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 (가칭)

12. 아버지 (감사)

시북(허지수) 2026. 3. 27. 20:51

 제목 - 아버지 (감사)

 

 어린 시절 전축이라는 것이 있었다.

 둥글고 커다란 레코드판을 놓으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나와는 전혀 다르게

 고급 직업을 입고, 부지런히 생활하셨다.

 

 비틀즈 나 모차르트 같은 곡들이

 주로 엄마 아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집 안에,

 내가 장만한 디지털 피아노가

 배송되어 들어왔을 때도,

 아버지는 놀람이 없으셨다.

 

 이 녀석 봐라?

 어디 한 번 쳐보지 그래?

 라는 호기심으로 마주하셨다.

 

 고가의 물건은 아니고,

 이른바 타건감과 음향감이 좋지 않아서

 디지털 피아노를 자주 치지는 않는다.

 그저 연습용과 기분전환용에 가깝다.

 

 스피커도 좋은 것을 써야 기분이 풀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름은,

 음향에 반쯤 홀려서,

 전축이라는 것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응급실에서 수술 판정을 받자마자,

 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오셨다.

 긴 수술 시간 내내,

 바깥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초조히 기다리셨다.

 

 말없는 아버지는 언제나 사랑의 기술이 이런 식이다.

 

 꽤 늦은 밤, 출근 길 인사를 건넬 때.

 그 때 만큼은 아버지가 말이 잠깐만 많아진다.

 그조차 단문으로 써진다.

 "그래. 욕봐라"

 

 굳이 번역한다면, 힘들겠지만 잘 다녀오거라. 로 들린다.

 

 나의 감정을 있는대로 쓴다면,

 제목과는 약간 다르게 미안함 에 가깝다.

 

 어릴 때는 아파서 적잖게 엄마 아빠의 마음을 쏟게 만들었고,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러 번이나 또 아프니,

 좋은 위치에서 아버지를 안심시킨 적이 없다.

 

 이제 70대가 넘어버린 아버지와 나는.

 그저 삶을 같이 걷는,

 말없는 친구가 되어간다.

 

 여행효도 랍시고,

 세계테마기행 여행프로그램을 가끔씩 함께 본다.

 아버지는 산과 바다를 참 좋아한다.

 

 내가 조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는 프로야구도 함께 본다.

 소파에서 나는 잠시 잠들지만,

 아버지의 화난듯한 거친 소리에 또 깬다.

 분명히 잘 이기고 있던 경기 같았는데,

 팽팽하게 흐르는 반전이 야구의 이상한 매력이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아픈 나를 여러 번, 차에 태워서 학교까지 등교시켰다.

 하필이면 준비물이 있었다.

 나의 설명에, 아버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끝내 어쩔 줄 몰라서 무척 당황스러워 하셨다.

 

 아빠. 괜찮아. 뭐, 어떻게든 돼.

 

 사람은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없다.

 든든한 아버지도, 가끔은 부족하고 어설프다.

 

 세월이 길게 흐른 지금,

 이제는 내가 좀 더 모진 사람이 되어서,

 술도 못 드시게, 싫은 소리 해가며, 거친 마음을 먹는다.

 

 더 세월이 흐르면, 아버지를 볼 수 없는 날이,

 나는 보인다.

 

 키워준 은혜를, TV프로그램 1시간으로 효도했다고,

 내 생각만 가득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 조차도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크는 것.

 연약한 몸으로도 즐겁게 잘 지내는 것.

 

 아버지의 바람은 단지 그것임을,

 말없이도 아는 날이 와버렸다.

 

 아버지의 여동생 (고모) 로부터,

 최근에야 소식을 들었다.

 "네 아빠, 공부를 너무 잘하던 사람이었단다."

 

 참으로, 아버지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공부 같은 시시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TV는 켜져 있다.

 프로야구 선수 답게,

 화끈한 한 가운데 승부를 해보라고 또 소리를 높이신다.

 

 인생은 얻어맞더라도,

 정면으로 던져야 되는 일들이 있다.

 아버지에게 배운 몇 안 되는 원칙 이다.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괴롭히며 살지 말 것.

 

 시시한 인생인데도 이토록 좋은 것은,

 어쩌면 아버지 덕분이다.

 

 과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마음을 쏟는다.

 나의 젊음은 미안함 으로 끝났지만,

 아버지는 오늘도 "말없는 흐뭇함" 이다.

 

 남 좋은 일 하다가, 바보처럼 살다가기.

 부전자전 이라고 놀림받아도 좋다.

 

 지혜로운 교훈 보다는,

 아버지의 어리석은 삶이, 나는 더 좋다.

 

 내가 60살, 70살이 될 무렵에는,

 어느 괜찮은 노인센터에서,

 피아노를 두드릴 줄 아는 괴짜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 때에는, 주름진 손으로, 건반을 퉁퉁 눌러보고 싶다.

 

 참 시시한 꿈이다.

 그런 꿈이라도 꿀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인생을 끝까지 즐기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커왔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모습이.

 

 어느덧 내 모습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