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시간내서 한 번쯤 봐야지... 하면서 미뤄두다가, 최근에야 영화 타인의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삶에 대하여, 여러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라서,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 쯤 시간내서 보더라도 후회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걸작영화로 손꼽힙니다.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도 탔고 말이지요 :) 그럼 이야기 속으로 출발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시길.

 이 곳은 동독, 국가보안을 담당하는 비밀경찰요원 "비슬러" 그는 임무를 맡고서 위험한 인물으로 찍혀 있는 드레이만 부부를 감시하게 됩니다. 도청하고, 훔쳐보면서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비슬러. 그는 저자들을 어떻게든 꼬투리 잡아서 감방에 넣든, 처리를 하든, 상부에 보고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들은 능숙하게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생활을 조용히 엿봅니다.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말이지요. 그의 그림자 같은 활약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관객은 이제 드레이만 부부의 모든 것을, 그러니까 삶 전체를 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비슬러는 타인의 삶을 훔쳐볼 수록 그들의 애틋한 삶에 공감해 나갑니다. 특히 심장이 멎을 듯한 압권은 바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 대목입니다. 지인의 자살에 깊은 슬픔을 표현하면서 드레이만은 피아노를 장중하게 치고, 비슬러는 말 없이 그것을 듣습니다. 이후 한 꼬마는 경찰요원 비슬러에게 묻습니다. 아저씨 나쁜 일 하는 사람이라던데요... 잡아간다면서요.


 국가정보국 교수에 빛나는 도청 전문가인 냉철한 비슬러는 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터닝 포인트입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드디어 자문했을 것입니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는 인간다움에 눈을 뜬 것입니다. 이 영화의 숨겨진 미덕이 있는데, 그것은 과장적인 언어가 아닌 절제된 언어와 표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흐름을 좇아가며 음미하면서 보는 것이 이 영화를 좀 더 느껴볼 수 있는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비슬러가 마음을 바꾸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 권력남용이 한 개인을 얼마나 멍들게 하는지 - 이것은 올바름이 아님을 두 귀로 똑똑히 주시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문화부장관 이라는 작자가 드레이만의 아내이자, 여배우인 실란트를 권력의 힘으로 협박하며 성추행 하는 지독한 장면... 그리고 실란트가 욕조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장면... 제발 문화부장관 같은 쓰레기를 만나지 말라는 드레이만의 애타는 호소.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았습니다. 타인의 행복한 삶이 붕괴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비슬러 역시 더 이상 권력의 앞잡이 편에 서지 않게 된 것입니다.

 비슬러는 마음을 바꿔서, 드레이만 부부를 보이지 않게 도와주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드레이만을 보이지 않게 엄호해주고, 그가 끌려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줍니다. 드레이만에게 불리한 도청기록들은 지워버립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영웅적 행위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전혀 멋드러진 것도 폼나는 것도 아니며, 다만 드레이만이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는, 그 간절함을 관객이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드레이만의 아내는 끝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맙니다. 도를 넘은 권력남용은 늘 이처럼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 주곤 합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비슬러가 노력하며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박수입니까, 그럴리가요. 그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에 좌천 당하고 맙니다. 20년 동안 작업장에서 일해야 하는, 다시 말해 더 열악한 곳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그는 선한 일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이런 부조리한 대우였지요. 하지만 비슬러는 이미 각오하고 있었고, 그 어떤 불만도 담지 않은 채, 묵묵하게 맡겨진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20년 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동독은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통일되었으니까요.

 비슬러의 선택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서로 불신하고,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스템 속에서도, (게다가 그는 도청이 직업이었으니!) 그는 "타인의 삶"에 공감하며, 그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신뢰하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 선의는 좌천으로 돌아왔지만...

 드레이만 본인도, 자신이 생각해 보니 어째서 고비마다 무사히 활동해 나갈 수 있었는가 궁금해서 지난 날의 서류들을 뒤져보게 됩니다. 그는 알게 되었지요. 한 남자 HGW/XX7이 자신을 지켜주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드레이만은 통일 후 책을 쓰게 됩니다.
 
 HGW/XX7 을 헌사하며...
 
그리고 한 남자 바로 그 암호명의 주인공인 비슬러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 책을 집어들면서 옅은 미소를 짓게 됩니다. 자신의 보이지 않는 선행이 화답 받았을 때의 감동이란... 글로는 이루 말하기 어렵겠지요. 보이지 않는 그 깊은 연결고리 속에서, 서로 인사하면서 당신같은 사람이 있어줘서 고맙다고 악수하는 듯 했습니다. 비슬러는 그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인간 다운 인생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많이 있습니다. 한 개인이란 얼마나 권력 앞에서 무력하고,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 가를 살펴볼 수 있으며,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란 참 약하고 짓밟히기도 쉽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절망감이 턱턱 차오르지만, 그럼에도 선한 사람은 있으며,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사람은 있으며, 더러운 세상에서 더럽게 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면서 재밌는 이야기 한 가지. FC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우승 비결로 "공이 없을 때"라는 말을 언급 했습니다. 공이 없을 때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럼 "선한 사람이 없을 때"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그 때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시대, 그런 사회가 오더라도, 우리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더라도. 설령 좌천되고 비웃음 당할지라도. 그 선한 선택이 누군가를 살려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 2010. 07. 리뷰어 시북.


by 시북 2010.07.13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