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조선일보 기사링크 = https://news.v.daum.net/v/20191019070054788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겨울이 오고 있구나… 그것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참으로 멋진 이야기다. 사람이 참 단순한 면이 있는게,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왠지 끌리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오리지널스를 번역한 홍지수 번역가 라든가, 오늘 기사의 김지수 기자 라든가, 나 역시 지수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학창시절 지수와 로그 중에 당연히 지수가 더 좋았다. (유머가 좀 어설프긴 하네...)

 

 한 번 읽고 지나치기 아까운 기사라서, 2회독에 도전하며 이 글에서 참 인상적인 대목을 짚어보고 싶다. 이어령 선생님이 전 정관이고, 후년에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정도가 전부니까...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터뷰를 읽다보니까 이어령 선생님 책도 읽어보고 사색에 잠겨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 솔직함이, 그 묵직함이 좋았다. 이를테면 젊은이들에게 딱 한 가지 전하고 싶은 말이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라는 점. 내가 존경하는 구석일 의사선생님도 병이 있어도 괜찮으니 오히려 자랑하고 다니라고 하셨다. 아픈 약점이 있더라고 뭐 어때 쫄지마 라고 이어령 선생님이 따뜻하게 호통치시는 것만 같다.

 

 첫째, 남은 내 생각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아. 라는 팩트 공격이 들어온다. 지금 읽고 있는 양창순 선생님 책에서는 저명한 정신의학자 밀턴 H. 밀러의 책 일부가 소개되어 있다. 옮겨오면 이렇다.

 

 "여보세요"

 "응, 너구나. 요즘 어떻게 지내니?"

 "좋아, 넌 어때?"

 "엉망진창이야.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암이라는구나."

 

 이 다음에 무슨 말이 올까? 아마 재치있고 총명한 초등학생 정도라면 맞출 수 있을테지만,

 놀랍게도 현대인은 여기에 이렇게 덧붙인다고 한다.

 "그래? 뭐 새로운 소식은 없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 인간 사회의 모습이라니, 통렬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어령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이제는 물질이 자본인 시대가 저물었으며, 공감이 가장 큰 자본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그렇다. 또 한 번 세상이 바뀐 것이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욱 갈고 닦아야 하는 테크닉이 있다면 공감하는 기술이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귀를 기울여서 진심으로 듣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게 되었다. 그래서 이 인터뷰는 얼마나 보석 같은 이야기인가... 새삼 이어령 선생님과 김지수 기자님께 감사하다.

 

 둘째, 죽을 때 돌아가신다고 한다는 표현이 다가왔다.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자주 강조하시는 대목이기도 했다. 이 짧은 단어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상에서 우리의 삶은 어쩌면 순례자의 길이며, 나그네의 길이며, 통과하는 어떤 지점이기도 하다고 나는 사색할 때가 있다. 어느 설교를 빌리자면, 막상 돌아가보니... (인생을 잘못 살았다면) 제발 물 한 모금만 먹고 싶은게 소원이며, 내 형제들은 이런 곳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무려 바이블에 적혀 있다고 한다.

 

 또한, 어느 의사 선생님의 책 내용도 또한 기억난다. (내 기억이 맞기를 바라는데, 한성희 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인생은 내가 한 선택들로 인해서, 무엇인가가 점점 두꺼워져 간다고. 잘못이 두꺼워져 간다면, 그래서 혹여 지옥 같은 곳으로 간다면, 그 때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 때야 후회를 시작하지만, 이미... 늦은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다움, 선행, 긍정이" 두꺼워져 가야 한다.

 

 셋째. "과학을 잘 모르면 무신론자가 되지만, 과학을 깊이 알면 신의 질서를 만난다" 라는 대목. 역시 여기서 가장 내 머릿속 도서관(?)을 헤치고 나오는 대목은 CBS 정혜윤 PD다. 그녀는 어떤 날. 여행 중 하늘을 올려다 보고, 질서 속에서 운행 되는 아름다운 별빛들을 보고 경이를 체험했다고 했다. 지식이 짧은 나는 왜 북극성이 고정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나침반은 왜 북쪽을 고정한 채로 떨리고 있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표현을 빌려, 멈춰버린 나침반은 용도가 상실된 것이라 했으며, 양창순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며, 건강함이라고 하셨다. 김형석 선생님 식으로 쓴다면, 고생이 있었지만 사랑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쓰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감히 써본다면, 신의 질서는 간섭이며 사랑이며 일으킴이며 돌보심이라고 나는 표현하고 싶다.

