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음악, 글쓰기 등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세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늘 동경이 있었습니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일기 쓰듯이 영화 이야기와 느낀 바를 하나씩 남겨 놓습니다. 좋은 영화를 만나고 나면, 그 여운에 잠기며 생각을 곱씹어 보게 되는데, 이 묵상의 과정이 즐겁습니다. 조금씩 용기를 얻고, 삶의 위로를 얻어가는 고마운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마지막 4중주는 예술가 지인의 권장 영화였는데, 인연이 닿게 되어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내 잘못 스스로 탓하기 잘하는 사람에게" 정말 멋진 대목이 나옵니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대목입니다.
젊을 때, 그래서 미숙할 때, 나는 기회가 펼쳐지자 연주를 열심히 했지. 긴장 했고, 떨렸고, 실수가 계속되어서 도중에 멈추고 말았다네. 그리고 나서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다음 곡을 연주할 기회가 또 찾아왔지. 이번에도 노력해 보았지만, 여전히 완벽한 연주는 되지 못했다네. 자책했지.
세월이 흘러 나중에 내 연주를 들었던 사람에게 물어보니, 전혀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지. 열정적으로 해석한 듯한 그 연주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았고, 정말 훌륭했던 연주라고... 이처럼 한 순간이라도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훌륭한 연주일 수도 있다는 것. 그러므로 주어진 여건에서 순간 순간 열심히 노력을 다한다는 게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일인지, 가슴 설레는 감동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글쓰기로도 치환될 수 있을텐데, 설령 자신의 글이 스스로 형편없다고 느껴질지라도 쉽게 좌절이나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겠지요. 누군가는 어느 한 부분이 마음에 들어 오래도록 가슴 속에 간직될 지도 모를테니까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영화의 스토리는 파킨슨 병 초기에 걸린 첼리스트 피터의 사연으로 출발합니다. 이로써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푸가는 커다란 위기이자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피터 선생님은 4중주에서는 홀로 나이가 무척이나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먼저 물러날 시간이 찾아오겠죠.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요. 그런데 막상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까, 25년 간이나 함께 했던 환상적인 하모니에 이제 더 이상 동참할 수 없다는 게 대단히 힘든 일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제 경우 10여년 넘게 활동한 동호회 운영팀에서 물러날 때, 정말 놓기가 힘들었었는데... 아마 그런 상실의 고통은 치유와 구원의 빛이 흐릿하기 때문에 더욱 현실이 힘들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젠 내가 아니더라도" 라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되겠지요.
그렇게 피터 선생님은 훌륭한 4중주단 푸가를 지속하기 위하여,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유능한 첼리스트를 발벗고 나서서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올해가 자신의 고별무대가 될 것임을 나머지 멤버들에게 차분하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정작 파킨슨 병 치료 모임에 가서는 집중력을 잃고 멍하게 앉아 계신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 어떤 결정도 쉽게 내려진 것은 아니라고 느껴지게 됩니다. 나이들어서 뜻하지 않게 아프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게 될 때, 두렵고 불안한 마음, 인정하기 싫은 마음은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 하는 노교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인생은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젊은 시기, 청춘의 시기를 더욱 소중히 보내야 함을 재차 느낍니다. 언젠가는 하고 싶은 것을 고이 접어둬야 하는 시점이 오기 때문이지요.
영화에는 이 밖에도 인상적인 명대사가 있는데, 좋은 기회는 늘 지금이다 라는 표현이 그렇습니다. 글을 써 볼 좋은 기회는 지금이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에 좋은 기회 역시 지금이며,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일어서기에 좋은 기회 역시 오늘이 되어야 할테죠. 그래서 - 극 중, 제 2 바이올린 로버트는 이제 1 바이올린도 맡아보겠다며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쿼텟(=네 개의 독주 악기로 연주하는 실내악 중주)의 변화를 맞이해서, 그동안 참아왔던 내면을 표출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주장은 푸가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1 바이올린의 다니엘은 정면으로 반대하고, 심지어 비올라를 연주하는 아내 줄리엣 마저, 당신은 2 바이올린이라는 역할이 최고라고 냉철하게 접근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4중주에 뭐가 더 중요하고 라는, 상하관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마다의 각각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동안 현악4중주단 푸가가 큰 사랑을 받았던 것도, 저마다 근사하게 역할을 완수하면서 아름다운 화음으로 감동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안타깝게도 첼리스트 피터 선생님의 은퇴라니, 흡사 가족 같은 인연의 이탈로 인해, 줄리엣도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나도 그만둘지도 몰라. 입니다. 게다가 자존심에 흠집이 나버린 로버트는 난생 처음 바람까지 피우다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부부는 감정이 격해지며, 서로에게 험한 말들을 하는 등 삶의 불협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딸 알렉산드라 입니다. 혹자는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2천만원이 넘어가는 명품 바이올린을 선물받을 수도 있고, 경제적 궁핍 없이 자랐는데 왜 저렇게까지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는 딸이 되었느냐 이겁니다. 이것은 읽고 있는 책에서 해석을 빌려오겠습니다.
