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04년5월9일/삼손의 결혼 또는 마노아의 기대(청년설교17)/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2. 7. 17. 15:57

- 2004년 창신교회 청년부에 계실 때의, 홍종일 목사님 설교문

삼손의 결혼 또는 마노아의 기대 (사사기13:1-16:1)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참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되는것은 너무 늦습니다. 그
래서 항상 우리는 지나간 세월을 아쉬워합니다

오늘 저는 삼손의 출생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수많은 사사들의 시대가 지나간 후에 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해서
하나님이 그들은 블레셋에 파셨다고 합니다
무려 40년간을....바로 그때 일어난 일입니다
소라땅에 미노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단지파의 사람입니다.
북쪽으로 쫓겨간 바로 그 단지파말입니다.

이 사람의 아내는 불임여성으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 여인에게 아이를 낳겠는데 그 아이는 나실인으로
살아야 할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종신 나실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실인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일시적인 나실인과 종신 나실인입니다
성경상에 종신 나실인은 본문의 삼손과 사무엘밖에 없습니다
여하튼 나실인을 잉태할 것이므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찌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찌니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나실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여기서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독주는 독한 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독주로 번역된 말은‘쉐카르’인데 이것은 취하게 하는것, 즉 맥주나 다른 곡물주나
과실주같은 알콜음료를 말하는 것입니다. 혹시 또 여러분중에 이건 독한 술이 아닌 순한술이기
때문에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은 없겠죠?

그런데 여러분
7절에 보세요“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먹지말라” 라고 하여 나실인의 규정을 지키는 주체가 아이가 아니라 어머니입니다. 즉 아이가 태에 있을동안에 아이가 아니라
네가 그렇게 지켜 행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먹게되면 아이도 강제적으로 먹는거니까 이렇게 명령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겠다고 말합니다.
만일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에게 가서 누가 당신이 아들을 낳을것이다.
이렇게만 말해도 좋아서 어쩔줄을 모를텐데 그 아이가 장차 나라를 구할 영웅이 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듣는다면 어머니의 기쁨이 어떨까요?

삼손의 어머니는 나실인을 잉태하여 많은 신경을 써서 출산준비를 했을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요즘의 우리네 어머니들이 하고 있는 태교와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음식도 가려먹고 나쁜것은 보지도 않고 좋은 생각만 하고............
왜? 좋은 자식 놓을려고. 자식 잘되라고.

뒤에 12절에 보면 다시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가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라고 묻자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라고
이야기 하면서 나실인의 규정들을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그가 다 삼가서” 부분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마치 그가 삼손인걸로 나와 있지만 원문에는 ‘그’가 아니라 ‘그녀’로 표현되어 삼손의 어머니가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즉 나실인의 규정을 어머니가 지켜야 된다는 말입니다. 임신해 있는 동안.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식을 벤 어머니는
그 아이가 나올 때까지 자기를 삼가며 자식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게 될 때까지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자기의 유익을 좇지 않고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은혜입니다.
이에 마노아와 삼손의 어머니는 여호와께 염소새끼 한마리와 소제물을 번제로 드립니다.
과연 사자의 말대로 삼손이 태어났습니다. 무럭 무럭 잘 자랍니다.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가 지켰던 규례를 이제는 삼손이 지켜야 합니다.
드디어 마하네단이란 곳에서 삼손에게 여호와의 신이 감동하십니다.
아마 이때부터 삼손이 엄청난 힘을 소유하게 된 듯합니다.

자 그럼 이제 진짜 본문으로 들아 가 볼까요?
14:1에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 블레셋 딸 중 한여자를 보고...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로 본문이 시작됩니다
기껏 전절 공들여 키운 자식이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고 한 첫 번일이 “한 여자를 보고”입니다.
참 굉장합니다. 그래 나라를 구할 사명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종신 나실인의 규례를 지켜야 할 아이가 그래 힘좀 생겼다고 바로 여자를 보다니

여기서 블레셋 딸 뒤에 ‘한 여자’라는 말이 삽입되어있지요
이것은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 여성의 성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섹시한 한 여자’정도될까요
즉 삼손은 블레셋에 놀러갔다가 엄청나게 섹시한 여자를 발견하고는 결혼하겠다고 지금 이야기 하는 겁니다
굉장하지요
이 사람 참

아버지가 말합니다. “어찌 여자가 없어서...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즉 ‘내눈에 그 여자가 좋게 보이므로’
내만 좋으면 되지 남이야 뭐라든
뭐 그런말이지요

아니 이스라엘의 사사요 종신 나실인이라는 사람이 그래 할 소립니까?
하나님께 더 열심히 가까이 가겠다고 술을 마시지 않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 않기로 서원한 사람이 그래 하나님의 정하신 율법을 어기겠다고
그리고는 그 이유가 ‘내가 좋아서’라니!
참 한심한 자입니다

아마 이때 비로소 부모들은 내가 자식을 잘못키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게도 희망을 가지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아들이 여자의 성적인면에 미쳐서 본분을 망각하다니.......
그런데 참 자식이길 부모없다고 지금 5절보니까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참 4절에 이상한 구절이 나옵니다
마치 삼손이 생각이 깊어서 계략을 꾸미는 것처럼 나와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성경의 번역이 잘못되어 벌어지는 오해입니다. 이건 좀 기니까 다음에 보기로 하고 넘어갑시다.
삼손이 딤나의 포도원에 혼자 들어갔다가 어린 사자를 만났습니다. 원문대로 하면 젊은 사자입니다.
팔팔한......그런데 바로 그 사자를 찢어버렸답니다.
그리고는 부모에게 이야기 하지않고 딤나로 내려갔습니다.그리고는 그 여자를 만나서 이야기하며
기뻐하였답니다.

