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더 테러 라이브 (The Terror Live,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7. 5. 21. 04:17

 

 현대 사회에서 제일 무섭고 위험한 것 중에 하나가 테러일 것입니다. 제대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도 없이 무고한 사람이 귀중한 목숨을 잃는다는 게 슬픕니다. 이 영화는 서울 한복판에서 한강 마포대교가 테러를 당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테러범 요구조건이 분명하게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방송국 국민 앵커 윤영화와 밀당(!) 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테러범은 마포대교 위의 인질들을 잡아두고서는, 21억 내놔, 그리고 대통령이 사과해! 라는 엄청난 카드를 꺼내들었네요.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1시간 30분 정도의 분량이고, 방송국 스튜디오 내에서 전화 협상 하는 장면이 많은데도, 긴장감을 잘 유지했던 것이 이 작품이 여러모로 호평받는 이유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방송국은 시청률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사람의 생명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한 황당한 방송국 국장이 등장하고요. 테러범의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 없다고 매우 강경하게 이야기 하는 경찰청장은 권력이 약자 혹은 범법자 에게는 별로 친절하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듯 합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오래 전,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 하나를 꺼내봅니다. 약하고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가 항상 옳을 리는 없다. 때로는 그들의 목소리가 (정의롭지 못하거나) 황당하고 말도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약하고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민 앵커 윤영화의 오랜 멘트, 낮은 자리에서 공정한 방송을 하겠다는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었던 것이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테러범이 그 많은 방송국 중에 윤영화 라디오를 지목한 것도 그는 믿을만 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정체불명의 남자가 윤영화에 대해서도 참 많이 알고 있음이 극중에서도 드러나고 있고요.

 

 마포대교가 처음으로 폭파되자, 윤영화는 112 신고를 할까 순간적으로 망설이다가, 자세를 급히 바꾸며, 특종으로 이 사건을 TV로 내보내기로 결단합니다. 독점 생중계가 되면, 시청률은 폭등하겠죠. 이것을 계기로 윤영화는 밀려난 라디오 대신에 마감뉴스 앵커라는 좀 더 근사한 자리를 얻고자 합니다. 일단 작전은 성공! 방송국 사람들이 얼마나 재빠른지, 순식간에 상부 결제까지 완료되어 ON AIR 생방송이 시작되네요.

 

 테러범의 사연은 듣고보니 공감의 여지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평생을 공사 현장의 노동자로 살아왔는데,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정작 본인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다리 공사 현장에서 3명의 인부가 철야 작업 중 강으로 추락한 비극적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정상회담 등의 까닭으로) 경찰의 늦장 출동으로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21억을 보상하라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은 이 사건에 정중히 사과하라는 것입니다. 방송국 측은 대단한 단독 특종을 찍게 되었으며, 시청률은 50%, 70%까지 치솟았고, 테러범에게 21억을 입금하기에 이릅니다. (조금 냉정히 본다면, 어차피 계좌는 추적될 요지가 있겠지요. 방송사가 순순히 손익을 계산하며 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설령 못 찾아도 남는 장사, 경찰이 회수하면 대박장사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건, 대통령의 사과인데요. 마포대교는 위태위태 제법 위험하게 기울어져 있고요. 다리 위에 인질들 여러명이 갇혀 있습니다. 시간은 촉박하게 흘러가네요. 대통령 대신 등장한 경찰청장은 테러범 신경 긁는 소리만 하다가 귀에 설치된 폭탄으로 급사 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윤영화 역시 귀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어서 어떻게 달리 방법이 없었으며, 테러 생중계라는 참혹한 진행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이 영화가 세월호 참사를 생각나게 했다는 대목이 있어서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세월호는 물론 테러와는 전혀 관계 없다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현장이 전국민에게 생중계 되었고, 사람들이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구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점은 유사하네요. 아직도 정치인들 혹은 중고생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것을 볼 때, 아픈 기억을 잊지 말고, 대면하며, 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함을 되새깁니다.

