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가칭)

16. 주어진 자리

시북(허지수) 2026. 3. 30. 03:23

제목 - 주어진 자리

주어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에게 일을 부탁했던 물류담당 형님은
이번 일주일을 크게 고마워 했다.

밤의 풍경을 그려보고 싶지만,
오늘은 특히 고요해서,
벌써 사람이 그립다.

별 이유없이,
내게 잘 대해주는 분들이 있다.

굉장히 애쓰고 노력했음에도,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 역시 있다.

쌓인 피곤 때문에,
그냥 엎드려 잠시 잘까 싶다가도.
주인의식 이라는 마음에 자세를 또 고친다.

짧은 스트레칭에 세포들이 아픈소리를 낸다.
가득한 원두찌꺼기를 깨끗이 비워낸다.
시간이 임박한 상품들도 덜어낸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가볍게 세수를 한다.
음악소리를 또 키운다.
아! 이제야 잠과는 조금 멀어진다.

물류담당 형님은 일자리가 필요하면,
알아봐줄테니 걱정말라고 응원해주신다.

밝고 경쾌하고 발랄한 글을 꿈꾸지만,
오늘은 어쩐지 저공비행이다.
훨씬 조심스럽다.

자랑들은 불편하다. 소음일 수도 있다.
이 글이 자랑으로 읽혀질까 두렵다.

펼쳐지는 호의에 나는 고마움만 커간다.
사회의 일원이라는 감각은 매력적이다.

말을 삼가고,
가만히 있어도 좋은 모습이기를.

표정을 읽고 말았다.
고단한 병원 간호사 선생님의
새벽 3시 방문.
말없이 드뷔시 달빛을 켜고,
친절의 강도도 훨씬 낮춘다.

나의 기쁨은, 타인에게 무례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침묵이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제 잠은 없다.
나의 내면은 차분히 말한다.

너무 힘든 날에는 억지로 기뻐하지 마.

아주 평범한 날이지만,
그저 주어진 자리를 지킨다.

그러면 다음 계단이 나타난다.
그렇게 저 먼 곳 까지 가다가,

섣부른 판단 대신 감사로 삶이 저물어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