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누리교회

2012년10월7일/누가 준 것이냐(호세아2:1-23)/홍종일목사

시북(허지수) 2012. 10. 25. 18:13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10월 7일 주일 예배

누가 준 것이냐? (호세아2:1-23)

제가 서울인근에서 산기도하러 가는 곳 중에 동두천의 소요산이 있습니다. 산은 작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지세가 험하기 때문에 제가 참 좋아하는 곳입니다. 20세기초 왜군에 대항해서 의병들이 진을 쳤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소요산 중에서도 저는 백운대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데 , 백운대로 바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백련암입니다. 사실 소요산 도립공원의 입장료는 2600원인데 그중에서 1600원이 백련암에 지불하는 돈입니다. 한국의 국립공원들도 이러한 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공원입장료의 상당부분이 절에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지불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이러한 관행을 철폐한다고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제가 미국에 갔다가 귀국한 후에는 가본적이 없어서요. 그때는 절의 내부를 구경하지 않는다고해도 반드시 문화재 관람료를 내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입장료에 이 문화재관람료가 포함되어 징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소요산 백운대로 기도하러가면 저는 절에다가 1600원씩 시주를 하게되는 꼴입니다. 목사가 산에 하나님께 기도하러 가면서 절에다 시주를 하는 셈이 되는 겁니다. 심히 불합리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 백련암은  큰 절도 아니고  한 개의 암자일 뿐인데도 일주문이 당당하게 서있습니다.

소요산 백련암이라고 쓰여진 현판과 산문이 자못 큰절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요산의 입장료에서 많은 돈이 절의 수입이 되는 형편인데요. 그런데 어느날 이 백련암의 마당에서 기부금을 받는 곳이 생겼습니다. 그곳에는 백련암의 지붕을 구리기와로 바꾸는 불사를 벌이는데 , 여기에 시주를 하면 시주한 사람의 이름을 구리 기와에 새겨주고 시주한 사람의 소원을 붓으로 기와 위에 써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 얼마 후에 가니까 시주를 그만받는다는 공고가 붙어있었습니다. 뭐 불자님들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나 뭐라나... 그리고 대신에 이전까지 한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서있던 깡통 매표소가 없어지고 절의 산문보다 휠씬 큰 매표소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확실하게 돈을 걷기위해 도로를 막아서는 거대한 기와로 된 누각같은 매표소가 서있었고 주변 공사로 어지러운 상태였습니다.

이 절의 구리기와는 누가 준 돈으로 한겁니까? 누가 준 것입니까?

지난 주는 추석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추석이 좋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 성도들이 추석명절을 잘 보낼수 있을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제사입니다.

차례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집단적 사탄경배

한날 한시에 한민족이 집단적으로 자기에게 절하는 자기의 충실한 자녀들을 보고  한반도의 남쪽에서 득의의 웃음을 웃고 있는 사탄의 기뻐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북쪽이야 공산주의라서 이런거 자체가 없겠죠?

안믿는 사람들은 제사가 조상숭배의 미풍양속이지 결코 우상숭배나 미신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인구센서스의 통계상 한국민의 절반 가량이 무신론자입니다. 무신론자의 비율이 공산 국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습니다. 그런데 신을 안믿는다는 한국민들이 제사는 지독히도 정성스럽게 지냅니다. 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귀신의 존재를 믿고 이들에게 복받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모순입니다. 왜냐면 이들은 제사를 단순한 조상을 기리는 미풍양속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제사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사가 왜 미신이냐고요? 왜 종교적인 행위냐고요?

제사는 처음 사당에서 신위를 끄집어 내는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때 다른 이들은 땅에 엎드려서 하늘에 신이 지상에 강림하기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의식이 끝나면 신이 향불의 연기를 타고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모든 의식을 끝냅니다. 그런데도 이게 종교의식이 아닙니까?

제가 말씀드렸죠? 추석은 세계적인 명절은 아닙니다. 한국의 남부,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극히 일부가 지킵니다. 그렇다면 한국 귀신들만 남들보다 덕을 봅니다. 그래요?

