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슈퍼로봇대전F 의 리뷰를 쓸까 하던차에, 우선 이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해서, 카테고리 애니리뷰 첫 글로 잡아봤습니다. [슈퍼로봇대전 연구실로 이전] 워낙 유명한 작품인데다가, 제가 몇 마디 쓴다고 해서 수 많은 에반게리온 리뷰들에 비해서 조금도 뛰어난 글도 아닐테고요. 그냥 에바를 좋아했던 블로거의 잠깐의 회상 정도랄까요 ^^ 추억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아직도 기억나는 한 가지는, "뭐? 슈퍼로봇대전에 에반게리온이 나온다고!!!!!" 라는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당시 막대한 고가품인 세가새턴을 장만했던 기억이 납니다.

 에반게리온의 당대 인기와 영향력에 대해서는, 단순히 90년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애니메이션에 그치지 않았으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日本のメディア芸術100選)의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저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작품 및 (엄청난 마니아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기동전사 건담 등의 거작들을 누르고 1위로 선출되었다고 합니다. 방영 당시에도 음악OST가 애니메이션 음악임에도 오리콘차트 1위를 차지하고 그랬을 정도니까요... 이 쯤에서 Eminence Symphony Orchestra가 연주한 타나토스 한 번 들어볼까요. 종종 보는 영상이지만, 정말 느낌이 좋네요.


 명색이 남자주인공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카리 신지는 별로 주인공답지 못한 성격이었습니다. 로봇에 타는 것에 대해서 조차 고민하고, 갈등하는 주인공이라니... 안노 감독은 스스로도 건담 역습의 샤아와 관련(메카닉 담당)이 있는 인물이고, V건담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만큼, 아무래도 그런 쪽에서 영향을 조금 받았겠지만, 당연한 것조차도 갈등하는 주인공 신지를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았습니다.

 오늘날을 상대주의의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 절대적인 것, 당연한 것, 정답인 것은 - 낡은 생각처럼 되어버린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절대적 기준선은 무너진지 오래이며,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조차도, 왜 꼭 그래야만 하는 거지? 라고 문제제기를 하는 시대입니다. 덕분에 복잡성은 더욱 증가되고 있고,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울증과 불면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꾸 증가하고, 잠이라도 한 번 푹 자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들도 종종 보아왔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고, 쉽고 재밌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이카리 신지처럼 말이에요. 흘러나오는 음악에 이어폰을 꽂고 소통을 단절한 채 살아가며, 도망쳐서는 안 돼!! 라며 이를 악물고 간신히 로봇에 타지만, 결국 그 결심조차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흔들리고, 방황하게 되는 신지는 당시를 살아가던 10대, 20대 들의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윗집에 누가 사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돌그룹의 멤버 정도는 가뿐히 다 외울 수 있는, 가까운 연대보다는 장밋빛 위안에 기대서라도 삶의 조금의 휴식을 맛보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지요.
 
 친구는 있고, 아는 사람은 있지만, 삶의 문제를 이야기 할 곳은 없다... 공들여 관계를 쌓아올려가면서 상처 받기 보다는, 차라리 심각한 고민 속에서도, 그것을 꺼내지 않고 묻어둔채 자신 만의 진지한 세계 속에서 삶의 해답을 찾아나간다. 가치 판단은 함부로 할 수 없겠지요. 이것이 옳은 지, 저것이 그른 지...

 또한 생각해 볼만한 점은 - 무척 좋아하던 빨간 옷을 입은 아스카. 예쁜 히로인 에다가, 두뇌 명석, 활발하고, 지기 싫어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지랑 반대랄까요. 괴물로 등장하는 "사도"를 막을 때도, 아스카는 내가 활약할 때가 왔다면서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스펙이 워낙 빵빵한데다가, 두려울 게 없는, 알파걸이자 엄친딸 이랄까!

 하지만, 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누구나 외롭다는 것이지요. - 많은 사람들이 에반게리온에서 또 한 명의 히로인 아야나미 레이가 신지의 치명적인 위험을 대신 막아내면서, 단 한 번의 미소를 보여줄 때를 명장면으로 꼽지만, 개인적으로는 - 모든 것이 밝고, 건강해 보이는 아스카가 잠자리에 들면서 엄마라는 말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하기야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 들은 보기에는 멀쩡(?)해보이지만, 저마다의 고통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 단지 그것을 말하지 않을 뿐...

[Neon Genesis Evangelion OP (FULL) - youtube]

 TV판 마지막 2화에 대해서도 인상적이었지요. 별다른 화려한 영상 대신에, 주인공들 내면의 이야기가 거의 음성만으로 펼쳐집니다. 어느 평론가는 "집중과 확산이라고 하는 컨셉 아래에 디자인 된 작품으로서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평하기도 했고요. 논란의 마지막 2화는 제작기간이 빠듯해서 등의 이유로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나, 애시당초 계획된 시나리오 였다고 하지요. 뭐, 나중에 극장판을 통해서 확실한 마무리를 지어줍니다만... 하하.
 
 극장판 마지막 부분, 사실 상의 이야기는 완결되었고, 세상에는 신지와 아스카만이 남겨집니다. 아담과 이브처럼 남겨진 두 사람이지만 결국 곁에 누군가가 남게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마지막 장면이 아직 생각이 납니다. 혼자 사는게 편하고,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울 것 같으나, 심리적으로도 고독만큼 괴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요. 단 한 사람의 힘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대단하고, 특별한 것입니다. 곁에 있어주는 단 한 명의 친구, 자신의 이야기를 불편없이 늘어놓을 수 있는 한 명의 누군가가 있기에, 마침내 삶이 풍요로워 진다고 믿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이건 뭐 로봇에 관한 이야기는 없군요 (...) 그렇다면 뒷이야기로, 로봇 디자인은 상품화가 어렵다며 혹평받은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결국 유명 완구회사들 대신에 세가가 나중에 비디오게임 등의 라이센스를 취득하게 되었지요 (...) 언뜻 보면 생체병기와도 비슷한 괴물체(!)인 에반게리온이지만, 아무튼 이러한 시련을 딛고 세가의 새턴을 발판삼아서, 슈퍼로봇대전으로도 진출~ (우후훗)
 
 주절주절 두서없이 늘어놓은 이야기들을 이제 정리해야겠습니다. 인간은 대체로 살아온 습관들이 누적되어 있기 때문에 잘 변하지 않으며, 인간의 마음도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진심"입니다.
 
 인도의 간디가 수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 비결로는 - 개인적으로 그 마음의 일관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8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그의 저술은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음 / 브리태니커) 인간이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무기는 "한결같은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언제나 자신을 생각해주고, 아껴주는 사람 앞에서 그 어떤 거인도 어린 아이가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에반게리온이나 그렌라간 같은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모은 것과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갈등 하기도 하는 에반게리온의 주인공들이지만, 사도에 맞서기 위해서 집중해서 싸워나가는 그 모습은 가히 하나 하나 일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슈퍼로봇대전MX에서 재현한 에반게리온의 모습을 덧붙이며 리뷰를 마칩니다. 마지막 합체공격 장면은 언제봐도 신나네요. 하하.



by 시북 2010.02.25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