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리버 플레이트의 전설, 호세 마누엘 모레노

시북(허지수) 2010. 6. 20. 22:07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1916년생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한 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의 이름은 호세 마누엘 모레노... 일단 이야기를 곧바로 출발해 보겠습니다 :)

 프로필

 이름 : José Manuel Moreno
 생년월일 : 1916년 8월 3일 (1978년 8월 27일 작고)
 신장 : 172cm
 포지션 : FW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34시합 19득점

 라 마키나의 공포, 천재선수, 호세 마누엘 모레노

 1940년대 남미를 호령하던 공포의 축구를 구사하던 팀이 있었습니다. 그 팀은 바로 아르헨티나의 명문팀 리버 플레이트! 최근 잘 알려진 리버 플레이트에서 뛰었던 축구선수로는 바티스투타, 크레스포, 아이마르, 사비올라, 마스체라노, 그리고 2010 월드컵에서 우리를 울린 이과인 등이 이 팀 소속이었지요.

 여하튼, 이 40년대 리버플레이트의 실력은 거의 전설적인 이야기로 전해질 정도입니다. 압도적인 강함과 정밀한 축구를 구사하면서, 라 마키나, 우리말로 "기계"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기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이면서 골을 양산한다면 이건 무슨 축구게임도 아니고, 공포겠지요. 이 역사적인 팀의 포워드 라인은 무려 5명! 심지어 감독 마저도 "골키퍼 외에는 모두 포워드!" 라고 말할 정도니까, 얼마나 가공할 공격축구를 구사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공을 잡으면 자유롭게 포지션을 바꾸면서, 파괴적이고도 탁월한 기술로 적진을 초토화 시키고 혼란시키는 것이 그들의 특기였지요. 인상적인 이러한 축구스타일은 종종 70년대 네덜란드의 토탈사커와도 비교되기도 합니다. 이 5인방은 모두 한 실력을 자랑하던 뛰어난 선수였으며, 특히 오늘 소개할 호세 마누엘 모레노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고, 빛나는 선수였습니다. 당시 멕시코 영화의 미남 스타를 꼭 빼닮았기 때문에 엘 차로(El Charro)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멕시코 카우보이를 Charro 라고 부릅니다.)

 플레이스타일을 살펴보면, 예리함이 살아있는 드리블, 절묘한 패스, 뛰어난 헤딩력을 두루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경기장에서 감각적으로 공을 다루는 기교는 당대 남미에서 비교할 선수가 드물었습니다. 이러한 다채롭고 화려한 재능은 후대의 브라질 펠레나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모레노의 이름이 종종 아르헨티나가 낳은 최대의 천재선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받는 까닭입니다. 모레노는 정신력도 강해서, 태클이 들어와도 안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플레이를 계속하면서 골로 답을 대신해 버리는 자부심 강한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잘생긴 외모, 영감 넘치는 플레이, 이런 선수라면 당연히 인기가 높았겠지요. 유명한 일화도 있는데 모레노는 1935-44년까지 리버플레이트에서 뛰다가, 2시즌 정도 멕시코리그에서 보냈다가, 다시 한 번 리버플레이트로 돌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이 때 돌아온 모레노를 보려고 팬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는 바람에 설치되어있던 펜스까지 넘어지는 소란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엄청난 성원에 화답을 해야겠지요. 모레노는 골들을 작렬시키며, 남미 전설의 포스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그는 필시 1940년대 가장 유명하고, 공을 잘 차던 남미 선수 중 하나였지요.

 그러나 남미의 레전드 중 한 명인 그의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월드컵에서 플레이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1938년 월드컵에 아르헨티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보이콧(불참)해버립니다. (전해지는 이유로는 국내선수가 유럽에 빼앗길까봐, 프랑스에 개최를 빼앗겨서 등) 그리고 42-46년 월드컵은 세계대전으로 열리지 않았지요. 이 기간, 그러니까 1940년대에 전성기이며 공을 잘 차던 선수는 상대적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릴 기회가 적었던 것입니다. 결국 모레노의 국가대표 타이틀은 1947년 코파아메리카 우승이 유일한 타이틀이 되고 말았지요. 또한 모레노는 오랜 기간 축구를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팀을 거쳐가면서 1961년 45살까지 뛰었다고 볼 수 있는데, 서로 다른 4개의 나라의 리그 챔피언이 되었다고 하는 희귀한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월드컵에서 뛰지 않았던 당대 모레노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로 볼 수 있는가? 라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이것은 리버 플레이트에서 1940년대 후반 뛰었던 디 스테파노의 예를 들면 조금 비교할 근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디 스테파노는 리버 플레이트 득점왕 출신으로, 훗날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중의 전설로 군림하게 됩니다. 축구역사에도 만약은 없지만, 만약 1940년대 초반의 모레노 역시, 유럽으로의 기회가 닿았다면, 유럽에 그 무서운 포스를 휘날릴 수 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혹자는 아르헨티나의 천재는 디 스테파노, 마라도나 뿐만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대한 왼발 시보리도 있고, 라 마키나의 모레노 같은 천재도 있었다. 라고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IFFHS에서 20세기 명선수들을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모레노는 당시 수 많은 선수들 가운데서도 베스트 50 안쪽에 이름을 올리면서, 과연 그 실력을 어느정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정확히는 25위 였는데, 26-27-28위가 각각 멕시코 영웅 우고 산체스, 그리고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 카메룬의 로저 밀러 였으니... 과연 모레노의 실력과 인기들이 결코 과장은 아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월드컵을 뛸 수 있고, 활약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요즘처럼 전 세계에 그 열기가 전해지고 있는 시대에서는,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몇 번의 인상적인 활약이 있다면 많은 명성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실력이 있음에도 그런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던 선수도 있습니다. 라이언 긱스도 월드컵 무대 한 번 못 밟아봅니다. 그렇지만 긱스는 분명 훗날 레전드로 평가받을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우승청부사 모레노는 그 걸출한 재능을 세계에 제대로 알릴 기회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남미 전설 중 하나로 늘 평가받게 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마치며 덧붙이는 말이 있다면, 항상 본선 진출해주는 한국에게 고맙고, 또한 그런 대한민국의 월드컵 선전을 기원해 봅니다. 행복한 6월, 즐거운 월드컵 시청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