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예술 속의 의학 리뷰

시북(허지수) 2017. 8. 27. 20:37

 

 책 제목이 참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도서는 문화체육관광부 2013년 우수 도서입니다. 의학과 문학, 의학과 시각예술, 의학과 음악 및 영상예술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저는 특히 마지막 대목이었던 음악, 영화에 대한 서술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음악은 유명한 베토벤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데요. 1801년, 이제 막 30대 초반이 되었던 베토벤은 친구에게 자신의 병을 고백하는 편지를 씁니다.

 

 "나는 아주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네에게 고백을 해야겠네. 최근 거의 2년 동안 나는 사람들을 피해왔다네. 그 이유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네. 나는 귀머거리라네. 그것은 내 직업이 음악가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치명적인 결점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 음악회에 가면 나는 아주 앞자리에 앉지 않으면 연주를 들을 수가 없다네. 그러나 이것은 자네만 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으면 하네.(p.204)" 즉, 베토벤의 거의 전작품은 청력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작곡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다음 해인, 1802년 베토벤은 죽을 결심을 하게 되는데...

 

 저자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 편저 (이부영 등저) / 출판사 : 허원미디어

 출간 : 2012년 12월 15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256쪽

 

 

 비참한 인생에 좌절하며, 유서까지 썼지만, 베토벤은 자살하기를 포기하는 위대한 결단을 합니다. 자신에게는 가혹한 운명이 주어졌지만,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마음을 바꾼 것입니다. "높은 인격적인 성숙을 성취하고 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취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한 계기가 되었으며 (중략) 이 사건은 베토벤이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 태어나는 계기가 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은 유서 사건 이후로, 정신적 위기를 극복한 후, 아주 부드럽고 감미로운 느낌을 주는 곡들을 발표합니다. 인생의 비참함을 넘어서 - 새로운 가치와 목표를 깨달았을 때의 즐거움, 환희를 발견한 인생. 굉장히 멋지지 않습니까.

 

 이후 약 10여년, 1802~1814년까지, 베토벤은 정신적인 갈등에 대하여 격렬하게 싸우고, 투쟁하며, 외적인 힘으로 이를 극복해 냅니다. 그의 음악은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으며,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 라는 평을 받기 시작하였고, 비로소 영광의 해가 마침내 온 것입니다. 이후 베토벤은 악성, 음악의 성인으로 불릴 만큼, 훌륭한 곡들을 계속해서 써내려가지요.

 

 그 경지에 도달한 비법 중 하나로, 저자는 베토벤이 정규 교육을 초등학교 과정밖에 받지 않아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했다는 점을 꼽습니다. 부족함이 있으면 끊임없이 고치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곡 자체를 새로 작곡하는 강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힘들었겠지요? 그런데 읽고 있는 다른 책, 최고의 공부의 표현을 빌린다면, 원숙하고 가치 있는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도를 해야 할 지 고찰해 봐야 합니다. 좋은 작품은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으며, 더욱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과 청력 상실 때문에, 인간적으로 성숙이 되었다는 거에요. 로맹 롤랑의 해석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베토벤은 인간의 세속적인 소리를 듣지 말고 오로지 신의 음성만 듣고 이를 인간에게 전달해야 할 임무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저는 베토벤의 좌우명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깊이 간직해 두고 있습니다.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 힘이 들고 고통스러운 환경 앞에 무너지지 않고,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까지 눈부시게 걸어갔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때로는 고통을 통해 높은 차원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마음에 담고 싶은 또 한 편의 구절도 소개합니다. 샤르댕 신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카페나 식당의 서빙도우미, 중국집의 배달원, 청소노동자, 이 모두가 다 고귀한 영혼인 것이다.(p.238) 죽음을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철학자 키케로의 말처럼, 지헤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 라고 잠시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언젠가 죽게 되는 (죽음을 기억하라 - 메멘토 모리 - 필멸)의 존재라면,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삶에 대해서 좀 더 뜨거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주하기.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도전하기. 때로는 서툰 일을 통해서도, 자신에 대해서 배워가고, 성장시켜가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운 점은,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말로 의사는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p.50/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사람은 이토록 굉장한 존재가 아닌가요. 자기경멸과 자기혐오는 이제 그만둬야 합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팔을 걷어붙여야 합니다. 비록 삶이 고단할 지라도, 나에게는 정말로 재앙 같은 좌절을 겪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삶을 소중히 여기며 일어나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배워갑니다. 의사는 사람을 구하고, 좋은 의학서적은 사람을 일으킬 수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 2017. 08. 2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