금 더 여유가 있으면 한달 일해서 월급 받아 살고 주로 그런 식이지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제대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주인의 은총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엔가 그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가 해고입니다. 당장 뭐해서 먹고 살아야 될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은 더 가관입니다. 곧 죽어도 육체노동은 안할려고 합니다. 남에게 손벌리는 것도 수치스러워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부자집 청지기로 잘 살다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니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과연 어떤 일을 하려고 할까요?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여기서 나온 사람들은 빚진 자를 말합니다. 누구에게 빚을 졌느냐 하면 실제로는 자기에게 빚진게 아니라 주인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기를 영접하게 할 묘수가 생각난 겁니다.
이제 이 계획이 제대로 되면 이 사람의 생계는 주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빚진자들이 책임지게 됩니다.
이 사람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서 그들이 주인에게 빚진 액수를 물어 봅니다. 그는 이런 저런 명목으로 주인에게 빚이 있는 자들을 모두 불러서 물어 보고 그들의 빚을 경감해 줍니다. 줄여 주는 거지요.
첫 번째 사람은 기름 백말을 빚졌다고 말합니다. 여기 나오는 기름은 감람유를 말하고 ‘말’은 히브리의 단위인데 그냥 편의상 우리나라 단위로 사용한 겁니다. 그래서 한말이 약 23리터정도 되고 감람유 백말의 가격은 일천 데나리온에 달했다고 합니다. 노동자 삼년 품삯입니다.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증서를 고쳐서 오십말로 줄이라고 합니다. 사문서 위조를 저지르게 하는 겁니다.
당시 감람유의 이자는 백프로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원래 기름 오십말을 빚졌고 이제 그것이 이자까지 포함해서 백말이 된 겁니다. 그런데 그는 이자 오십말을 깎아 준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실제로는 주인에게 빚을 진게 아니라 청지기에게 빚을 지게 됩니다. 주인은 이자를 받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원금인 감람유 오십말은 창고에 그대로 있게 된 겁니다. 기름의 입출은 청지기가 관리하므로 주인은 이걸 모를겁니다. 재산변동 상황은 없이 청지기는 남의 돈으로 인심을 쓴 겁니다.
또 다른 이는 밀 백석을 빚졌다고 합니다. 여기의 석도 편의상 우리나라의 단위를 사용했지만 이스라엘의 단위로 한석이 350리터이고 돈으로는 은25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니까 밀 백석이면 무려 2500데나리온이 되는 것이지요. 이 사람에게는 밀 팔십석으로 쓰라고 합니다. 20석을 깎아 준 겁니다.
앞에는 절반이나 깎아 주고 이번에는 겨우 2할만 깎아 준 것 같지만 탕감된 액수는 500데나리온씩으로 똑 같습니다. 게다가 당시 밀의 이자율은 25%입니다. 청지기는 비록 불의한 자이기는 하지만 매우 똑똑하고 민첩한 자입니다. 이번에도 원금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을 깎아 준 겁니다.
역시 주인은 자기의 재물이 나갔다가 들어온 것을 모를겁니다. 주인의 원금은 그대로 있고 이자만 못받은 겁니다. 아마 주인은 창고를 직접 관리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사실도 모를 겁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돈을 역시 500데나리온을 선심 쓴 겁니다.
자, 주인은 시일을 두고 청지기의 업무를 그만두라고 한게 아닙니다. 즉시 그만두고 장부를 인계하라고 한 건데 그 짧은 순간에 이 사람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 장부를 조작합니다. 얼마나 이 일을 급박하게 했느냐하면 처음 기름 빚진 자에게는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라고 합니다. 급박하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빚진자에게 앉아서 쓰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곡식을 빚진자에게는 앉아서 쓰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급박하게 그는 수많은 빚진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선심을 씁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렇게나 급하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이 사람은 정확하게 이자만을 탕감해 주지 원금을 줄여 주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원금을 줄여 준다면 당장 들통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재물을 손해를 보는 겁니다. 이익을 얻지 못한거하고 손해를 보는거하고는 다르지요.
아마 여기 본문에 나와 있지 않은 다른 이들에게도 그는 이와같은 원칙으로 일을 처리했을 것입니다.
주인이 이 일을 알게되면 이 청지기의 처사에 뭐라고 반응할까요?
놀랍게도 주인은 청지기를 혼낸게 아니라 지혜롭다고 칭찬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사실 주인이 청지기를 해고한 이유는 자기의 재물을 낭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자기의 재산을 줄이고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이 사람을 청지기직에서 해임했는데 끝까지 자기에게 해롭게 한 이 사람, 자기의 재물을 줄이고 이익을 보지 못하게 한 이 사람이지만 그의 지혜로움에 대해서는 칭찬합니다. 그가 자기의 앞날을 대비하여 지혜롭게 행동했다는 겁니다.
보세요. 빛의 아들은 사실 믿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 시대에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지혜롭지 못하답니다. 이 말은 우리 성도들이 앞날을 위해서 대비하지 못한다는 질책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빛의 아들로 행하면서 이 세상에 대해서 지금 무방비상태로 손 놓고 있습니다. 곧 어려운 세상이 올 터인데도 그기에 대해 대비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이 청지기는 불의하기는 하지만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들에게 빚을 지웠기 때문에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영접한다는 겁니다. 세상사람들도 다 아는 진리, 있을 때 잘해 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재물이 천년만년 갈 줄 알고 영원히 내가 갑일 줄 알고는 정신없이 갑질하다가 나중에 세상이 바뀌고 환란이 올 때 이걸 이겨낼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입니다. 항상 말하지만 돌고 돈다고 돈이라고 했다는데 이게 영원히 나의 것일 줄로만 알고 갑질하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려고 하는 걸까요?
