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정도 전에 읽었던 책으로 기억하는데, 홍세화 선생님이 쓰셨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람시의 말을 인용해서 - 세상이 바뀌어 가지 않음을 혹여 보더라도 그래서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패배감이 드는 날이 있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라는 것이지요. 좀 거창해 보이는 서론으로 시작하는데, "악역을 자처하는 선수"인 시메오네를 소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 축구장에서도 악역을 자처하는 선수가 필요하고, 조직에서도 필요하고, 사회에서도 필요하지요. 어서 이야기 출발해 봅시다.
프로필
이름 : Diego Pablo Simeone
생년월일 : 1970년 4월 28일
신장/체중 : 177cm / 70kg
포지션 : MF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106시합 11득점
시메오네와 베컴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 시메오네 이야기
소년시절부터 벨레스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하던 시메오네는, 1987년 10대 나이로 프로데뷔를 하며 주전자리를 꿰찼고, 국가대표로도 발탁될 정도로 재능있는 유망주 였습니다. 이탈리아 피사의 클럽팀 회장이 시메오네를 눈여겨 봤고, 스무살에 유럽으로 건너가지요. 세리에A의 피사팀에서 활약을 펼쳐보는가 싶었지만, 소속팀은 강등되고 말았고, 20대 초반 시메오네는 세리에B 무대도 경험합니다.
이후 시메오네는 스페인으로 건너갑니다. 세비야를 거쳐서 AT마드리드에서 활약하는데, 20대 중반부터 절정의 퍼포먼스를 발휘하면서, 팀의 핵심적인 선수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라리가 우승도 경험하였지요. 수비형 미드필더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선수가 시메오네인데, 그 높은 수비력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매우 큰 역할을 차지했습니다. 훌륭한 전술적 시야와 강인한 체력은 물론이고, 승리를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집념은 대단했지요.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그라운드의 파이터였습니다. 세트 플레이의 가담도 좋았고, 헤딩 경쟁도 치열하게 하던 선수였고요.
1998년 월드컵은 특히 유명했지요. 아르헨티나는 한 골도 내주지 않고, 3연승으로 16강에 진출했고, 잉글랜드를 만나지요. 베컴을 끈질기게 수비하던 시메오네 였고, 이에 발끈한 베컴이 보복성 태클을 날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메오네의 과장된(!) 연기! "아이고 나 죽네~" 심판은 베컴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듭니다. 그야말로 계획적인 악역을 자처한 시메오네의 영리한, 혹은 교활한 플레이 였지요. 잉글랜드는 결국 16강에서 떨어졌고, 베컴은 잉글랜드에서 엄청난 비난을 들었고, 시메오네 팬들은 "오오 시메오네, 우리를 위한 악당"이라면서 친밀감을 담아 불렀지요. (한편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네덜란드와 명승부 끝에, 베르캄프의 환상슛에 1-2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확실히 우리팀 선수라면 이만큼 믿음직한 악당도 드물겠지요. 마라도나 조차도 시메오네를 두고 대표팀 최고의 선수였다며 칭찬할 정도였지요. 2001년 아르헨티나 대표선수 사상최초로 100경기를 넘어섰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시메오네와 베컴이 역사적인 화해를 하는 명장면이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쁜 이미지도 있었고, 비판도 받았던 시메오네 였지만, 이후 그의 평가는 악역을 자처하는 선수로 인정받으며 진정한 프로선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선수생활 후반기에는 종종 수비수로도 활약하고, 또 공을 다루는 테크닉도 있으며, 스루패스도 잘하고, 득점력도 있고, 그 영리하고 냉정한 성격에 리더십까지... 여러가지로 인상적인 선수가 시메오네 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클럽팀 라치오에서 활약할 때는, 네드베드, 베론, 알메이다 등과 함께 대활약을 펼치며 세리에A 우승에도 막대하게 공헌하기도 했고요.
아마 이런 스타일의 악역을 좋아하시던 팬들도 있을 것이라 분명히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경기장에서 악역을 자처했을 뿐이고, 실제 생활은 정반대 였기 때문이지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팬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덕망이 있던 선수로 불립니다. 그 리더십을 살려서,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차분한 기념영상을 덧붙이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