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오래된 기억인데, 축구선수의 이름 가지고 몹쓸 개그를 하던 게 문득 생각납니다. 이름 가지고 장난 치는 건 안 되는 일입니다만... 예컨대, 포르투갈 루이스 피구 같은 선수를 두고서는 이름이 피구인데 왜 피구를 안 하고 축구를 하냐 라든가, 또 스페인 선수 멘디에타는 항상 맨 뒷 자리에만 앉는다 (맨뒤에타) 라는 그런 식의 언어유희 였지요. 어느 월드컵에서도 축구공 자블라니 잡으려니 힘들다 식으로, 이런 류의 개그는 계속 되고 있군요. 여하튼,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은 스페인의 미드필더 멘디에타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Gaizka Mendieta Zabala
생년월일 : 1974년 3월 27일
신장/체중 : 173cm / 69kg
포지션 : MF
국적 : 스페인
국가대표 : 40시합 8득점
전성기 시절 세계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었던 멘디에타 이야기
어린 시절 장거리 육상선수 경험이 있었던 멘디에타, 그는 축구선수로 본격적인 길을 걷게 되지만, 이 때의 경험들은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그야말로 무한의 체력을 자랑하던 선수로 평가받는 멘디에타 이니까요. 빌바오에서 태어나고, 바스크 혈통의 멘디에타는 17살 때, 2부리그에서 현역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발렌시아로 이적하게 되었지요.
발렌시아 하면, 그래도 21세기 라리가의 강자의 느낌이 사뭇 있지만, 발렌시아는 80년대 중반에 강등도 당하였고, 90년대 초 까지도 그저 1부리그 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발렌시아를 9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 강호 클럽으로 재탄생 시킨, 일등공신 중 한 명이 바로 멘디에타 였습니다!
다재다능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멘디에타 였습니다. 오른쪽 측면이 주무대 였고, 수비수도 맡았고, 윙도 맡았습니다. 놀라운 체력으로 필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명품 크로스를 올리고, 드리블, 슈팅, 프리킥까지 높은 능력을 발휘했지요. 나중에는 중앙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하게 되는데 역시나 퍼포먼스가 뛰어났습니다.
1995-96시즌 발렌시아는 마침내 리그 2위라는 대약진을 이루어 냈고, 나날이 발전해 나가던 멘디에타와 함께 발렌시아의 팀컬러도 굉장해 집니다. 탄탄한 수비에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스타일로 강팀들도 물리쳤고, 멘디에타도 캡틴을 맡아서 팀을 황금기로 이끕니다. 득점력과 스피드를 겸비한 멘디에타는 발렌시아의 핵심멤버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1999년 국가대표에 데뷔하기에 이르렀지요.
2000년과 2001년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에 출장한 발렌시아는 두 번 모두 결승전까지 진출합니다. 놀라운 발렌시아! 명문 FC바르셀로나도 물리쳤고, 사상 첫 우승이 눈앞에 보였지만, 2000년에는 레알마드리드에게, 2001년에는 바이에른뮌헨에게 안타깝게 패배했습니다. 두 번의 연속 준우승이었지요. 그럼에도 큰 무대에서 거침없는 활약과 중요한 시기마다 골을 터뜨리며 팀을 이끌었던 멘디에타는 의미 있는 상을 받았습니다. UEFA Club Football Awards 베스트 미드필더 상을 수상합니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요. 98년 지단, 99년 베컴에 이어서, 2000년과 2001년에는 멘디에타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이 상은 이후로도, 사비와 스네이더르 등이 받은바 있습니다)
비록 팀에게 영광의 챔스우승 트로피를 안기지 못했지만, 그 자신의 이름 뜻처럼 구세주(=가이스카) 멘디에타라 불릴 만한 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최고의 미드필더로 각광받던 만능선수 멘디에타를 잡으려고, 라리가 명문클럽,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가 움직이지만, 클럽의 수뇌부는 보물같은 구세주를 빼앗길 수 없었고, 국내 이적은 절대 불가라고 강경하게 나서지요.
결국 세리에A 가 움직입니다. 2001년 당시 세리에A 사상 최고 이적료라고 불리는 거의 600억에 가까운 돈을 지불한 라치오가 멘디에타를 데려온 것이지요. 당시 역대 top10 안에도 들어가는 초고액 이적이었지요. 한편,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고 맙니다. 멘디에타는 라치오에서는 적응에 문제점을 드러내며 부진했고, 환상의 플레이메이커 네드베드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라치오 팬들의 분노, 먹튀논란, 감독해임 등 각종 악재가 연속으로 터져나갑니다. 라치오에서 컨디션을 망친 이후, 멘디에타는 급격하게 내리막 곡선을 걸어갑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 멘디에타는 후보로 나오는 일이 많았습니다. 스페인이 자랑하던 재능의 슬럼프. 안타까운 일이었지요.
이후 FC바르셀로나를 거쳐서, 현역 마지막은 EPL의 미들즈브러에서 보냅니다. 미들즈브러에서는 그나마 부활하는 듯 보였으나, 2004년에 다친 이후 계속 부상으로 고생하다가, 2008년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축구 생활에 마침표를 찍지요. 한 때 최고 수준의 이적료와 퍼포먼스를 자랑하던 멘디에타 였으나, 그 눈부신 반짝임은 발렌시아 시절 이후에는 많이 아쉬웠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한 경기에 심지어 3번, 4번까지도 포지션 이동이 가능했던 다재다능한 선수 멘디에타! 90년대 중후반 발렌시아 재건의 위대한 캡틴으로 정리한다면 좋을꺼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2011. 03. 03. 초안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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