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종교 부문 베스트셀러 1위라고 해서, 제법 기대를 가지고 읽어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내용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약간의 소화불량 느낌이 남아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리뷰는 남겨놓는 게 좀 더 나은 습관이라 판단해, 하루의 남은 에너지를 가득 모아 글을 씁니다.
고통으로 인간은 변화되기도 한다는 관점을 보겠습니다. 2장 하나님이 선하다면 왜 세상에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입니다.
시력 상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한없이 겸손하게 했다. "말하자면, 몸의 눈이 닫히면서 영의 눈이 열렸다고나 할까요? 그제야 남들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더군요. 이젠 달라졌어요. 난생처음 친구들이 생겼어요. 진짜 친구들 말예요. 물론,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대가를 치뤘죠.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무엇이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알았으니까요."
비극적인 일 자체를 고마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지만, 이런 이들은 거기서 얻은 통찰과 성품, 용기를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눈이 뜨이면 삶 가운데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의 이면에 깔린 합당한 이유를 일부나마 알 수 있는 법이다. (63p)
그리고 C. S. 루이스를 인용한 2장 결론부 입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고통을 두고도 흔히들 '나중에 큰 복을 받으면 뭐해, 지금 이렇게 힘든데'라고 말하지. 일단 천국을 품으면 그게 뒤에서 작용해서 괴로움을 영광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네.
악과 고통을 물리치는 영원한 승리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끝내는데서 그치지 않고 철저하게 짓밟아 버린다.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은 장차 누리게 될 삶과 기쁨을 한없이 증폭시킬 뿐이다. (75p)
고통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있을까요. 나이가 들면, 신체의 기능에 조율이 필요하기도 해서, 약을 오래도록 함께 복용 하기도 합니다. 뭐, 그것은 개인의 고통이니 참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떠나거나... 그 고통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 입니다. 우리 동네 의사 선생님의 유머적 표현을 빌린다면, 삶에 즐거움만 있다고? 그게 더 이상한게 아닐까. 라는 거죠. 윤대현 정신과 전문의 쌤은, 우리의 두뇌 모드는 약간 우울함이 표준 모드로 세팅되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만나는 일들 중에는 만만찮고 버겁고... 견디기 힘든 날도 분명 있습니다. 당연히 신앙이 있는 사람은 질문이 따라붙기도 합니다.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책에서는 비극을 고마워할 수는 없어도, 거기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제 인생이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가방에도 의사선생님의 책이, 책상에도 의사 선생님의 책이, 또 그 책 바로 아래에는 또 다른 의사 선생님의 책이... 고통의 현실은, 의사 선생님들과 기나긴 대화의 시간을 선물해 줬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을 견디며 배운 사실. 나.만.힘.든.게.아.니.야. 여덟 글자를 끊어가며 한 자씩 또박또박 써봤습니다.
그렇다면 고통 받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정말이지 수년간 제법 길게 고민해 왔지만, 저로썬 아직도 답을 좀처럼 내리진 못했습니다. "힘드시죠? 이렇게 견뎌보면 어떨까요." 그 한 마디를 건네고 싶은데... 자꾸 주제 넘는 일 같아서 오히려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도서의 대목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니까, 성숙이 깊어지면 좀 더 용기 있게 살 수 있으리라 지금은 어렴풋이 짐작해 봅니다.
다음은 회개에 대한 대목 입니다.
메타노이아(metanoia) 곧 회개란 스스로의 필요를 으뜸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도에 깊이 침잠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고통은 거룩한 천사입니다. 그 천사를 통해 인간은 세상의 온갖 기쁨을 지나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해집니다. (중략)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목숨을 버려 남들을 자유롭게 하는 이들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디트리히 본회퍼를 비롯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한목소리로 부르짖는 참다운 기독교 신앙을 실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120~121p)
그리스도의 도란, 시편에서 발췌한 '악인의 길에 서지 않기'가 단번에 떠오릅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잘하는 것도 기독교의 십계명으로까지 강조하는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메타노이아 - 회개, 를 마음 속에 받아들여 살아가는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요.
좀 더 선명하게 말해본다면, 자기 시간을 희생해서,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한 회개의 독특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좀 더 성숙된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써놓고 보니, 정면으로 마주하고 보니, 솔직히 자신이 없네요. 나의 필요, 나의 시간을 우선하는 나 중심에서 벗어나기가 그만큼 힘든 일임을 오히려 깨닫습니다. 이런 형편이다보니... 회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변하기 쉬운 내 의지나 각오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며,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의 장문 리뷰는 여기에서 마치려 합니다. (철학 번역서의 특징도 있다보니) 책은 무척 읽기 어려웠고, 눈에 쉽게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참다운 기독교 신앙을 실현하는 삶. 그 멋진 길로 인도될 수 있기를!
- 2020. 08. 리뷰어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