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업데이트는, 세계최고수준의 수비형 미드필더 였던, 아르헨티나 출신 페르난도 레돈도 선수의 이야기 입니다. 멋진 외모와 스타일을 자랑하던 레돈도는 왕자님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MVP 로 선정되기도 했던 그의 이야기로 한 번 빠져보아요~
프로필
이름 : 풀네임 Fernando Carlos Redondo Neri
생년월일 : 1969년 6월 6일
신장/체중 : 186cm / 75kg
포지션 : MF (수비형 미드필더)
국적 : 아르헨티나 (스페인국적 보유)
국가대표 : 29시합 1득점
주요수상 : 1999-2000시즌 챔피언스리그 MVP
왕자님(El Principe) 페르난도 레돈도 이야기
레돈도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던 세계최고클래스의 수비형 미드필더 였습니다. 큰 키와 시원한 움직임으로 왼발을 잘 살려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는 실력이 일품이었습니다. 화려하고 엘레강스한 그의 볼터치는 매끄럽고 부드러웠습니다. 기교적인 드리블로 찬스를 만들어 내는 훌륭한 찬스메이커 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몹시 거칠기도 한 격렬하고 확실한 수비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지요. 지금까지도 수비형 미드필더를 꼽을 때, 많은 이들이 최고로 치는 선수 중의 한 명이 바로 페르난도 레돈도 입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우아한 선수였습니다. 종종 부상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게 흠이라고 할까요. 허허.
레돈도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풋살을 좋아해서, 공과 아주 친하게 지냈지요. 소년 시절에 가장 동경하던 선수는 인데펜디엔테팀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였던 보치니 선수였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의 이 인데펜디엔테팀은 손꼽히는 명문팀으로서 이 팀 출신의 선수로는 캄비아소, 포를란, 가브리엘 밀리토,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이 있습니다 :) 여하튼 레돈도는 어린 시절부터 미드필더를 소망했지요.
1985년 레돈도는 15살의 나이로 데뷔하게 됩니다. 마라도나가 처음으로 뛰었던 팀인 바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팀이었지요. 그 어린 나이에도 주전선수로 활약하는 레돈도는 분명 타고난 축구선수 였습니다. 그리고 1990년 많은 오퍼 끝에 그가 선택한 곳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CD테네리페 팀이었습니다.
테네리페팀에서 몇 번 부상으로 고생하기는 했지만, 그의 재능은 이제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아직 20대 초반이었지만, 그 실력은 널리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 테네리페의 감독이었던 아르헨티나의 발다노 감독은 그를 중용하고 아꼈습니다. 지금은 테네리페가 2부리그에 소속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레돈도의 멋진 활약도 있었고 팀도 UEFA컵에 진출하기도 했었습니다. 덕분에 많은 빅클럽들도 레돈도를 눈여겨보기 시작합니다.
1994년이었습니다. 테네리페의 감독 발다노는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레돈도 역시 발다노 감독과 한솥밥을 먹게 됩니다. 바로 레돈도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이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레돈도는 팀의 중심선수로 눈부신 활약을 펼쳐나갔습니다. 6년동안 리그우승 2회를 비롯해서, 챔피언스리그도 2번이나 우승했습니다.
