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리뷰에는 영화 본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므로, 안 보신 분은 주의해주시기를 미리 당부드립니다.
넷플릭스를 무료체험 해보기로 했다. 영화가 생각보다 다양하게 많이 있어서 놀랐고, 기뻤다. 첫 날은 보고 싶었던 영화 보고, 둘째 날은 뭘 볼까 조금 살펴보다가 SF, 디즈니 로고가 박혀 있길래, 주저 없이 제작비 많이 부었다는 트론으로 선택했다. 한 줄로 과감히 요약하자면, 가상세계에서 갇혀서 놀다가,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면 어떨까. 그 이야기가 주 테마라고 느낀다.
아직도 나는 컴퓨터의 언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0과 1의 세계, 1024와 FF 16진수의 세계. 그 정도가 겨우 알 수 있는 영역이었다. 아무튼 프로그래밍 된 세계가 현실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요즘에 꽤 느끼고 있다. 예컨대 동호회 모임에서는, 3D 보통 사람 아이돌 만큼이나, 2D 가상 아이돌 (혹은 캐릭터) 게임도 인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창조되고 가공된 가상 세계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완벽을 추구했던 것을 후회한다는 대목이 나와서 인상적이었다. 유토피아의 오랜 꿈들은 각종 실험과 생명의 죽음 등으로 (예컨대 공산주의의 몰락) 좌절되어 왔는데, 첨단의 세계에서도 유토피아가 건설되지 못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만들어진 세계조차도 서열이 있고, 권력이 있고, 높은 자리가 있다. 높으신 분들의 꿈을 위해서, 그를 따르는 졸개들은 필요가 없으면 곧장 무쓸모로 죽음에 담궈진다는 것이 고대 중국이나 21세기의 가상현실이나 똑같다는 점. 역사에서 지혜를 빌려온다면, 인간성 자체가 뭐 그렇게 발전했는가 되묻게 된다. 최근 읽었던 어느 냉정한 표현을 빌린다면, 타인을 공감하고, 그 입장에서 서볼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역사에서 소수였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 본성 자체가 이기적으로 흐르기 쉽게 설계되어 있는게 아닐까 상상한다.
영화 후반부에 펼쳐지는 일상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도, 이 영화가 가진 숨은 미덕이다. 나는 블로그 방명록에도 써놓았지만 저녁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지... 수십년 간 몰랐다고 고백하는 오래 된 영화의 한 장면을 알고 있다. 일상이라는 것이 굉장하다는 것을 우리는 까맣게 잊고 정신없이 밥벌이에 지쳐간다. 어쩐지 더 많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될 것 같고, 나만 뒤쳐질 수 없어서, 계속 가속 페달을 주-욱 밟아댄다. 이것이 누구 이야기도 아니고, 내 이야기다.
조금은 멈춰서 꿈의 나침반을 천천히 바라보며 방향도 점검하고, 지친 나를 위해서 달래주는 위로가 꼭 필요하다. 이 영화 트론식으로 쓴다면, 명상을 한다든지...
하하. 쉬는 날마다 영화를 챙겨본다는 욕심 대신에, 피로한 날에는 커피와 음악, 그리고 가벼운 독서나 즐기면서 하루를 좀 낭비해보면 뭐 어떨까. 수천명씩 오게 만드는 블로그의 원대하고 거창한 꿈보다는, 그 백분의 일, 그냥 수십명에게 라도 편안하고 즐거운 공간이 되게끔, 작고 아름답게 살아가기가 사실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덜어내고, 완벽과 멀어지는 그 어설픔이 중요하다고 느꼈던 독특한 영화가 바로 트론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참 많다. 속상한 일도 어쩔 수 없이 만난다. 그래도 햇살은 여전히 따뜻하기만 하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선물로 건네줄 수 있을까? 매우 오랜 고민인데도, 여전히 답을 못 찾고, 실행도 망설인다.
하지만 고민울 가슴에 품고, 알을 부화시키듯,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살아가다보면,
해답을 만나게 되는 시점이 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는 해본다. 어쩌면 그것이 시간이 뜻밖에 선물해 주는 해독제일 수도 있겠고.
따지고보면 블로그도 가상 세계의 공간인데... 참 나도 공을 많이 들여왔다.
이제는 좀 더 완벽과 멀어지고, 부족하더라도 그냥 써보고, 그 정직한 시간들을 쓱쓱 모아서,
그래. 인생은 이토록 재밌는 일이 많은, 놀랍고 신비한 곳이야. 라고 다음 세대에게, 아이들에게, 전달하면 좋겠다 싶다. / 2019. 12. 01. 영화광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