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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에 제르손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FIFA100 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당시 피파100에는 네덜란드 선수들도 14명이나 선정되었는데, 거기에는 1947년생 요한크루이프를 필두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베르캄프, 다비즈, 반바스텐 등도 있었지요. 그런데 역시 1947년생으로 유명한 명선수 였던 렌센브링크의 이름도 올라가 있었습니다.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렌센브링크 역시 훌륭한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레전드! 오늘은 그의 이야기로 가볼까요.

 

 프로필

 

 이름 : Pieter Robert "Rob" Rensenbrink
 생년월일 : 1947년 7월 3일
 신장/체중 : 178cm / 76kg
 포지션 : FW, MF (주로 왼쪽 윙어)
 국적 : 네덜란드
 국가대표 : 49시합 14득점


 30초가 바꿔놓은 우승트로피 - 렌센브링크 이야기

 

 1970년대 네덜란드의 토탈사커는 유명할 것 같습니다. 리누스 미셸 감독이 고안한 이 전략은 거칠게 말하자면 모두가 공격하고, 모두가 수비한다는 개념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빠른 공수전환과 움직임이 필수적이겠지요. 물론 요한크루이프나 네스켄스, 루드크롤 같은 선수들이 워낙 잘했지만, 오늘 이야기 주인공 렌센브링크도 무척이나 귀중한 선수였습니다.

 

 렌센브링크는 스피드가 살아있는 드리블 돌파력이 있었고, 슈팅력도 있어서 왼쪽 측면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대표팀의 에이스 중 한 명이었으며, 그가 활약하던 벨기에리그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손꼽히던 공격수 였습니다. 혹자는 그를 두고 "렌센브링크는 요한크루이프만큼 좋은 선수였다. 단지 그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라고 치켜세우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왼쪽 윙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커리어를 살펴봅시다.

 

 DWS암스테르담에서 축구생활을 시작한 렌센브링크는 네덜란드에서 4시즌을 보낸 후, 바로 이웃나라인 벨기에 리그로 건너갑니다. 벨기에 리그에서 그는 점차 적응해 나가며, 1971년에는 명문 안더레흐트팀의 주포로 자리 잡게 됩니다. 벨기에리그에서 렌센브링크는 걸출한 인기 스타 였습니다. 10년 연속 두자리수 득점도 기록했으며, 2차례의 리그 우승과, 1차례의 득점왕, MVP도 기록합니다.

 

 이렇든 상당히 잘 나가던 렌센브링크는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벨기에에서 잘 나가는 선수였기에, 국대에서는 처음부터 주전으로 뛰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의 국대 경기도 49경기. 그렇게 길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1974년 월드컵에서 그는 후보 선수였다가, 몇 경기가 지나서야 선발 출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월드컵 결승전에는 선발 출장에 이름을 올리며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4년이 흘러서, 1978년 월드컵이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월드컵에, 요한 크루이프는 독재 군사정권에 반대하면서 불참! 네덜란드 대표팀은 에이스가 빠졌다며 저평가 되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습니다. 네덜란드에는 네스켄스가 건재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에이스 렌센브링크도 공격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렌센브링크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첫 경기부터 해트트릭 작렬!

 

 렌센브링크는 월드컵에서 5골을 넣으며, 네덜란드팀을 결승까지 올려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냅니다. PK의 명수로도 알려져 있는데, 렌센브링크는 5골 중 4골을 페널티킥으로만 넣기도 했습니다 :) 기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 대회통산 1000번째 골의 주인공도 렌센브링크 였습니다.

 

 잠시, 화제를 바꿔서, "1분"이라는 시간은 참 짧게 느껴집니다. 조금 뜬금없는 말인가요. 하하. 그럼 "30초"는 어떤가요. 더욱 짧겠지요. 그런데 렌센브링크에게는 그 30초가 잊지 못할 30초가 되었습니다. 1978년 월드컵 결승전 네덜란드 VS 아르헨티나. 승부는 팽팽하게 1-1로 접전으로 흐르고 있었고, 경기 종료 30초가 남았습니다. 롱패스의 명수 루드 크롤이 렌센브링크에게 길게 연결했고, 렌센브링크는 능숙한 드리블을 발휘하면서, 골키퍼와 1대 1 상황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결정적 슈팅!

 

 아이쿠! 그 역사적 슛은 안타깝게도 골대를 맞고 튀어나옵니다! 전후반은 그렇게 무승부로 끝났고, 연장 승부 끝에 네덜란드는 1-3으로 패하면서, 첫 우승을 간발의 차이로 놓치게 됩니다. 올드축구팬들, 특히 네덜란드 팬들은 만약 그 골이 조금만 더 골대 안쪽으로 흘러가서, 골이 되었다면, 네덜란드는 우승도 했고, 렌센브링크는 득점왕도 했고, 역사에 빛나도록 남았을텐데.. 라고 아쉬워 합니다.

 

 이것이 30초가 바꾼 우승트로피 였지요. 정작 렌센브링크 본인은 이렇게 자꾸 회자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나 봅니다. 그는 그 때 날린 슛이 (골대를 맞지 않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빗나갔다면 좋았을 꺼라 생각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렇게 아쉬움에 회자되는 것이 없을테니까요. 그 상황과 위치에서 골을 결정하기란 불가능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답니다. 뭐, 심리학에서도 언급되지만 은메달의 아쉬움은 참으로 커서, 동메달을 땄을 때보다 만족도가 더 낮다고 합니다. 준우승의 아픔이란...! 네덜란드가 월드컵 결승 때 마다, 패배하는 이 기록들도 언젠가 깨졌으면 하는 게 네덜란드 축구팬들의 바람이겠지요.

 

 렌센브링크는 클럽통산 327시합 168골을 기록했으며, FIFA100에도 선정되면서 훌륭한 선수였음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할까 합니다. 체격이 작아 보이지만, 기술이 뛰어나고, 공격 센스가 특출났던 왼쪽 날개 렌센브링크! 1976년과 1978년에 유럽최우수선수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던 공격수.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한다지만, 우리는 렌센브링크가 못다 이룬 꿈을 기억하며, 언젠가 네덜란드의 신예들이 월드컵 우승을 이뤄낼 것을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 재밌게 애독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2010. 10. 06. 초안작성.

 2020. 09. 25.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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