 

 한편, 극중 이 사건이 테러로 규정된 이상, 대통령이 좀처럼 사과할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윤영화는 인질이 죽어야 테러가 끝난다는 매우 비인간적인 암시까지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명분이 생겨서, 테러범을 즉시 사살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테러범이 여론의 동정 혹은 지지를 받아서, 노동자들이 사망했을 그 때 국가 역시 어느 정도는 잘못한 것이 있다고 정당성을 얻게 된다면, 이 테러범을 그냥 죽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한 사람의 생명 역시 무엇보다 귀중한 것임은 자명합니다. 테러범에게는 그러므로 명분이 중요했기에, 우선 여자와 아이들만이라도 인질에서 구출되어야 한다는 설득에 동의하게 됩니다.

 

 폭탄을 여러 곳에 설치하는 실력, 전화녹음을 능숙하게 다루는 능력, 협상에 밀리지 않으며, 또한 오래도록 테러를 준비했던 모습 등 테러범의 실제 정체는 50대 노동자가 아님이 점차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추락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91년생 젊은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서, 이 무모한 계획을 저돌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영화는 후반으로 가도 전혀 긴장감이 밀리지 않습니다. 테러범의 위치가 노출되었지만, 거대한 예비 빌딩을 폭파시키는 대담성으로 그는 도주해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윤영화와 통화는 계속합니다.

 

 마지막에 와서 이유가 밝혀집니다. 윤영화의 이야기라면 무조건 믿을 수 있다 라고 호평하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렇게 바보 같이 언론만 믿고, 힘든 고생만 하고 살았던 아버지가 불쌍하고 바보같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안타까운 죽음의 아버지와, 모두가 그 진실을 외면하려 했기에, 아들이 세상에 복수를 계획했다는 것이 매우 논리적인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테러라는 방법만큼은 절대로 잘못되었지만 말이예요.

 

 세상은 매우 놀랍게도 "테러와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몇 사람의 희생이 있었지만, 저 높으신 분들은 절대 굴복하지 않았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매우 핫한 이슈가 필요했기에 국민 앵커 윤영화를 비리 혐의로 잡아넣는 청와대 극비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자극적 뉴스 생산 작전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또 우르르 쏠려갈 수 있겠지요.

 

 윤영화는 사랑하던 사람도 잃고, 자신의 처지가 정말 우스워지고 말았습니다. 방송국에 몸담아 열심히 일해왔건만, 경쟁 속에서 밀려나버렸고, 이제는 표적 수사 받는 처지가 되었네요. 테러와의 승리라니, 승자는 또 이긴 것이라니, 정말 이상한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그는 마지막에 깨닫았는지 모릅니다. 이런 세계라니 안녕, 윤영화는 테러범이 건네주었던 폭파 장치를 꾸욱 누르며, 작품은 매우 인상 깊은 마무리를 합니다.

 

 글쎄요, 높은 곳에 있다보면, 아무래도 멀기 때문인지, 낮은 곳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나 봅니다. 이 영화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테러는 잘못이며 즉시 그만두어야 하지만, 그 당시의 노동자 사고는 유감이었다고 사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시위 도중 사람이 사망했던 사건에 대해서 사과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국가가 왜? 대통령이 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오늘날의 이 "격차사회"에 대하여, 또 "노동을 하찮게 여긴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몰라라 손 놓고 있다면, 이 나라는 다수의 침묵 속에서 멸망 속으로 걸어들어 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블로그에선 수 차례 강조했지만, 언론은 사회의 4번째 권력이라는 말이 있듯이 매우 중요한 기관입니다. 진실을 보도해야 하며, 권력 앞에서도 기죽지 말며 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처럼 가짜뉴스가 곳곳에서 생산되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회의 낮은 곳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이 나라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방송국이 국민 앵커와 함께 사라져가는 마무리를 보면서, 자본 혹은 권력과 손잡고 기생하는 부패한 언론은 결국 사라지는게 더 나은 사회의 암덩어리와 다름 없다고 느꼈습니다.

 

 헉. 어느새 글이 너무 기네요. 이만 마쳐야 겠습니다. 하하. 좋은 영화 무료로 시청하게 풀어준 네이버 N스토어에게 끝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 2017. 05. 2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