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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름에 극장에서 본 작품에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도 생각납니다. 볼거리가 화끈했죠. 친구와 저는 관람 후 대화를 나누며, 15세 등급 치고는 좀 과격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스토리는 복선 같은 게 깔려 있지 않고, 오직 일직선으로 달려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빠르고 시원한 전개, 나쁘게 말하면 갑자기 저게 뭐야! 식이지요. 인상적인 대목은 몇 개 정도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제 리뷰에는 본편 내용이 있으므로, 흥미가 있으신 분은 영화를 먼저 보시기를 권해봅니다.)

 

 1. 살아가는 이유는? 누군가와 관계됨으로써 발견된다!

 

 제가 매우 자주 써먹는 정혜윤 작가님의 표현이 있습니다. 빛은 나 아닌 외부 세계의 좋은 것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인생에 밝음이 사라진 이유는 관계 맺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정민이 열연한, 인남이라는 중년의 아저씨도 삶이 킬러일 뿐, 밝은 모습을, 미소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나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문득 생각하다가 벽에 걸린 그림 한 장에 꽂혀서 파나마에서 남은 삶을 보내야겠다 다짐합니다.

 

 물론, 이러한 우연을 나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우연의 계기로 삶을 좋은 방향으로 얼마든지 전환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파나마에서 혼자 풍요로운 여생을 보낸다고 해서, 인생의 허무함이 깨끗하게 사라질리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돈과 여유는 모두가 탐내는 탐스러운 열매지만, 만약 이루었다고 해도, 누군가가 없다면 즐거움이 싹트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남이 내뱉는 명대사 하나는 기억에 남습니다. 딸을 발견하고, 딸과 소통하면서, 마침내 살아가고 싶은 이유가 생겼어! 라는 고백. 아무래도 인간은 누군가를 죽이면서 살기 위해 설계된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 반대의 해석은 가능합니다.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것은 삶의 강력한 이유가 될 수 있고, 때로는 행복과도 연결될 수 있음이 문득 경이롭습니다.

 

 2. 딸아, 내가 널 지켜줄께.

 

 이제 이정재가 열연한 레이가 - 집요하게 인남과 그의 딸을 향해 잔인하게 들이댑니다. 레이는 악의 화신으로도 묘사할 수 있겠네요. 사람을 죽이기 직전, 상대방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라며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을, 인생 최대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사람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만큼 멋있기도 하고,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인생을 걸만큼 독하기도 합니다.

 

 인남은 딸을 구해내기 위해서, 장기매매 세력을 직접 처단해 버리는 통쾌함을 관객에게 전해줍니다.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돈이 세상의 주인이 되면 얼마나 세계가 지옥으로 변할 수 있는가, 영화는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돈은 없고 (혹은 가지고 싶고), 가진 건 몸 밖에 없어서 장기매매를 위해 직접 해외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그림도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죠. 실제로 사채업 같은 경우는 나이가 일정 범위를 넘어가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의 소중한 몸보다, 돈의 신 맘몬이 위에 서 있는 괴상한 현실. 그러한 사회구조를 간파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법의 단단한 체계가 인간을 보호할 수 있길 응원합니다. 무법지대라면, 차라리 인남처럼 직접 총을 들고 세계와 맞서야 하는데, 이건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벅차게 느껴집니다.

 

 3. 삐뚤어진 시선이 없는 천국은, 미안하지만 여기에도 없었어.

 

 옷이 화려한 유이는 한국의 시선이 싫어서 해외로 도착했습니다. 맞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한국이 병영 사회로 갑갑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밖으로 도망치듯 나가보면, 아름다운 광경만 가득한 천국이 펼쳐질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나아가 더 심각한 일들도 여기선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윤리를 내팽겨쳐 버리고 아이를 인신매매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계속해서 알게 되니까, 유이는 인남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에게도 아이가 있어서, 정말이지 남일 같지 않았던 거죠.

 

 사회에는 룰이 있고, 때로는 그 룰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음을 생각합니다. 남자가 여자인척 하면서 살아가는 건 한국사회에서 2020년 시점에서도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기준점이라는 것은 세대를 거치면서 변하기도 하는 것이라, 2050년 시점이 되어버리면 개인의 권리라며 법적으로 보장하라는 목소리가 당연시 되거나 마치 합리적 의견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소수는 자유를 찾았고, 이를테면 화장실이 남,여,소수 3개가 되어버린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문명의 발전이라 볼 수 있는걸까요.

 

 저같이 보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성적 혼란은 마침내 인간으로써 해선 안 될 선을 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댄 것이며, 자유라는 보기만 좋은 위선의 간판을 건 지옥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죠. 영화 속, 태국처럼 아이의 몸을 돈으로 바라보는 정신 나간 일도 멈추어야 할 근거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뭐든 개인의 자유라는 발상은 그래서 위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며.

 

 영화는 인남의 값진 희생으로, 레이를 마침내 물리칩니다. 유이는 인남의 딸을 데리고, 먼 이국 파나마에 입성하며 막을 내립니다. 어디에도 없었던 천국, 그러나 누군가 희생함으로써, 더 좋은 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점은 기억할만한 대목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줄이며 마칩니다. 장문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0. 08. 리뷰어 시북 (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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