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47 지안프랑코 졸라 - 첼시의 작은 마법사

시북(허지수) 2019. 12. 21. 21:14

 

 늦은 밤에 모니터를 바라보며 눈을 감은 채, 오늘은 누구를 써볼까 고민합니다. 다행히도 포커스를 맞출 만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지안프랑코 졸라입니다. 비록 국가대표로는 같은 포지션에 로베르토 바조가 있어서, 활약할 기회가 적었다지만, 그는 정말로 축구를 기막히게 잘하던 빛나는 선수였지요. 이탈리아의 마라도나로 까지 불리던 졸라의 이야기 어서 떠나봅시다!

 

 프로필

 

 이름 : Gianfranco Zola
 생년월일 : 1966년 7월 5일
 신장/체중 : 168m / 67kg
 포지션 : FW / MF
 국적 : 이탈리아
 국가대표 : 35시합 10득점


 마법사, 매직박스 - 그야말로 특별한 플레이를 펼치던 지안프랑코 졸라 이야기

 

 1984년 졸라는 이탈리아의 4부리그의 팀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지요. 키도 작았고, 체격도 작은 10대 소년 졸라! 나름대로 하부리그에서도 성실한 태도를 갖춰서, 꾸준히 성장해 나갔습니다. 축구선수로 생활한지 5년차가 되던 시즌에, 드디어 3부리그에서 11골을 넣을 만큼, 괜찮은(!) 활약을 했고, 1989년 당시 마라도나가 뛰고 있던 세리에A의 클럽 "나폴리"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지요.

 

 마라도나와 함께 뛰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또 노력하게 되는 졸라. 특히 프리킥은 마라도나한테 직접 배웠다고 하는데, 많은 연습을 통해서, 세계 최고의 프리키커로 평가받을 만큼, 멋진 실력을 가지게 되지요. 지안프랑코 졸라는 나날이 발전해 나가는 선수였고, 마침내 90년대가 되자 이탈리아에서 알아주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90년대 나폴리와 파르마에서 활약하면서 졸라는 5시즌 연속으로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했고, 특히 94년과 95년에는 19골을 넣는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 였습니다.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요.

 

 그러나 공교롭게 같은 포지션에는 이탈리아의 전설 "로베르토 바조"가 있었지요. 졸라는 1994년 월드컵에 출장하지만, 어디까지나 후보선수 였고, 드디어 교체 출장해 그라운드에 뛰다가 심판에게 잘못 걸려서 불과 10분만에 레드카드를 받기도 했습니다. 월드컵 출장 기록은 여기서 끝나고 말았지요 (...) 유로96에서는 PK를 실축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같은 비운의 국대 커리어와 함께 1997년을 끝으로 국가대표로 더 이상 뛰지 못했습니다. 운이 없었다고 말하는 분도 있지요. 그러나 대표팀의 운은 닫혔지만, 소속팀의 운은 열리게 됩니다.

 

 1996년 지안프랑코 졸라는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서른살의 나이라서 우려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기대도 컸는데, 과연 졸라는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졸라는 그야말로 "판타지스타"였습니다. 예술적인 프리킥 실력은 물론이며, 영어권에서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부르는 1.5 열의 위치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수였습니다. 빠르게 파고들어가는 스피드, 일품 드리블, 찔러주는 패스, 어떤 것도 매우 멋지게 하는 선수 였습니다. 마라조라(Marazola) 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관중을 사로잡는 선수였습니다. 고속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프리킥은 글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냥 나중에 동영상을 보세요!

 

 30대, 그의 인생 2막이 잉글랜드에서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팬들을 열광시키는 멋진 활약과 언제나 성실한 자세로 큰 인기를 모으면서 첼시의 스타로 거듭납니다! 1997년 기자단선정 EPL 올해의선수상을 받았고, 7시즌 동안 뛰면서 컵대회와 UEFA컵위너즈컵 등의 타이틀을 따내는데 엄청난 공헌을 했습니다. 2002-03시즌 30대 중반이 훌쩍 넘었지만 그는 한계설을 불식시키면서, 14골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멋진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덕분의 그의 등번호 25번은 첼시에서 영구결번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공식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더 이상 25번을 다는 선수는 없습니다)

 

 첼시의 유명한 수비수였던 존 테리는 등번호 26번을 달고 있는 데, 그 에피소드도 재밌습니다. "내가 한 걸음만 더 가면 등번호 25번을 달았던 영웅 졸라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 에서 그렇게 26번을 달고 있다고 합니다. 앞서 레전드로 불리던 선배 지안프랑코 졸라에 대한 경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격자 졸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도 그의 전설들은 이어집니다. 현역의 막바지, 그는 가족의 미래를 생각해서 첼시를 떠나 이탈리아로 복귀하는 어려운 결단을 하며 당시 2부리그에 있던 칼리아리 팀에 이적하게 됩니다. (사르데냐 주의 주도가 칼리아리인데,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고향에 있는 클럽팀에 몸담았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졸라는 사르데냐의 마법사 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합니다) 공교롭게도 첼시는 그 이후 러시아의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가 되었습니다. 워낙 인기가 높던 졸라를 잡아달라고 팬들이 성원을 보냈고, 구단주는 거액의 수표를 칼리아리로 보냅니다. 다시 첼시로 돌아와~

 

 우리는 흔히 돈이면 다 될꺼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 중에는 큰 돈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축구선수 중에도 그런 선수들이 꽤 있습니다. 졸라는 멋진 카운터 펀치를 날리지요. (우리 고향팀) 칼리아리를 사가시면 첼시로 돌아가겠지만, 그럴꺼 아니라면 칼리아리에서 뛰겠습니다. 나 혼자 편하게 첼시에서 대접받으면서 뛰지 않겠다는 거지요. 이왕 칼리아리로 왔으니 내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성실하게 뛰고자 하는 자세는 많은 존경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액을 거절하고 2부리그에서 뜁니다. 등번호 10번을 짊어진 판타지스타 졸라는 2부리그에서 13골이나 넣으면서, 멋진 퍼포먼스를 발휘,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공헌합니다. 이듬해에도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훌륭한 테크닉을 발휘하는 등 세리에A에서 9골이나 넣었고, 이것을 마지막으로 2005년 현역 은퇴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할까 합니다. "PK보다 프리킥이 더 간단하다" 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졸라인데, 2007년 인터뷰에서 졸라는 말이 와전된 것이고, "PK를 몇 번 놓쳐서, 차라리 PK 찰 때도 앞에 선수 벽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 게 진실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그 정도로 프리킥에 자신감이 있었던 선수였지요. 그 포물선 각도는 예술 같아요 :) 39살의 나이로 현역 마지막 경기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2골을 작렬하던, 마법사 졸라. 당신의 성실한 자세와 프로다운 모습들을 사랑합니다. 오늘의 축구스타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 자, 첼시 시절의 멋진 동영상도 나와주세요~

 

 2010. 11. 19. 초안작성.

 2019. 12. 21.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