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초대 월드컵 득점왕 기예르모 스타빌레

시북(허지수) 2011. 1. 25. 17:51

 축구와 비행기. 얼핏 보면 잘 안 어울리는 조합 같지만, 의외로 축구 역사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비행기에 관련한 에피소드들을 자주 만나볼 수 있습니다. 1958년 2월의 뮌헨 참사로 맨유선수를 태운 비행기가 추락해서 주전선수 여러명이 목숨을 잃었다거나, 40년대 세리에의 강호로 손꼽히던 토리노가 역시 비행기 사고로 선수들이 사망하면서, 클럽이 오랜기간 몰락한다거나... 가슴 아픈 일이 많았지요. 초대 월드컵인 1930년 무렵에는 비행기가 발달하지 못했기에, 스타빌레의 활약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르헨 국가대표냐, 유럽무대 활약이냐... 그 갈림길 말이지요. 이야기 좀 더 살펴봅시다.

 프로필

 이름 : Guillermo Stábile
 생년월일 : 1905년 1월 17일 (1966년 12월 27일 작고)
 신장 : 168cm
 포지션 : FW
 국적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 4시합 8득점


 월드컵이 낳은 스타로도 볼 수 있는 스타빌레 이야기

 월드컵 하면 갑자기 떠오르는 스타가 나타나곤 합니다. 굳이 월드컵이 아니더라도, 유로, 코파 아메리카, 아시안컵에서도 각광받는 스타가 언제라도 또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대회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큰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스타빌레 라는 선수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1930년 월드컵이 열리자, 아르헨티나는 당대 라이벌격인 20년대 강호 우루과이를 어떻게든 이기고 명예롭게 우승을 차지하고 싶었지요. 국가적인 열기도 대단히 뜨거웠습니다. 많은 아르헨티나 팬들이 월드컵이 열리는 우루과이로 건너갑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아르헨은 첫 경기부터 쉽지 않았고, 프랑스를 맞이해서 간신히 1-0 으로 승리를 따냅니다.

 2번째 경기부터, 혜성처럼 나타난 공격수가 있었으니 기예르모 스타빌레 였지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멕시코를 6-3으로 대파, 이후 칠레와의 경기에서도 2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끕니다. 준결승전 미국과의 경기에서도 또 2골을 넣으며 승리에 공헌하지요. 스타빌레는 빠른 스피드로 수비진을 돌파해 나갔다고 묘사되는데, 그래서 그에게는 침입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적진을 뚫고 나가야 하는 공격수로서는, 상당히 멋진 별명이지요. 이렇게 하여 마침내 우루과이를 결승에서 만났는데...

 결승에서도 스타빌레는 골을 넣으며, 전반까지 2-1로 앞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후반에 역전 당하며 2-4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스타빌레는 4시합 8득점이라는 놀라운 활약으로 초대 득점왕에 오릅니다. 이후 스타빌레는 유럽 진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대표로는 뛸 수 없었습니다. 비행기가 없었고, 배로 다녀야 했는데, 코파 아메리카 같은 대표팀 경기 열린다고 해서, 그 긴 거리를 배로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리하여 국가대표로 딱 4시합 뛴 선수가, 초대 월드컵 득점왕이 됩니다 :)

 유럽에서는 세리에의 제노아, 나폴리 등에서 뛰었고, 30대 시절에는 프랑스의 레드스타 파리 라는 팀에서 선수겸 감독으로 뛰었습니다. 약 10년간의 유럽생활을 마치고, 그의 선택은 고향 아르헨티나의 귀향이었지요. 그리고 이후 21년동안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습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최장기간 감독이기도 하지요. 감독으로는 코파 아메리카도 6회 우승을 차지하였고요.

 분량을 채우고자 덧붙여서, 에피소드로는 원래 스타빌레는 초대 월드컵 득점왕일 뿐만 아니라, 월드컵 해트트릭 1호로도 알려져 있었는데, 2006년 FIFA에 의해 기록이 수정됩니다. 미국선수 버트 파테나우데(Bert Patenaude)선수가 1호 해트트릭으로 수정되었지요. 따라서 스타빌레는 월드컵 해트트릭 2호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예전에는 기록의 정확성이라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상대방 자책골로 봐야 하느냐 같은 문제말이지요) 여하튼 앞으로 불변할 사실 한 가지는 4시합 8득점을 올린 스타빌레는 월드컵 초대 득점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거 축구퀴즈로 내면 난이도가 최상이 되겠고요 :)

1924년 올림픽이나, 1930년 월드컵이나 대세는 2-3-5! (흰색 가운데가 스타빌레)


 이제 잠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며 마칠까 합니다. 세상이 발전함에 따라서 이제 장거리 이동도 빨라졌지만, 여전히 유럽과 남미는 멀고, 유럽과 아시아도 멉니다. 그럴 때마다 장거리를 마다 하지 않고, 피곤을 감수하며, 대한민국을 위해서 뛰어왔던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 100경기를 이제 소화한다고 합니다. 문득,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AFC의 화려한 개인상은 거부하면서도, 대표팀을 위해서는 고생을 자처하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2011 아시안컵도 끝까지 화이팅입니다 :) 부족한 글 즐겁게 봐주시는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