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04년4월18일/이혼하지 말라(청년설교15)/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2. 5. 19. 19:40

-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

이혼하지 말라 (말라기2:10-16)

선진국은 갈수록 이혼이 줄어드는 반면, 우리나라는 가치관의 변화와 경제문제로 갈라서는 부부가 늘어나면서 이혼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회원국 중 2위로 올라섰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02년 혼인ㆍ이혼 통계결과’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는 3.0건(쌍)으로 10년 전(1992년 1.2건)에 비해 2.5배늘었다.
이는 미국(2001년 4.0건)보다는 낮지만, 영국(2001년 2.6건), 호주(2001년2.6건) 등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이혼건수는 14만5,300건으로 전년보다 1만300건 늘었다.
하루 평균 398쌍 꼴로, 결혼하는 쌍의 절반 가까이가 이혼을 하는 셈이다. 지난해 결혼건수는 30만6,600건으로 전년에 비해 1만3,500건 줄었다. 하루 평균 840쌍 꼴이다. 30대의 결혼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여러분
오늘 저는 이혼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참 어렵다고 이야기 합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가 다방보다도 많다고 하는 시점인데도 왜 이렇게 이 나라에 부정과 불의, 그리고 환난과 억울한 일이 많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합니다

그것뿐입니까?
이들은 왜 나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합니다.
그리고는 심한 경우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저 세상으로 다시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 기독교도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명령을 지켜야됩니다.
즉 예수의 제자들은 수많은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
이혼하지 않을 의무도 지고 있습니다
뭐 어떤 분은 경우에 따라서는 이혼도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갚아주실지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성경에는 간음이외의 행위로 이혼해도 된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물론 이스라엘백성들이 이혼증서를 주고 이혼한 경우가 있다고는 나와있지만 우리 주님은 간음한
연고 이외의 이혼을 금하시고 심지어 이런 여인에게 장가드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본문의 바로 앞부분에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형제를 배신하는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언약공동체로부터 제하여 버리겠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학대하는 일을 행한다는 겁니다. 여기 보십시오.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는도다”

이교도와 결혼하는것 뿐만 아니라서 이제는 조강지처를 버리는 악을 행한다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십니다. 그래서 가련한 여인들의 눈물과 호소가 하나님앞에
상달되어 하나님의 제단을 가리운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가련한 여인들의 이런 눈물과 호소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무슨 벌을 주시는고 하니“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시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의 벌을 주신답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배할지라도
이미 그분하고는 상관이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왜 입니까? 불쌍하고 가련한 여인들의 호소가 이미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덮어버려서
우리의 간구가 아버지께 전달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라기 선지자는 주전 430년경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에서
포로로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온지 100년쯤이 흐른 시절의 선지자입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풀려나 고향땅에 와서는 우리가 포로생활을 한 것은
하나님의 법과 율례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모든 면에서 새로와 지고
바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100년이나 흐르게 되자
그만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되어서 죄악을 저지르고 궤사를 행하는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전에 그들이 망하기 전의 상태보다 더 나쁘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성전에 제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데도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지지 않느냐고 불평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회의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의 악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악 중에서도 특별히 믿지않는 이방여인과 결혼하는 것과 이혼하는 것
이 두가지의 범죄가 두드러지게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본문의 저자 말라기 선지자는 너희가 그따위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서도‘ 어찌하여 하나님이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고, 어찌하여 나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는고라고 하나님을 원망하느냐’고 질책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저는 이 두가지 죄악 가운데서도 이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우선 13절에 보시면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시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왜 제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저의 헌물을 돌아보지 아니 하십니까 라고
항의합니다

14절 중반부에 하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렇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워서 한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너를 돌아보지 않는것이니라

우리가 결혼식을 할때 많은 사람들앞에서 결혼식을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경우에 적은 사람앞에서 하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두사람만의 혼인신고만으로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식이야 어떻든 그 모든 결혼의식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증인이 되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보이지도 않고 결혼식에 간섭지 아니하시는 것 같지만
그는 우리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시며 우리의 맹세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버리지 않겠다’는 바로 그 맹세의 증인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혼한다면 하나님이 증인으로 서신 그 소중한 언약을 어기는 것이며
이것은 증인되신 하나님을 멸시하며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며 증인은 그 약속이 지켜질것을 보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파기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래놓고 하나님에게 복을 달라고 빌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그는 지금 복이 문제가 아니라 크나큰 벌, 약속을 어긴데 대한 벌과 하나님을 멸시한 신성모독의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혼의 상대방을 억울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자, 억압받는자. 억울한자.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힘있고 부유한 자들이 자기의 힘과 부를 억압받는자, 억울한자,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를 돕는데 사용하는가 지켜보시고 그들이 주어진 힘과 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행하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빼앗아서 다른 이들에게 ,
자기의 뜻을 제대로 수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청지기의 비유에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억울 하게 하는 고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드리는
제물을 받지도 않겠다고 하신다.
신자가 남을 억울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자기 사
이의 교통이 단절되도록 만드는 큰 죄악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을 억울하게 한다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만 막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마저 막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뭐 저래.........저런 예수 너나 믿으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 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
셨습니다(마 5:23,24).
여기서 원망들을만한 일은 적의나 원한같은 큰 일뿐만 아니라 단순한 의견대립까지도 포함한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시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어려서 취한 아내(본처)를 버린 까닭이라고 합니다.그들의 본처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취한 아내니, 그를 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
을 배반하는 죄악입니다.창 31:49,50; 마 19:6; 잠 2:17 참조. 그(아내)에게 "궤사를
행"- 함은, 여기서는 이혼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운 약속을 어긴단 말입니까
이는 증인으로 서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것을 뜻하는데 과연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할만큼 능력이 있는 존재입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성립시킬 영을 얼마든지 창조하시려면 창조하실 수 있었으나, 그는 처음에 일남 일녀를 지어 서로 합하여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창2:24; 마 19:4-6).곧, 그가 일남 일녀를 지으신 목적은, 그들이 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본문에 "하나"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둘이 합하여 하나
된다는 의미에서 하나이라는 뜻입니다.