그리고 이 비유에서 빛의 아들들이 이 시대의 아들들보다 지혜롭지 못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결정적으로 이것 때문입니다. 뭐냐? 내세를 전혀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천국이 있음도 최후의 심판이 있음도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함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정에서 낱낱이 우리의 죄상으로 밝혀질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사람들 만큼도 재빠르게 지혜롭게 민첩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단 죽어봐야 아니까 너무 천국에 대해서 연연해 하지 말자,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너무 힘들고 복잡하니까 그냥 예배당에 앉아서 복달라는 기도나 하자,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받는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데 뭐 그렇게 구원에 대해서 고민하고 삶에 절제를 당해가지고 이것은 해도 될까 저것은 해도 되나 이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니 아예 우리는 영원히 이 땅에서 천년만면 살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지 않고 이 세상의 썩어져 없어져버릴 재물만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외의 것을 구하지 않게 하신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관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상의 재물만을 구하는 우리는 정녕 이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의 퇴직 후를 대비하는 정도의 준비성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사람들 보다 덜 지혜롭고 어리석은 것이지요.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는 말은 결국 그러한 사람을 선대하는 행위가, 물질을 풀어 이웃을 돕는 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들어가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데 요즘 세상에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이는 별로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죽게 되어서 천국에 가는 것 말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 빨리 죽고 싶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당연히 없겠지요. 아마 이 세상이 너무 좋아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불평하며 원망하면서도 이러한 불평거리가 없고 원망거리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 보내주께 하면 질색을 할 겁니다. 그건 결국 죽는다는 말이고 아무래도 죽는 것보다는 이 세상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삼대 부자가 없고 삼대 거지가 없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우리가 가진 물질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없어질 이 재물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벌벌 떨지 말고 있을 때 이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나와 나의 후손들이 재물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 수 있는 지름길이며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에게 재물을 남겨 주지 말고 지식을 남겨주고 그것에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하고 세상사람들 사이에서 행동하는 예의와 배려와 존중을 더한다면 우리의 자식들이 더 오래오래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섬기며 그가 인도하는 대로 따르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처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야 말로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를 가장 확실하게 대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솔직히 세상 사람들을 재물로 구제한다고 해서 천국에 간다는 말은 좀 아닌 것 같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감당치 못할 명령의 첫 번째가 네가 가진 것을 풀어 흩어버리고 너는 나를 좇으라는 것 아닙니까. 아무에게나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장래성이 있는 이에게만 이렇게 스카우트의 손길을 펼치는 겁니다.
그러므로 재물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그에게는 가장 가치있는 일이 된다는 말입니다.
보세요.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란 말씀이 보이십니까?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이라면 재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충성이 왜 나옵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의 올바른 재물관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재물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은 가난한 이를 구제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복음 증거를 위해 이 땅에 정의를 펴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재물을 우리에게 맡기셔서 사용하게 하신 이유요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재물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사용하지 않고 나를 위해서 재물을 낭비한다면 하나님은 더 나은 청지기에게 내가 가진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서 맡기실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그 하나님은 당연하게 존재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비록 생각지도 않고 있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은 당연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지상의 것들 때문에 천국의 것들을 잊고 육의 것들 때문에 영의 것들을 까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버리고 생각지도 않는다고 해서 그러한 것들이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게도 우리네 책무가 면제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우리를 위한 아주 바른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재물을 악착같이 모으고 회사를 만들어서 한자리를 자식들에게 줄려고 하지 말고 그 자식들을 공부시켜서 지혜로운 아이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을 위해서라도 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재물을 사용하고 그들에게 의로운 자의 자녀라는 명예를 남겨주십시오. 그들에게 하나님을 더 잘 아는 지식을 남겨 주십시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아주 우스운 격언 보신 적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재물이 있을 때, 현직에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뒤늦게 다 날아가고 난 다음에 껄껄 해봐야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했을 걸, ~할 걸 해봐야 뒤늦은 후회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은 사실 재물입니다. 청지기가 재물을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입니다. 당연하게도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건 지극히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반대로 지극히 큰 일이고 지극히 중요한 일이고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런 세상의 시각을 부인하고 지극히 작은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재물관이 이래야 합니다. 돈으로 안되는게 어딨냐고 하는게 세상의 가치관이라면 재물은 인생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재물로도 안되는 것이 많이 있고 재물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위해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이가 가져야할 재물관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맡겨진 재물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재물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재물을 풀어서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대비는 내가 나 혼자가 하는게 아닙니다. 준비는 내가 남에게 베풀어서 그로 하여금 나의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천국이 가지는 묘미입니다.
대통령까지 지낸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을 동시에 소유하려고 하면 안된다. 그래요, 정말 맞는 말입니다. 명예를 구하는 이는 육적인 이익 즉 재물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보타 큰 것을 원하는 이는 보다 적은 것은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올바른 재물관을 가진 청지기로 살아 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것으로 맡기실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것에 연연해서 하나님이 부과하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눈에 불의한 자로 여겨진다면 우리네 삶은 그걸로 끝이지만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받든다면 우리는 더 큰 것을 맡아서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 홍종일 목사님 설교 원고 (2016년 메일 받은 내용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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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정관면 솔마루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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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어쩌면 역설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품격 있게 살아간다면, 큰 일을 맡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돈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작은 일에도 열심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인생은 정말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도 참 멋진 성도가 될테지요. 우리가 그렇게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 화이팅. 재물에 눈 멀기 보다는, 재물을 현명하게 값지게 사용할 수 있기를! / 2017. 01.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