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년 만에 업데이트는 히피아! 리버풀에서 활약하던 핀란드 대표팀 선수인 - 명수비수 사미 히피아가 생각납니다. 리버풀이 지금은 영광의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오래 전 그 때... 힘들어 할 때는 히피아 같은 명수비수가 빠져버린 뒤로, 그 수비공백을 채우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수비가 탄탄하지 못하면, 그 불안감은 좀처럼 무시할 수가 없지요. 여하튼, 히피야 이야기로 가봅시다.
프로필
이름 : Sami Tuomas Hyypiä
생년월일 : 1973년 10월 7일
신장/체중 : 196m / 88kg
포지션 : DF
국적 : 핀란드
국가대표 : 105시합 5득점
리버풀 팬들은 결코 잊지 못하는 레전드 수비수 - 사미 히피아 이야기
1992년 핀란드 1부리그팀, MyPa에서 데뷔하자 마자, 히피아는 주전선수로 활약하게 되었고, 4시즌 동안 팀의 중심선수로 활약해 나갑니다. 소속팀은 3번의 준우승과 2번의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지요. 이미 1992년부터 국가대표로도 데뷔했습니다. 이윽코 1995년, 히피아의 더 큰 도전이 시작됩니다. EPL 뉴캐슬로부터 입단테스트를 받습니다. 그러나 일은 잘 되지 않았는지, 결국 네덜란드리그(=에레디비시)의 빌렘II 로 이적하게 되었지요. 처음 경험해 보는 낯선 리그인 에레디비시에서도 점차 적응을 마치더니, 순조롭게 중앙수비수로 활약할 수 있었으며, 1999년에는 소속팀 빌렘II가 에레디비시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활약을 발판 삼아서, 그의 빅무대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히피아를 영입한 것은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이었지요.
사미 히피아는 당시 리버풀 감독이었던 울리에 감독이 영입한 "최고의 선택"이라고 까지 평가받습니다. 리버풀에서 히피아는 10년 동안 인기스타이자, 간판수비수로 활약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같은 영광과 함께 했으며, 또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EPL 정상급의 수비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아니 조금 더 보태자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센터백으로까지 군림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2미터에 가까운 엄청난 키는 제공권에서 늘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고, 세트플레이 상황에서는 공격에 가담해서 헤딩으로 골문을 종종 위협했습니다. 리버풀의 견고한 수비를 책임지는 선수였으며, 또한 리더십도 뛰어나서 리버풀 캡틴을 맡기도 했습니다. 풍부한 수비경험이 받쳐주다보니,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영리하게 수비하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단점이라면 거구라서 아무래도 스피드가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겠고요.
리버풀에 함께 뛰던 - 스위스 국가대표인 헨쇼(Henchoz)와 히피아의 중앙수비는 EPL 최강으로까지 평가받았으며, 리버풀은 99-00시즌 리그최소실점을 기록하는 등, 견고한 수비를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시즌부터 대활약을 펼친 히피아는 EPL 데뷔시즌에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습니다. 핀란드 최우수선수상도 받았지요. 이후 히피아의 지위는 흔들릴 줄 몰랐습니다. 2001년에는 리버풀이 UEFA컵을 포함해서 컵대회만 3개나 우승을 차지합니다. 토너먼트에서는 안정된 수비가 필수지요! 히피아는 2001-02시즌에도 리그 준우승에 공헌하며, 유명한 수비수 퍼디난드 등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베스트일레븐에 또 다시 선정됩니다. 그야말로 EPL을 대표할 수 있는 명수비수 였습니다.
(리버풀이 빅4로 불리긴 해도... 아 요즘은 빅6 시대지요!) 리그우승은 아쉽게 차지하지 못했습니다만, 2005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기록하는 멋진 시절도 있었고, 히피아 역시 영광의 시기를 함께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1년 동안, 자그마치 핀란드 올해의선수상을 무려 8차례나 수상하였습니다. "혼자 다 해먹어라!!!(하하, 농담입니다)"
사실 실력도 좋지만 - 히피아는 덩치는 산만 한데, 독서를 좋아하며 애견과 산책을 좋아하는 부드러운 성격이랍니다. 소속팀으로부터 아주 신뢰받고 있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빅 사미"로 통하는 히피아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챔피언스 무대에서도 높은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유니폼 교환하자고 하면, 멋쟁이 신사 히피아에게 달려오는 선수도 상당했지요. 네드베드나 튀랑, 마켈렐레 등도 히피아랑 유니폼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정신적지주 같은 히피아가 2009년 리버풀을 떠나게 되자, 팬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서포터들이 얼마나 히피아를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리버풀의 홈구장 앤필드에서 행해진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관중석에 대형 SAMI 글자가 펼쳐지는 장관이 연출되었고, 제라드도 마지막 경기에서 히피아에게 캡틴 마크를 건네주면서, 선배의 마지막을 격려합니다. 히피아의 고별 눈물은 기립박수를 치던 팬들을 울리고 맙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리버풀은 2009-10시즌부터 (거의 10년만에 5위 밖으로 밀려나며)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잇따른 패배로 정말 난처한 상황까지 맞이하고 있습니다. 아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챔피언스 무대에서 활약하던 그 리버풀인데... 그래서 일부 팬들은 히피아 같은 존경받는 스타가 필요하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히피아, 그는 실로 리버풀의 기둥과도 같았지요. 기둥이 빠지자 흔들리는 리버풀을 보면 마음이 괜히 아픕니다. (토레스와 제라드 멋있잖아요! 힘내라 리버풀!)... 참, 2010년의 글입니다. 지금의 2019-20 리버풀은 명수비수 반다이에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요. 세월은 참 미래를 알 수 없어서 너무나 흥미로운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한편 국가대표로는 100경기를 넘게 소화하고 있지만, 국적이 핀란드이다 보니 큰 국제대회와는 인연이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히피아는 현역 마지막을 레버쿠젠에서 보내고 은퇴의 수순을 밟습니다. 이제 글을 정리하며, 마무리 영상을 첨부합니다. 유튜브 시대니까요. 아일랜드 누리꾼의 지적처럼,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르면) 결국 명성은 캡틴 제라드나 공격수 토레스 같은 선수들이 레전드로 많은 조명을 받겠지요. 왜냐하면 수비수들은 늘 묵묵하게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이니까요.
그러나 또 다른 팬들의 지적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히피아를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최고의 중앙수비수 중 한 명으로 계속해서 기억할 것입니다. 리버풀의 진정한 레전드로 부를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많은 응원만 받아서, 뭐라 고마움을 표현하기 힘들지만, 저는 블로거로서 꽤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도 되네요 ^^ 하하, 매번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사실... 꽤가 아니라 많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더욱 덧붙입니다!
2010. 11. 16. 초안작성.
2019. 12. 14.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