"경제적 풍요 속에 있으면서도 사실은 자기의 이유, 자유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궁핍한 조건에 있으면서도 아주 자족적이고 자유로운, 한마디로 자기의 이유를 갖고 사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며, 질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질적이란 의미에서 자유의 최고치는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손잡고더불어 123p 발췌, 신영복 저)"
알렉산드라는 자기 자리를 정확히 잡지 못하고 계속 되는 방황을 하다가, 나이가 한참 많은 다니엘을 갑작스럽게 유혹해서 잠자리를 가지기도 합니다. 그녀의 매우 직접적인 표현에 의하면 부모님이 행복을 선물해 주지 못했으며, 나쁜 엄마 였다고 매섭게 쏘아붙입니다. 이점에서 살아가는데 돈이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함께 하는 시간일테고, 남들처럼 풍요롭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엄마 줄리엣은 음악가의 삶이란 원래부터 (공연과 연습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함이)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그 일정 속에서도 딸을 사랑하고자 언제나 최선을 다했노라고 마음을 다해 설득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알렉산드라는 다니엘과의 잠깐 동안 애정관계를 분명히 선 그어 도려내며, 자신이 충분히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요. 유은정 의사 선생님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자꾸만 상위 10%의 지나치게 복받은 사람들과의 비교는 정신건강상 당장 그만두는 편이 삶의 지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교해서 울지만 말고,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에도 초점을 맞추어 나간다면, 얼마든지 오늘 나 자신을 긍정할 에너지를 가지고 살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돈이나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그저 자족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자기의 이유를 가지며, 매일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적게 벌더라도, 시간을 누리는 꿈! 이와 같은 태세의 전환 덕분에, 글쓰기가 더 편안해지더라고요. 영화에서 알렉산드라도 그렇게 자신의 바이올린 실력을 집중해 갈고 닦으며, 베토벤을 다양한 시점에서 배워가며, 음악의 깊은 영역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면 얼마든지 부모님처럼 멋진 음악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테니까요.
영화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 이 작품은 재밌게도(?) 굳이 극적으로 화합하는 전개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로 푸가 4중주 연주자들 각자가 상처들이 다 있었지만, 그럼에도 함께 모여서 공연을 해내는 프로다운 모습이 특이하고 인상적입니다. 다만 한 마음으로 피터 선생님의 은퇴에 가슴 가득 아쉬움과 그 동안의 감사함을 표현하는 게 느껴지면서 마무리 됩니다. 어떤 인생이 좋았느냐는 그 개인의 스스로 평가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결정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훌륭한 연주자이자, 교수로서 열심히 관계 맺으면서, 박수갈채를 받는 마무리는 그동안의 말 못할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를 권해준 예술계 지인과 감수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가 기억납니다. 저는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많이 접하면 좋지 않을까 라고 평면적으로 생각했는데, 그녀는 책의 표현을 빌려 이렇게 답을 보내주었습니다. 모순과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속에서도 옳고 아름다운것을 찾기 위해 온몸으로 아픔을 감당할 때, 거기서 감수성이 생긴다는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든지 괴로운 불협화음이 있고, 모순 역시 있고, 고통이 있음도 인정하고, 꿋꿋이 담담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있을테지요. 그 속에서 다만 우리는 현실을 감당해 가며,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해 나간다면, 바로 거기 성장이 있고, 열정이 있다고 결론내려 봅니다. 늘 힘내어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 2017. 04. 0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