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

77. 실패, 그래서 아닐지도 모른다.

시북(허지수) 2025. 10. 17. 01:29

 

 2026년에는,

 

 나는 혹여 PNU 대학원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2025-26 그 긴 시간동안, 통합과학 공부를 다 못할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실패할지도 모른다.

 

 물론, 피아노만큼이야, 분명히 노력해서 바이엘 03권은 잘 치고 있을테지만!

 

 .

 

 대학원에서는, 내가 원하는 곳에 아직 모집 인원이 없었다. (물론 12월이 있다)

 다른 길로 갈까를, 꽤나 생각했지만, 길이 없다면, 잠시 멈추는 것도 선택이겠지.

 

 과학에 내 나름의 열의를 보이고는 있지만,

 이 정리가 도움이 될지 확신이 지금은 없다.

 무모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봐야 겠다는 마음은 크다.

 언젠가 단 1명에게 도움이 되었던 그 예전의 어떤 정리들 처럼.

 

  .

 

 글을 쓰고, 무엇인가를 남긴다는 게, 두렵다고 느껴질 때가 나는 있다.

 그럼에도 남기고 싶다.

 

 고민했던 흔적을,

 실패했던 흔적을,

 

 20살 때로 기억한다,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어느 선생님께 고백했던 그 용감함을.

 나는 ㅇㅇ 이 될 꺼라고!

 

 실패.

 

 긴 세월이,

 정말 긴 세월이 흘러서, 다시 통화했을 때, 그 선생님과 나는 실컷 웃었다.

 행복했다.

 

 꽤나 깊었던 행복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도전했고 실패했던 일이었는데도.

 

 .

 

 생각을 줄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멈추려고 노력한다고 써도 된다.

 말도 줄이려고 꽤 노력하고 있다. 말을 멈추려고 노력한다고 써도 된다.

 

 실패 같은 건 좀 해봐도 괜찮다는 마음이 계속 든다.

 나는 검정고시 첫 수학 점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았고,

 너무 실망하고, 분노(?)한 나머지... 수학에 꽤 많은 열정을 쏟았던 적도 있다.

 

 지금도 좋아하는 선생님은, 허준이 교수님이다. (수학계열)

 그 이상하리만큼, 학문에 진심인 태도가 너무 멋지기만 하다.

 바꿔 말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태도가 근사하다.

 그 무모한 자신감이, 어쩌면 인생 제일의 멋짐 같기도 하다.

 

 .

 

 나는 바보가 되기로 작정했는가 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라는 꽤나 고전적인 질문 앞에서도,

 나는 차라리 이상한 답을 내놓는다.

 

 통일되면 좋을 꺼 같아요. 그냥요.

 우리나라가 없어지지 않으면 좋을 꺼 같아요. 그냥요.

 

 다들 결혼하지 말라고도 하고, 출산율이 0점 몇인데...

 그냥 서로 티격태격 사랑하면서 살고, 그런 가정에서는 애들도 2~5명씩 있으면 좋겠고...

 매우 힘들테니까, 그런 가정을, 국가에서 당연히 조금이라도 상관없으니 관심을 가졌으면 하고,

 이제 군인이 없으니까, 이러다가 군대제도가 바뀌는 게 아닌가...

 여자도 군대가는건가... 총검 혹은 의학, 좀 슬프고...

 

 도대체 모든 상점가가 임대가 붙어있고, 오프라인이 없어지면,

 멀리 갈 필요가 없는 디스토피아의 출발이 왔구나 싶고...

 

 .

 

 사실은, 가장 슬픈 건,

 똑같은 한 해가 된다는 것.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살아왔는데,

 

 결론은, 지식을 넣고, 상상을 펼치고,

 그리고,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 관점을 잃지 않는 것.

 그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그것이 미래에 아름다움으로 펼쳐질 것으로 믿는 것.

 

 .