8절에 보면 얼마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딤나로 가다가 자기가 이전에 죽인 사자의 시체에
벌떼와 꿀이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꿀을 먹고 부모님에게도 드립니다
이것은 나실인의 규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부정한것을 먹지말라...꿀이야 부정하지 않지만 시체에
접촉된 것이므로 부정하다 이말입니다

그런데 삼손에게 이런 케케묵은 율법따윈 전혀 효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도 율법을 어기게 만들었습니다. 단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걸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부모님에게 좋은 것을 해드려도 그게 정당한 재물이 아니면 오히려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뭐 강도짓해서 뺏은 돈으로 부모님에게 좋은 걸 해드린다면 부모님은 과연 기뻐하실까요?
딤나에 다시 간 삼손은 이제 결혼식을 올립니다. 삼손은 그 여자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스라엘로
그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잔치를 한것이 아니라 블레셋의 풍습을 따라서 딤나로 가서 잔치를 벌입니다.

삼손이 블레셋에서 아는 사람이 없으므로 삼손의 장인이 블레셋 사람 삼십명을 데리고 와서
동무를 삼게합니다.
그리고 그 동무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실컷 취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안나와있지만 10절의 잔치라는 말이 원래 마실것 음료라는 말에서 나온것이기 때문에
이 잔치가 술을 마시는 잔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술에취해 흥이난 삼손은 흥을 돋우기 위해 그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게 되는데
바로 14절의 “먹는자에게서 먹는것이 나왔고 강한자에게서 단것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건 바로 삼손이 사자를 찢어죽이고 꿀을 취한데서 비롯된 것이므로 당연히 삼일이 지나도록 아무도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흥을 돋우기위한 수수께끼가 상품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상품이 무려
베옷과 겉옷 각각 삼십벌씩입니다. 즉 일상복 삼십벌과 아주 귀한 예복 삼십벌을 상품으로 건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건 엄청난 상품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게 겉옷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기에서 지게되면 정말 큰일입니다

삼일동안 고민해도 답을 알아내지 못한 블레셋사람들은 마침내 삼손의 아내를 협박합니다.
그 답을 가르켜주지 않으면 너와 네아비집을 불살라 버리겠다
굉장하지요
그깟 수수께끼 하나 풀기위해서 살인과 방화를 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람들이라니!

이 위협에 겁을 먹은 삼손의 아내는 남편앞에서 울며불며 매답립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남편을 자극하면서...........마침내 견디다 못한 삼손이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답을 이야기하자 아내는 그걸 동족들에게 고해서 결국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옷 육십벌을주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삼손은 부자가 아닙니다. 혼자서 옷 육십벌을 마련하는 방법이 또 굉장합니다

삼손은 자기의 아내에 대한 큰 불만과 원망의 말을 남기고는 아스글론이라는 블레셋의 도시로 가서 그곳 사람 삼십명을 죽이고는 그 옷을 빼앗아 내기에 이긴 사람들에게 주고는 혼자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삼손이 죽인 삼십명은 아무 죄도 없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원문성경에는 19절 “쳐죽이고 노략하여”뒤에 목적어 ‘그들의 전리품을’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즉 그 사람들 역시 남의 것을 빼앗아서 걸치고 있었다 이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과 응보라고나 할까요.

여하튼 옷을 준 삼손은 혼자 가버렸고 남은 아내는 그때 잔치에 참여했던 삼십명중의 한 사람에게 준바 됩니다.
부모의 말을 어기고 하나님의 율례까지 어기고 단지 육신의 정욕만을 좇아 행했던 결혼은 엄청난 결과를 야기하고 끝이 난것 같습니다.
아내도 뺏기고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되고...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몇 달 후에 삼손은 아마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15장1절에 보면 “삼손이 염소새끼를 가지고 그 아내에게로 찾아가서”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블레셋의 여자들은 결혼해도 남자집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의 집에 그대로 살게되므로 예전의 그 집으로 아내를 만나러간 삼손이 무심코 침실로 아내를 만나러 들어가려고 하자 장인이 막습니다
이미 네 아내는 다른 이에게 주었다
기가차지요

그런데 다음말이 더 기가찹니다
그 동생이 더 아름다우니 동생을 취하라
글쎄 이거 좋은 일입니까? 아니면 나쁜 일입니까?
뭐 동생이 진짜로 더 아름다운지 아니며 단순히 장인의 화술인지 모르지만 삼손으로서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입니다

