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가칭)

14. 칭찬 도장 찍기

시북(허지수) 2026. 3. 28. 16:22

제목 - 칭찬 도장 찍기

조용한 교회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다가
고단해서 널부러져 있다.
하찮은 내 모습이 어쩔 수 없다.

너무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윗층은 하필 색소폰 연습실이라,
조용히 있으면 음악들이 들려온다.
의외로 가장 자주 들리는 노래는,
이것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근사하고 화려한 연주자는
오히려 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
음악의 꿈을 안고 연습에 열을 올린다.

조금 먼 곳에서는 건물 내부공사가 한참이다.
전동드릴소리는 적응불가의 소음이 되어,
음악소리와 큰 대비를 이룬다.

피아노, 색소폰, 그리고 사람의 노래소리.
좋은 소리들은 삶을 즐겁게 해준다.

실은 드릴 녀석도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을테지.
단지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시끄러우니...

옅은 녹색의 바이엘 연습책이 오늘 좀 미웠다.
아직은 정이 가지 않는다.

기타도 양손 치기가 제법 걸렸었다.
그러니 피아노는 더 걸리는게 당연하다.
기왕 시작했으니 그냥 가고 있다.

(원래 기본기를 다지는 일이 어려운지도 모른다)

또 잠깐 존다.
꿈결에 바흐의 단정한 선율과 양들이 보였다.
풀을 뜯는 양들 대신.
허기진 나는 늦은 점심을 최대한 근사하게 고른다.

나도,
왼손은 도레미파솔 연습.
오른손은 스타카토 연습.
아! 뜨거! 오른손은 일부러 신경을 쓴다.

초밥을 거의 20피스나 꿀꺽 먹었는데도
몸은 배고프다고 신호를 보낸다.
확실히 뭔가 열정을 쏟긴 쏟았다.
그래서 한 걸음이라도 갔으면 된거다.

좋은 하루다.

공사소음은 어느새 멈춰버렸다.
내 연주는 이제 막 시작했다.
밤이 찾아 오면 또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병원에서 천장 쳐다보는 삶보다야 좋다.

어떤 멋진 깨달음.
그조차 오늘은 전혀 없다.
춥고, 배고팠으며, 하찮은 나를 단지 볼 뿐이다.

다시, 눈이 감겨온다.
입술에는 피곤의 흔적이 묻어난다.

10분이, 1시간이 되고,
땀방울로 거센 몰입까지 가는
예술동화 주인공이고 싶었다.

그러나
한 걸음씩 가는게.
이 느린 발걸음이 전부다.

그럼에도.
참 잘했어요.
칭찬 도장을 내 멋대로 찍어버린다.

실은
언제나 좋은 날 임을,
한 번 적어보고 싶었다.

빨래 돌리고,
산책 나오고,
커피 마시는...

아무 일 없는 날 조차.
인생의 빛남 이라고 남겨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