 

 2025년은 그래서 매우 특별했던, 그래서 재밌고 기뻤던 광복 80주년의 한 해 였다면,

 

 2026년은 나에게, 어느 때보다, 삶을 사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상상해본다.

 

 10월 16일도,

 10월 17일도,

 심지어 맨 첫 장도,

 다이어리에는 온통 시간에 대한 격언 뿐이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사실은 "나" 이기 때문이다.

 추억을 어떻게 쌓느냐가 이 또한 "나" 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추억 하나 없이 보낸 사람이, 인생의 깊은 맛을 알 수 있을까.

 그러므로,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런 것을 떠나서, 시간을 한 번 맛볼 필요가 있다.

 

 생전에 어머니는 이렇게 눈물지으셨다.

 "고마워"

 

 내 존재를 그토록 기뻐해주셨다는 것을, 나는 얼마나 뒤에 알아차린 걸까.

 

 .

 

 아프신 아버지는, 과묵한 아버지는 오늘도 웃으신다.

 "(너의 모든 실수가) 괜찮다"

 

 석사 아들, 박사 아들, 그런 것은 아무 필요 없다고 못 박으신다.

 함께 야구나 보고, 함께 바둑이나 보고, 가끔 맛있는 거나 같이 먹고,

 

 부모님 마음이야, 다들 비슷한건지,

 이렇게 자정 넘어 뭔가를 보고 있으면, 이제 야단치신다.

 

 나는 몰랐다. 고위급 고급 직업을 가진, 멋진 식구를 놔두고도,

 나를 보면, 아침마다, 매일 반가워 하시고, 기뻐해 주시는 아버지. 

 그런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나는 지금이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인걸까.

 

 .

 

 시험이 힘이 든다.

 

 봐야할 것은 많고,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예의는 아니지만) 가끔 때려치고 싶다 ㅎㅎ

 

 아버지한테도, 이야기 했다가, 엄청나게 화를 내셔서, 정말로 한 대 맞을 뻔 했다.

 

 공부 같은 건 당연히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결정하고 시작한 것을 도중에 힘들다고 도망친다면, 물러선다면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이 부모님께 배운, "태도" 라는 단어다.

 

 최근에는 아버지와 바둑을 함께 봤다.

 나는 아주 하수고, 아버지는 아주 고수다.

 준결승전, 한국기원의 최정(현역 최고수 중 1명) 선수와 스미레 선수의 명승부. 300 수가 넘는 대국.

 

 끝까지,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스미레 어린 소녀에게도, 아버지는 박수를 보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렇게 다 두고서도, 백(스미레)은 겨우 1집 정도가 마지막에 남아 있었다.

 백의 석패였다. (정말 아까운 패배)

 

 .

 

 바둑은 참 신기하다. 시간이 잘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집이 크게 나서 이길 때도 있고,

 대마가 두 집을 못 내서 잡혀버리면서, 불계로 질 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도 최선을 다해서 양쪽이 수담(손의 대화)을 오가며, 300번의 수순을 밟았는데,

 1집이 남는 것도 바둑의 한 장면이었다.

 

 .

 

 나는...

 미래를 내다보며 글을 쓰거나, 말을 건네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을 살지 않는 것이며, 성향상 N 이라는 성향이라고도 한다. 공상가.

 

 .

 

 그래서 너는 꿈을 이루었니?

 라는 말에 그러므로,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네.

 

 YES.

 

 악기 1개는 배우고 있으며,

 과목 1개는 좋아해 봤으며,

 제자 1명은 아끼고, 응원했으며,

 

 아버지께 노력했고,

 어머니께 다정했고,

 가족에게 져주었고,

 

 신나게 놀았으며,

 생각하고 말하려고 애를 썼으며,

 지나간 일에, 끝없이 슬퍼해 봤으므로.

 

 .

 

 다시 19살 2월로 돌아가면 또 문을 두드릴 것이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저 공부라는 거 해볼테니까,

 8월까지는 중학교, 고등학교, 전부 다 가르쳐주세요!