 

 넷째, 제일 쉬운 게 부정이에요. 긍정이 어렵죠. 라는 뼈있는 돌직구. 집단 무의식 개념에 따르면, 인류에게는 부정적 성향이 자리 잡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초기 인류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문제점을 살피며 살아남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는 자연스러운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긍정이 있음을 발견할 줄 알고, 힘도 내봤으면 좋겠다. 양창순 선생님은 이 때 2080의 재치 있는 비유를 꺼냈는데 만약 80이 부정이라도 20이라는 긍정이 있지 않은가 라는 것. 자기안의 20의 긍정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 작은 기쁨의 가치란 어떤 것일까? 신영복 선생님의 이야기는 내 카카오톡 배경화면이다. 이, 멋진 이야기는 몇 번이고 소개해도 좋을 것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기쁨 하나로 하여 엄청난 슬픔을 견디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작은 기쁨의 소중함을 깨닫고

 작은 기쁨의 그 위대한 증폭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 이유에서, 우리에게 설령 장점 2개에, 단점 8개의 인간일지라도, 자신을 아끼며, 할 수 있다고 응원과 격려를 걸며, 이어령 선생님 말처럼 어려운 긍정의 길을 갈 수 있으면 너무나 좋겠다. 여기서 김병수 선생님과 피터 드러커의 표현을 가져오면, 우린 사실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서도 잘 모를 때도 있다. 그러니까 제발 자기 비하는 그만두자. 어쩌면 단지 그 편이 쉬워서 그 황당한 행위를 매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다섯째, 이 표현은 내게 어렵다. "인격은 다층적이라 의학뿐 아니라 인문학자의 상상력으로도 봐야 해요." 다르게 쓰면 의학적 접근이 전부가 아니라는 언어이고, 상상력으로 사람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추정한다. 괴테 식으로 쓴다면, 한 사람을 볼 때, 그가 가진 최고의 가능성이 무엇인지 상상하고 그에 맞게 그 사람을 높게 대우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장사의 기술로 쓴다면, 저 한 사람이 보기에는 담배 한 갑을 사가는 손님 한 명에 불과하지만, 사실은 몇 백, 몇 천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장님, 회장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격을 대할 때는, 조심하는 게 항상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해본다.

 

 여섯째, 아름다운 표현이다. "햇빛만 받아 울창한 나무든 그늘 속에서 야윈 나무든 다 제 몫의 임무가 있는 유일한 생명이에요. 그 유니크함이 놀라운 평등이지요. 또 하나. 살아있는 것은 공평하게 다 죽잖아." 이 문장에서 나는 임무 라는 말에 감동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스타일 좋게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인생을 넓혀가며 살아가는 사람도 당연히 더러 있다. 그런데 나같은 어떤 사람은 내향적이고, 망설이고, 고민이 무척 깊고, 결정도 잘 못 내리고, 인생의 그늘 구간도 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내야 하는 임무, 숙제가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고급표현으로는 미션 혹은 사명이라고 쓸 수도 있겠고... 그 임무가 쉽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너무 가벼운 생각이다. 그보다는 어려운 생활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시도하는 것. 이런 방향에 가깝다고 느낀다. 정혜윤 작가님의 일화를 소개한다면,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파는 아주머니가 등불에 의지해서 책을 펴서 읽는다는 것. 나는 그 장면이 글이 아니라 마치 이미지나 동영상처럼 다가와서 뇌리에 충격으로 박히는 것이었다.

 

 일곱째, 생의 진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라는 대목에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한 때였지만, 4만명이 넘는 동호회의 수장으로 20대의 젊음을 멋진 사람들과 함께 인터넷에서 행복하게 지내왔다. 그 소중한 경험도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선물로 받은 것이었고,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임을 직감하게 되었다. 운이나 타이밍이 좋았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400만 방문의 블로그도...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묵묵하게 기록해왔을 뿐인데, 그것이 많이 사랑받았고, 악플 공격도 남들보다는 1/10 정도로 적게 받았다. 유리 멘탈, 쿠크다스 멘탈이었던 내가 몇 번이고 일어나서, 지금도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의 "재밌어요 혹은 계속해봐요."라는 그 한 마디 만으로 행복했다.

 

 모든 게 선물이라면, 나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 역시 감사해야 하는 것을 빼놓으면 안 된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났고, 아픈 신체를 가지고서도, 38년이 넘도록 살아왔고, 외로운 순간마다 좋은 책들을 만나서 위로와 감동을 받아왔다. 놀이도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그것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이 글 역시... 이렇게까지 길어질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어령 선생님 이렇게 또 한 분의 대한민국의 좋은 선생님을 알게 되어서 끝으로 감사하다. 감사할 수 있는 것을 또 찾아보자. 모든 게 선물이라면... 어쩐지 우리는 좀 더 밝게, 기쁘게, 웃어야 할 것 같다. / 2019. 10. 19. 감사프로젝트11. 시북.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