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16 테넷 (2020) 리뷰

시북(허지수) 2020. 9. 12. 21:43

 

 리뷰에 뭔가 거창하고 멋진 내용을 담을 건 아닙니다.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라는 영화 소개처럼, 그저 느낀 점을 즐겁게 남겨놓을까 합니다. (제 리뷰에는 본편 내용이 있으므로, 흥미가 있으신 분은 영화를 먼저 보시기를 권해봅니다.)

 

 1. 이제 개인의 활동도 기록으로 남겨지는 첫 시대가 21세기

 

 우리 역사에선, 조선시대 왕들의 이야기가 잘 남겨져 있지요. 오리 이원익 정승처럼 이름난 분들의 이야기는 세대를 넘겨서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유명한 분들, 이른바 높으신 사람의 이야기와 어록들은 기록됩니다. 영국 수상 처칠의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21세기에 개인들은 스마트폰이라는 첨단기기를 손에 넣으면서, 거기에 속박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알 수 있는 좋은 예는 위치 정보를 전송하는 경우, 우리의 동선이 알려지게 됩니다. 따라서, 자본의 필요에 따라, 근처의 맛집이나 숙박업소, 미용실 등의 경험담이 공유되고 있죠.

 

 이런 시대라면, 역시나 가장 우려되는 것은 보안입니다. 방대한 개인정보에 누군가는 접근권한이 있기에, 거기가 뚫려버리면, 피해자는 시달리게 됩니다. 불과 얼마전에도 대학생들의 연락처가 뚫려서 젊은이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이런 일들은 미래에 더 많이 일어나겠죠. 테넷의 주인공은 그래서 이름이 불려지지 않습니다. 이름은 정보와 연결되기 가장 쉽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보기관들이 가짜 이름, 가짜 신분증을 쓰는 사례는 이미 여러 영화에서 등장했는데요. 1세기도 필요없이, 약 50년 뒤로만 시계를 돌려 바라보면, 우리의 이름 - 어디를 방문했으며 - 어떤 치료를 받았으며 - 그래서 정체가 무엇인지, 누군가(=정보기관의 사람)는 알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없다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 아주 높으신 분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즐겁게 상상해 봤습니다.

 

 2.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22세기

 

 우리 속담이죠. 말 조심하라는 것. CCTV의 시대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도서관 가는 길에 학교 근처를 지나며, 안심마을 CCTV 프로젝트가 시행되는 것을 보고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법이 누군가를 지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지요. 비디오 기술의 확장으로 4K TV, 8K TV의 세상이 왔습니다.

 

 이제 오디오 기술도 발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죠. 어느 공간에 가면, 이야기들이 그대로 녹음처리 되고 있다는 거죠. 잡음까지 제거되는 것이니, 증거로도 일품입니다. 제 경우만 해도, 20년 전이긴 하겠지만... 교육학도 분들이 일상의 대화를 동의하에 녹음해서 들어보곤 했습니다. 많은 연구로 대화에도 턴개념이 있어서, 한 번 주고, 한 번 받고의 타이밍이 중요함이 드러났습니다. 미래 만화 영화 같은 것에선 공중의 인공적인 새가 사람을 감시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아가 듣기까지 한다면, 아휴 그런 첨단기술의 시대에 사람이 숨쉴 곳이 있을까 싶습니다. CCTV의 파워업이 이득일지, 고통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3. 마침내 실현되는 과거로의 여행 ??세기

 

 저는 영화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자기 자신을 만난다니!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아픈 현실을 만날 줄 전혀 몰랐어... 라고 다정한 한 마디를 건네고 싶습니다. 또 아파도 괜찮아... 라고 괴롭고 힘든 날들을 견디라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불안한 느낌이 들어서 주인공에게 연락을 서둘러 하자, 그 우려가 진실이었다는 것이 정말 멋진 통찰이었습니다. 인간의 놀라운 감각은 어떤 의미에서 굉장한 것 같아요. 예컨대, 내가 곧 죽을 것 같다는 강한 직감을 신뢰해서, (뻔히 손해 보는) 그 선택을 결정함으로써 위기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인생이 감당이 안 되어, 너무 힘들었지만... 만난 적 없는 누군가의 긴급한 연락이 닿아서 마음을 고쳐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래선 안 되는구나. 좀 더 살아봐야 하는구나. 그런 우연의 소중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따라서 시간 여행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를 돕는다는 개념이 저는 참 근사합니다. 정신의학에서는 헬퍼스 하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남을 돕는 사람은 정서적 포만감을 느낀다는 이야기 입니다. 악역으로 나오는 사토르는 그토록 많은 물질적 부를 누리지만, 정서 면에서는 다 같이 죽자로 흐르는 것을 볼 때, 타인이 없는 삶이란 결국 풍요롭지 못함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네요.

 

 이제 마무리 합니다. 예전에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했듯이, 저는 인간에게 지식이 쌓이면, 오만함으로 흐르기 쉽다는 경계적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인간에게 반성적인 사고 (혹은 절제의 덕목) 라는 관점은 참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는 게 슬프다 하여, 잘못된 판단이나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구원이 되어줄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 2020. 09.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