 비오듯이 다 틀려가겠지만, 그래도, 또 가르쳐주세요!

 

 웃으시던 그 사범대학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여전히 그립다.

 "지수야, 너 교과서 얼마나 재밌는건지 아니?"

 

 그리고, 맞다!

 "게다가, 비밀인데 교과서가 바뀌기도 한단다?"

 

 나의 이상한 표정도 생생하다.

 "네????????????"

 

 내가 읽은 책에 의하면 - 괜찮은 책 만드는데 보통 7년 ~ 10년, 30년도 걸리는데...

 그런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사실이었다.

 

 교과서의 내용은 정말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교과서가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조금 독특한 관점이다.

 "무엇이든지 넓게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가령, 저 명랑한 소녀가, 훗날 천재 공학 아가씨 가 되는 것이고,

 혹은, 저 멋진 소년이, 훗날 아주 세련된 솜씨로.... (중략)

 

 .

 

 첫 2개월, 국어도 수학도 거의 틀리지 않았다.

 그 다음 과정은 훨씬 어려웠지만, 이겨냈다.

 얼마나 선생님들이, 잘 가르쳐주셨는지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시절의 몰입에 가까운 힘든 공부들이, 10년이 가도, 계속 흔적이 되었다.

 

 역사교육과 신 선생님은, 빛나는 칭찬을 아낌없이 했다.

 대학에서도 보기 드문, 멋진 글을 썼다며, 진심을 다해서 웃어주었다.

 

 (훗날 알게 되었지만) 진실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정말 숫자 0 에서 출발한 블로그는, 몇몇 역사를 다룬다는 이유로 수백만이 되었다.

 내가 한 일은 없었다. 신 선생님과, 큰별 최 선생님의 아름다운 합작이었다.

 수 많은 사람이 애써 도와주었다.

 

 .

 

 그 반대편에는, 실수한 내가 있다.

 침묵하지 못한 내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테리토리 (고유영역) 인가를 지켜주지 못하고,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있다.

 

 그리고, 늘 이렇게 말한다.

 

 역시, 완벽할 수 없구나.

 또 아프게 실패하는구나.

 

 계속 실패하더라도,

 가령 휴대전화의 배터리 0% 처럼, 에너지가 다 떨어져 꺼지더라도,

 다시 나의 희미해져가는 꿈에 귀를 기울이며, 충전을 시작한다.

 

 완전히 잘못하고 나서야,

 배우게 되는 것도 있으니깐.

 

 그런 오답노트가 있기 때문에,

 어렵게 "배려 (남에게 더 신중히 애쓰는 마음)" 라는 것을,

 정말 어렵게 배우는 것이라고,

 

 겨우 눌러 쓰고, 잠을 청한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 . . 좋은 삶을 살기란, 멀고, 희미하고, 어렵기만 하다.

 

 내게 주어진 그 꿈, 조금씩이라도 이루어 가면 좋겠다.

 혹여 이루지 못하더라도...

 

 때때로 찾아오는 깊은 슬픔만큼의, 신기한 작은 기쁨도 가끔 있었으면 좋겠다.

 

 이유 없이 화내는 이상한 세상이라고 하는데,

 이유 없이, 감사한 일을 찾아내 버리는, 조금은 미친 사람이 되는 것도,

 나에게는 어울릴 꺼 같다.

 

 .

 

 두서없는 정리되지 않은 글

 다른 분들께는, 이 이상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그럼에도 집안일 하고, 열심히 운동한, 내 기특한 모습에도, 고맙습니다.

 

 (다 해내지 못해) 좌절하지만,

 에잇! 하면서, 또! 또! 웃어가는,

 미래 계산도 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스스로의 모습에,

 오늘은 특히 감사합니다.

 

 - 2025. 10. 17. 자정이 훌쩍 넘어. 허지수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