특히 유명한 것이 바로 1999-2000시즌 챔피언스리그 였습니다. 페르난도 레돈도는 팀의 주장이었지요. 작년 트레블에 빛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2년전 우승팀이었던 레알 마드리드가 맞붙었습니다. 정말 세기의 빅매치였습니다. 8강전 레알 마드리드는 홈에서 맨유와 비기면서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포트에서 두 번 째 경기가 열렸습니다. 당시 레알은 원정경기를 떠나서 반드시 이기고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별 것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날 경기는 좀 달랐습니다. 레돈도는 정말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판타스틱한 플레이를 보여주었습니다. 환상적인 어시스트를 창조했고, 라울이 그대로 골을 넣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앞서가던 레알의 완벽한 쐐기골이었습니다. 맨유는 후반에 맹추격을 펼치지만, 결국 홈에서 2-3 으로 패배하면서 탈락하고 맙니다. 온 세상의 레알 마드리드팬들은 이 날의 환상에 정말로 열광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4강에서 뮌헨을 물리치고, 결승에서 발렌시아를 3-0 으로 완파하면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이 시절에는 스페인 클럽팀이 3팀이나 4강에 속해 있었습니다. 당시 4강에 올라갔던 팀이 발렌시아, 바르샤, 레알마드리드, 그리고 뮌헨이었지요. 요즘은 잉글랜드 빅클럽들이 명성을 날리고 있습니다 :)
1999-2000시즌 챔피언스리그 MVP 는, 단연 주장 페르난도 레돈도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1800만 유로의 이적금으로 AC밀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잦은 부상에 시달리던 몸이 드디어 큰 이상신호를 내게 됩니다. 무릎 부상으로 경기장에 오랜 세월 나올 수 없었습니다. 재활까지 무려 2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레돈도는 부상으로 쉬는 동안, 고액 연봉을 일부러 받지 않고 반환했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AC밀란에서는 챔피언스리그와 리그우승 타이틀을 획득하게 됩니다만, 정작 레돈도는 더 이상 전성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2004년 34살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은퇴 후에는, 종종 레알 마드리드의 자선 경기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편,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정말 전설을 썼던 레돈도였지만, 국가대표로서는 큰 무대에서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실력에 비해서 많이 알려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990년부터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 활동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수비적인 전술에 반발해서 대표팀에서 빠져버립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학업을 위해서 당시 대표소집에서 사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감독과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사퇴한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감독이 바뀌자, 드디어 본격적으로 국가대표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1992년이 되어서야 데뷔전을 가졌고, 또한 1993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기대를 모으고 1994년 월드컵에도 참가하기도 했었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지요. 월드컵 4경기 출장, 이것이 레돈도의 월드컵 성적의 전부였습니다.
이후 있었던 일화는 상당히 유명합니다. 월드컵이 끝나고 취임한 신임 대표팀감독 파사렐라와 레돈도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습니다. 싸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머리스타일 문제, 파사렐라 감독은 레돈도의 장발 스타일에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는 기용법을 놓고 충돌했다는 설도 일리가 있습니다. 레돈도는 원래 보직인 중앙위치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원했고, 감독은 왼쪽 미드필더로 뛰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던 레돈도 입장에서는 파사렐라 감독이 대단히 마음에 안 들었고, 결국 당시 전성기였음에도 98년 월드컵에 출장하지 않게됩니다. 여담으로 월드컵이 끝나고서야, 머리를 싹둑 잘라버리지요. 파사렐라 감독도 물러나고, 이후에는 다시 한 번 대표팀 활동에 의욕을 보였지만, 이제는 무릎 부상으로 더 이상 활약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국가대표로서는 별다르게 활약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감독운이 없었다고 해야할지, 레돈도의 높은 프라이드가 문제였는지... 덕분에 레돈도의 이름은 아는 사람만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또 모릅니다 :) 국가대표와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있어야 많은 사람들이 전설로 기억하지요. 저 유명한 마라도나 처럼...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글을 마치면서 깔끔하고 아름다운 레돈도의 플레이영상을 유튜브에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그의 플레이를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앞으로도 레돈도를 잊을 수 없겠지요... 이로서 챔스MVP 선수는 99년부터 베컴, 레돈도, 에펜베르크, 지단까지 소개가 되었네요. 1998년부터 선정하고 있는 챔스MVP, 그 첫 번째 주인공인 브라질 호나우두도 이제 현역은퇴를 하고 세월이 벌써 많이 흘렀네요. 아무쪼록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08. 05. 26. 초안작성
2019. 12. 19.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