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는 2차 세계대전, 그 중에서도 탱크 소대가 활약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해외 평점 사이트 IMDB에서 7.6점의 준수한 평가를 얻고 있어서, 케이블TV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전쟁 영화가 주는 특유의 (쏠 수 밖에 없는) 잔인함, (나치의) 광기, 극한의 상황 때문에, 이른바 밀리터리물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퓨리를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 불편함이 있어서, 전쟁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 영화는 크게 두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비추고 있습니다. 미군의 셔먼탱크를 이끄는 워대디는 많은 경험을 쌓았으며, 북아프리카 전선에도 투입된 적 있는 베테랑 입니다. 하지만 이번 독일 최전선 임무는 험난하기만 합니다. 성능상으로는 독일의 티거탱크가 훨씬 강하다고 하네요. 나치 독일은 인류사 최악의 사건 중 하나지만, 거꾸로 보자면, 독일 사람들의 놀라운 기술력과 세계와 맞짱 뜨려는 무모한 자만심은 참 섬뜩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과거사를 깊게 반성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그럼 미군에게는 뭐가 있나요.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미군에게는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을 가끔 받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테고요.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영화에 녹아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전쟁은 독일이 전세가 불리하게 진행되어 가는데도, 쉽게 항복하지 않는 바람에 괜한 피해가 더욱 커지게 되었네요. 새롭게 배치 받은 노먼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총으로 독일군을 제대로 쏘지도 못합니다. 소대장 워대디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노먼을 데리고 가혹한 훈련을 시킵니다. 지금 이 독일군을 쏘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위험에 처할 뿐이라는 것. 그렇게 신병 노먼이 자신의 임무를 점차 열의있게 해나가는 이야기로도 이 영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여러 차례, 탱크 부대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보여주고 있어서 놀라웠습니다. 적진으로 깊숙하게 전진해서, 고립되었던 아군을 구해주고요. 한편 매복한 적들을 완전히 초토화 시킬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대사처럼, 사람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당대 최고의 기술들로 전쟁 병기들을 만들어서, 푸르른 사람들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슬픈 것은 나치에 반대한 양심적인 독일 사람들은, 오히려 나치에 의해 길거리에 시체로 내걸리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만 옳다는 독선이 그렇게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 중반, 마을을 점령하게 되는 미군. 여기서는 모처럼 여유를 누리게 되고, 예쁜 독일 처자를 만나기도 합니다. 노먼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숨겨진 재능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사로 잡고, 두 사람은 금세 친해지기까지 합니다. 이 때 소대원들이 나타나 좋은 분위기를 질투하고, 소대장 워대디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노먼의 여자를 지켜주는데 성공합니다. 말하자면, 노먼의 (천국같이) 좋은 날이 온 셈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각본이 독특합니다. 이후, 곧바로 나치 독일의 습격이 발생하며, 일대는 완전 쑥대밭이 되었고, 노먼의 연인은 하루 사이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전선으로 이동하고, 또 이동하는 것이 이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독일군의 티거탱크와의 전차전은 영화의 백미겠지요. 괴물같은 이 탱크는 차례차례 미군탱크를 박살내면서 압도적인 모습을 선보입니다. 밀리터리 덕후(?)분들에 의하면, 극중에서 독일 티거탱크가 미군탱크에게 어처구니 없이 패배한 것은 그들이 너무 자만해서 꼬리를 잡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그만큼 워대디 소대는 아군들이 쓰러져 갈 때도,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아서 탱크를 움직여 승리를 쟁취합니다. 이번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았네요.
후반에는 지뢰를 밟아서 이동력까지 상실한 탱크 1대로, 나치 독일의 많은 병사들과 사명적인 전투를 발휘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워대디 대장은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직감하고, 다른 대원들에게 어서 떠나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다들 목숨 걸고, 이 싸움에 함께 합니다. 퓨리 소대원들은 차례 차례 전사하고, 워대디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노먼은 최후에 말그대로 운좋게 기적적으로 살아남는데, 이 대목이 잘 이해가 안 되어서 해외 리뷰들을 좀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영화가 전반적으로는 전쟁의 참혹함을 잘 그려냈기 때문에, 마지막 대목만큼은 무엇인가 희망을 담기 위해서 이렇게 쓰여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군 전멸이라면 좀 그렇잖아요?
탱크가 나오는 전쟁 영화, 그래서 조금은 보기 귀한 영화라는 측면에서 점수를 줄 수 있고, 아무래도 지나친 현실성보다는 미국에게 유리하게끔 설정되고 있다는 점은 약간의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겠네요. 너무 기대치를 높게 잡지 않는다면, 인상적으로 볼 수 있는 전쟁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나치 독일의 일부 지휘관들은 오히려 전세의 불리함을 일찍 깨닫고 만취한 상태로 자살해 버린다는 것이 끝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워대디의 대사 -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다 라는 것. 우리도 일제 강점기 시절, 항일무장투쟁을 치열하게 하는 등 싸우고, 저항하던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기억되고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싸울 때는, 일어날 줄 알아야 세상이 바뀜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포로를 가차 없이 죽이는 워대디의 씁쓸한 모습, 화염에 휩싸여 부모님을 외치며 권총으로 고통 없이 자살하는 미군의 딱한 모습, 워대디는 이 가혹한 현실 속, 자신이 과연 천국으로 갈 수 있을지를 묻곤 했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무거운 마음을 며칠 간 선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긴 평화 시대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결론 내리며, 제 부족한 리뷰는 이만 마쳐야 겠습니다. / 2017. 05. 1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