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축구스타열전

이탈리아의 위대한 선수, 산드로 마졸라

친절한 시북(허지수) 2010. 10. 25. 22:49

 레전드 선수를 소개하다보면, 유독 브라질, 이탈리아, 독일 등 특정 국가의 선수들이 많은 경향이 있습니다. 월드컵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나라들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일단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목표까지 열심히 달려볼 생각입니다 (웃음) 오늘 소개할 선수는 인터밀란 팬이라면, 그 이름을 들어봤을 것 같은데, 산드로 마졸라 라는 공격수 입니다! 그가 없으면 카테나치오가 완성될 수 없었지요. 축구는 0-0 을 만드는 게임은 아니니까요. 오늘은 마졸라 이야기로 떠나봅시다.

 프로필

 이름 : Alessandro "Sandro" Mazzola
 생년월일 : 1942년 11월 8일
 신장/체중 : 179cm / 66kg
 포지션 : FW, MF
 국적 : 이탈리아
 국가대표 : 70시합 22득점


 위대한 아버지를 넘어서, 위대한 이름이 되기까지 - 산드로 마졸라 이야기

 마졸라의 아버지는 매우 유명한 선수였지요. 아버지 발렌티노 마졸라는, 이른바 "위대한 토리노"로 불리는 토리노 황금기 시대의 캡틴이었습니다. 토리노는 40년대 세리에A 무대를 5연패를 차지하면서, 그 위용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40년대 중반부터 홈경기 성적이 83승 10무에 달하는 위대한 팀이었지요. 그러나 수페르가의 비극이라 불리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토리노 선수를 태운 비행기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추락해서, 탑승자가 전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토리노는 강호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30살의 아버지는 비극적 사고로 이렇게 세상을 떠나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산드로 마졸라 였지요.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아들인 산드로 마졸라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돌아간 명선수인 아버지와 매번 비교를 당해야만 했고, 그게 싫었습니다. 결국 토리노 출신임에도 마졸라는 밀라노의 인터밀란에 입단하게 됩니다. 인터밀란에서 세리에 A를 데뷔했고, 그는 이 팀에서 그야말로 뼈를 묻을 만큼 활약을 이어갑니다. 오직 인테르에서만 뛰었고 417시합 116득점을 기록, 득점왕도 한 차례 차지합니다. 아버지만큼 매서운 활약을 해나간 것이지요.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

 그리고 인테르는 60년대 그랜드 인테르로 불리는 위대한 시기를 보냅니다. 60년대 세리에A 우승 3회를 비롯해서, 특히 1964년과 1965년에 챔피언스컵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엄청난 사랑을 받습니다. 1964년 챔피언스컵 결승전 레알마드리드 전에서 마졸라는 2골을 터트리며, 3-1 승리를 이끌었고, 팀의 핵심선수로 화려한 커리어를 써내려갔습니다. 카테나치오의 기초가 세워졌다고도 불리는 60년대 유명한 인테르의 수비전술 속에서도, 마졸라는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공격에서의 한 방을 날려주는 귀중한 선수였습니다. 동갑내기 철의 캡틴 파케티(http://suparobo.kr/123)가 수비의 핵이었다면, 마졸라는 그랜드 인테르 공격의 축이었지요.