분노한 삼손은 쟈칼300마리를 잡아서는 꼬리에 불을 붙여서 곡식을 사르게 합니다
놀란 블레셋 사람들이 이 연유를 알고는 그 여인과 그 아비를 불살라버립니다
정말 처음에 협박하던대로 해버린 것입니다.
불에 타서 죽지 않기위해 남편을 배반했는데 결국 그 일로 인하여 불에 타죽다니!
삼손 때문에 이 여자도 그 집도 비참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자기네에게 협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패악을 저지른 것을 보면
아마 블레셋 사람들 역시 처음부터 자기네의 식민지백성하고 결혼을 하려는 사람에게 반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만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삼손의 철없는 행동으로 마침내 삼손은 자기의 배신한 아내와 장인가족까지 불사르게 만든 큰 일을 일으킵니다
당연히 블레셋의 몇 개 마을의 곡식까지 몽땅 불태우고........
그러자 삼손은 이제 아내의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살인방화에 관련되었던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학살해버리고 에담 바위로 도망을 가버립니다

이제는 죽이고 죽는 피의 역사가 마침내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블레셋의 군사 일천명이 유다 지경으로 삼손을 잡으러 갑니다.
이에 놀란 유다사람들은 블레셋군을 대신해서 삼천명의 사람들을 보내서 삼손을 잡으러 보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네들의 사사를 잡아서 블레셋 원수들에게 내어주는 유다사람들도 제정신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족들에게 순순히 잡힌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도착하자마자 결박된 줄을 끊고는 나귀의 턱뼈로 일천명의 블레셋 군사들을 죽여버립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사사로 인정받아서 이십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16장1절에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로 다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참 지독한 호색한인것 같습니다
사사의 체통도 사명도 버리고 여자도 꼭 블레셋 여자만 밝힙니다. 결국 삼손은 여자 때문에 죽습니다.

삼손의 정욕을 좇은 잘못된 결정이 학살과 살육으로 변해버립니다.
저는 이때 삼손의 부모들의 마음은 어땟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삼손의 처갓집식구들의 비참한 운명도 생각해 봅니다
솔직히 부모들이 자식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식들의 잘못으로 너무 많은 희생을 겪는게 부모들입니다

그렇게도 공들여서 임신상태부터 조심하며 기대하고 키운 아들은 단순히 정욕만을 좇아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장차 나라를 구할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태어난 아들은 나라를 구하려는 목적보다는 자기의 여자를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죽입니다.
덕분에 블레셋도 피해를 입기는 했겠지만 원래의 목적은 단순한 정욕의 만족뿐입니다.
한마디로 개망나니..........

그렇습니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여자에 미쳐 날뛰다가 크게 혼이 나고서도 계속 여자를 밝히다가 결국 여자 때문에 죽는 아들은 부모들에게는 큰 아픔이요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이건 아들이 아니라 원수였을까요?
대게 이럴때는 원수라고 발음하지 않고 웬수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는 미움과 한탄뿐만아니라 사랑과 정이 배여있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나는 과연 부모님에게 무엇인지를 한번 돌이켜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부모님은 그래도 나를 사랑하신다는걸

- 홍종일 목사 (現 정관영암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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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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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아래부터는 시북군의 이야기 입니다.)

어버이주일에 좋은 이야기도 많은데, 왜 하필 삼손이야기를 하셨던걸까?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이른바 "해서는 안된다" 라는 교훈이기 때문이겠지요. 최근에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로 화제가 되었는데,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일까요? 공부 좀 해라? 씻어라? 밥먹어라? 아닙니다.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안돼" 라고 합니다. 뭐만 하면, "안돼"라고 하는 엄마. 생각해보면 애정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요.

글쎄요. 요즘 아이들이 좀 더 심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는 아이들을 종종 봅니다. 영향력이 있는 가까운 사람이 옆에서 "안돼" 라고 계속해서 말해줘야 하는데, 가족들은 생계로 바빠 아이를 뭐 볼 시간도 자주 없다보니,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를 버립니다. "좋지 않은 습관들이 이렇게 쌓여가다보면..." 결국 그 사람은 조금씩 나빠져 가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박경철 선생님의 그 어록을 참 좋아합니다. (인간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 보다는, 우선 좋지 않는 습관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 딴에는 영웅이고, 힘도 세고, 거침 없는 남자였지요. 하지만, 그는 좋지 않은 습관을 이기지 못해서, 결국 점점 파멸로 향해갑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의 정욕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제대로 한 나라를 이끌 수는 없는 법이지요.

본문에서는 여자에 눈이 먼 삼손이 되겠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를 우스운 옛날 이야기로 생각하기 보다는, 오늘을 사는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부모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합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우리가 지금 서 있기까지,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헌신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네요.

본디 기독교에서는 십계명이 있고, 인간에 대해서 지켜야 할 계명 중에 처음으로 나오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함부로 거짓말을 일삼고, 도둑질과 살인을 할 리는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다른사람을 공경하고, 자신을 공경하는 태도, 즉, 삶과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라고 생각해 보며 짧은 코멘트 마칩니다. / 2012. 07.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