부부가 서로 갈리지 않고 하나됨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일수록,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합치하는 것입니다. 일남 일녀가 한 몸을 이루는데 있어서 형식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 화합하여 일치함이 참될수록,
거기서 나는 자손이 경건하다는 의미를 우리 본문이 가르 칩니다

부부가 서로 화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자라면서
더 경건하고 더 뛰어나게 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과외다 학원이다 보낸다고 동분서주 할 필요없이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좋은 가정을 만들어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그러한 모든 노력보다도 더 크고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 라는 말씀의 의미는, 남을 학대하는 죄악을 심하게 범
하기 때문에 그 악이 마치 그의 옷을 가리우고 있는 것처럼 그의 전 인격을 그것으로
대표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혼하는 자는 그렇게 큰 학대를 그 아내에게 행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치장하려고 좋은 옷을 입습니다
요즘은 이 좋은 옷이라는 개념이 조금 달라져서 비싼 옷, 고급 브랜드의 옷이라는 뜻으로
많이 변질된 것 같은데..........

여하튼 사람들은 앞다투어 좋은 옷을 입고 자기를 뽐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난하고 약하고 억울한 자를 학대한다면 그것이 옷을 가리운답니다
예쁘게 보일려고 잘 차려입은 옷을 학대가 가리워서 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추악하고 더러운 존재로 나타내 보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행실로 옷입지 못하고 악한 행실로 우리를 나타내게 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의 제물을 헌납하시며 우리의 헌물을 받으시겠습니까?

이제 저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혼하는데는 합당하거나 아니면 합당하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배우자의 부정도 있고, 시댁과 친정이라는 두 가정간의 문제도 있고, 고부간의 갈등, 장모와 사위와의 갈등, 또 자녀문제, 경제적인 문제 등등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뚜렷한 이유가 없을때는 흔히들 성격차이라고 이혼사유를 이야기 합니다.
성적인 격차 뭐 신문에는 성격차라고 해서 마치 서로 성격이 안맞아서 이혼하는 것처럼 적어놓았지만 사실은 성적인 차이 ,아마도 성적 무능력이겠죠 이게 성격차의 대부분을 차지한하고 합니다.

좋습니다
어쨌든 이혼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이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혼의 증인이셨던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신성모독의 범죄를 짓는 일입니다
그래놓고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나에게 축복치 않으신다고 불평한다면
얼마나 웃긴 일입니까?

건전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섭리일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건전한 발전의 초석입니다
그리고 민족부흥의 근본입니다
마찬가지로 건전한 기독교 가정은 교회발전의 밑거름이요 교회교육의 근본입니다
이것은 결코 흔들려서는 안되는 기둥입니다

-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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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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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재밌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수녀님의 오랜 경험담인데, 이상하게도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일수록 인격이 나쁜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한 두 번 이런 일이 일어나는게 아닌가 봅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두어번 있었습니다. 사실상 차가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문제겠지요. 고급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도 고급이어야 근사할텐데... 그렇지 않다보니, 오히려 좋은 차가 무용지물이 되는 느낌입니다. 광고처럼 타고 다니는 인격을 대표해야 할 차가, 비쌀 수록 인격이 떨어지니,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둘째로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2011년 주요일간지 분석에 따르면 OECD 1위 라고 합니다. 충분히 납득은 갑니다. 저와 가장 친한 친구 세 명은 모두 이혼이나 별거 상황이니, 요즘에는 한부모 가정을 찾아보기도 쉬운 상황입니다. 가정을 파탄하는 것은 기독교에서는 금기시 하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학대하는 것을 금기시 한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악한 모습이 많은 터라서, 틈만 나면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괴롭히려고 합니다. 남이 잘 안 되거나, 못살게 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나 신나합니다. 그러면서도 친구가 잘 되는 것을 가장 가슴 아픈 일로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정확하게 반대로 살면 좋겠지요. 남이 잘 되면 옆에서 함께 기뻐하는 사람, 힘이 있다면 그 힘으로 남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서 돌아보는 사람, 물론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실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말은 쉬운 법이니까요.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 이라는 짧은 미국식 유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문자 대신에 전화를. 전화 대신에 만남을.] 힘들 때 달려가고, 기쁠 때 달려가고, 그런 벗과 함께 사는 인생이라면 충분히 즐겁다고 생각해 봅니다. 어째, 이혼과는 별로 관계없는 잡담이 되었는데, 제가 아직 미혼이라 그런가 봅니다. 하하. / 2012. 05.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