 당연히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1968년 무렵에는 아예 포지션을 플레이메이커로 변경해서, 팀을 지휘하는 역할도 잘해냅니다. 시야가 넓고, 테크닉이 뛰어난 마졸라는 존재감이 특별한 선수로도 불립니다. 안정감도 발군이고요. 당대의 천재 미드필더로 통하는 AC밀란의 지안니 리베라(http://suparobo.kr/151)와 유명한 국가대표 "플레이메이커" 경쟁에서도, 결국 웃은 것은 마졸라 였지요. 마졸라는 1968년 유로에서 우승하면서, 이탈리아에게 30년만에 빅타이틀을 안겨주었고, 1970년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뜁니다. 시간이 흘러서, 산드로 마졸라는 아버지의 위대함 만큼이나 명성을 얻고,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0년 월드컵에서도 결승에 진출하지만, 최강의 멤버들이 포진한 브라질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합니다. 준우승에 큰 공헌을 한 마졸라는 1971년 유럽최우수선수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위, 3위가 각각 토탈사커의 요한 크루이프, 천재 드리블러 조지 베스트 였지요. 그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마졸라는 이탈리아의 자랑이 될만한 선수였지요. 30대 중반인 74년 월드컵에서도 마졸라는 팀성적은 나빴다지만, 시합에서 보여준 퍼포먼스가 워낙 훌륭해서, 각 미디어에서는 베스트일레븐에 마졸라를 넣을 정도로, 매력적인 활약을 보여주었고요.

 산드로 마졸라는 정리하자면, 현역 시절 눈부실 정도로 멋진 커리어와 좋은 평가를 받아왔던 선수 중 하나 입니다. 이탈리아가 배출한 최고의 재능 중 한 명이지요. 그는, 아버지의 후광이 싫었고, 자신의 재능을 믿었고 내가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라, 축구선수 "산드로 마졸라" 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위대한 선수로 불리면서, 많은 존경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지요. 위대한 아버지를 넘어선 위대한 이름, 산드로 마졸라 이야기 였습니다. 그랜드 인테르를 이끈 명공격수이자, 유로 우승(`68)과, 월드컵 준우승(`70)을 이룩해낸 지휘관이자, 당대 이탈리아의 간판스타 였던 마졸라. 그런 빅스타의 동영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영상과 함께 오늘 이야기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마음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성원을 자주 느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 프로필사진 바레시 2세 선수들은 묻히는감이 없지않아 있는데(우리 말옹 제외) 대단한 선수네요 밀란 팬이지만 옆동네 레전드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근데 쥐세페 바레시 선수도 인테르 레전드인가요? 2010.10.26 03:11
  • 프로필사진 친절한 시북(허지수)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저는 나름대로 인테르에서 명선수로 충분히 불릴만하다고 봅니다. 국대 활약이 좀 미흡했지만요. 프랑코 바레시가 워낙에 유명한 레전드다보니... 비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당시를 살았던 인테르 팬들에게는 쥐세페 바레시는 주장도 맡았으니 인정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제가 직접 쓰기에는 자료가 다소 부족하지만요 (웃음) 입단테스트 때, 형(쥐세페)은 되는데 너는 키가 작다고 프랑코 바레시가 거부 당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하고요 :) 그 때 인테르가 프랑코 바레시까지 데려왔으면, 꽤 흥미로운 전개가 되었겠지요. 하하. 2010.10.26 21:12 신고
  • 프로필사진 Ale 마졸라가 없었다면 인테르에게 영광의 시대를 가져다 준 전술이자, 아주리축구의 근간인 카테나치오가 생겨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카테나치오의 핵심은 강력한 수비력 뿐만 아니라 기회에 났을 때 놓치지 않고 해결해주는 공격력이기도 하니까요. 카테나치오가 이기는 것을 포기한 축구가 아니라 이기기위한 축구라는 것을 전제하면 그 "한방"이야말로 카테나치오와 안티풋볼 사이의 결정적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저는 안티풋볼이라는 명칭에도 거부감이 있지만요.) 인테르나 아주리나 수비축구를 하면서 이기지 못했다면 카테나치오는 이만큼 인정받지도 못했을테고, 현 시대까지 축구전술의 양대산맥으로 존재하지도 못했겠지요.

    본문내용과는 큰 관련이 없는 댓글입니다만, 현 아주리에는 이런 믿음직한 선수가 보이질 않아 아쉬운마음에 잡답만 늘어놓고 갑니다...건필하세요.^^
    2010.11.17 22:30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