제사 의식 중에 ‘헌다’라고 있습니다. 차를 올린다. 그런데요 실제로는 숭늉에다 밥을 말아서 올려 놓습니다. 이게 왜 그런고 하니 옛날 조선에서 차는 엄청나게 비싼 귀물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은 먹어 보지도 못한 차를 왜 귀신에게 올립니까? 귀신도 생전에 먹어 보지 못해서 씁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헌다가 있을까요?

이게 ‘주자’ 때문입니다. 주자는 차를 무지 무지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중국복건성 무이산에서 차를 마시면서 제자를 가르쳤거든요. 우리의 제사는 주자가례를 본딴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사람 집안의 예식이니까 자기 식대로 ‘헌다’로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네 삶의 방식하고는 전혀 맞지도 않습니다.

좀 웃기는게 귀신들이 밥먹는 거 사람들이 보면 창피하다고 불을 끄고 문을 닫아 둡니다. 아니면 병풍으로 가려두던지. 귀신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자손들 앞에서 밥먹는게 창피할까요? 하하........

제사 지낼 때 ‘고시례’를 합니다. 고시례가 뭔지는 아시지요? 그런데요 정작 제사하고 고시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제사가 유교라면 고시례는 글쎄 단군교, 대종교, 동학 뭐 이런 겁니다. 불켜는 방법을 발견한 고조선의 고시례라는 농사 대신의 미덕을 기리는 행위거든요. 제사하고 상관없이. 불을 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 주어서 우리가 불로 음식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그러므로 제사행위는) 이건 뭐 앞뒤도 안맞고.......

추석때의 제사를 ‘차례’라고 하잖아요. 왜 차례겠습니까? 차를 드리는 의식이거든요. 조선시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는 극소수의 부자 양반들 말고는 마셔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서민들하고도 전혀 안맞는 얘깁니다.

사실 여러분이 잘 느끼지는 못하지만 지금 우리는 영적인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영적 전투. 사탄과의 영적인 전투 말입니다.

호세아 당시의 이스라엘이 바알이라는 이름의 사탄과 영적전투를 벌였다면 오늘날의 한반도는 조상신, 귀신이라는 이름의 사탄과 영적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물론 평소에는 우리는 ‘맘몬’이라는 돈신과 영적 전투를 벌입니다만.

사실 이스라엘의 모습이나 우리네 모습이나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마을마다 입구에 두 개의 나무 기둥에 바알과 아세라상을 새겨두었습니다. 우리네의 천하 대장군과 지하 여장군하고 똑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에 바알이나 아세라를 숭배하는 산당이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네 마을의 서낭당하고 똑같은......

이런 식으로 보면 호세아서에 나온 이 말씀은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치열한 영적인 전쟁 중에 이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추석날과 설날에 단체로 제사를  지내게되면 그것은 당연히 사탄에게는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조상들을 제사지낸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탄의 졸개들인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이고 , 그것은 나아가서는 사탄 자신에게 제사, 즉 엎드려 경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즉 우리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모티콘입니다. 그런데 작은 하나님의 형상들이 자기에게 집단적으로 절하는 것을 보는 사탄의 의기양양한 득의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맞습니다.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죽자말자 바로 둘 중의 한군데로 가야만 합니다. 불교에서도 마찬가지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민담에도 사람이 죽게 되면 저승사자가 와서 그를 데리고 황천을 건너갑니다. 일단 한번 건너가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않고 이승에 있는 경우가 전설의 고향같은데 보면 나옵니다. 뭐 원한이 너무 맺혀서 저승에 못간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요 그런 이야기의 끝은 보통 원귀의 원한이 풀려서 원한을 풀어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고는 저승으로 가는 걸로 끝이 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그 윗대 조상들의 귀신이 제삿밥을 얻어먹기 위해 이승에서 어정거리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는 저승에 가 있다가 제삿날 제삿밥을 얻어먹기 위해 이승으로 올수는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천국과 지옥에 흩어져있는 한국출신의 영혼들만 따로 모아서 추석과 설날에 단체로 이 세상으로 외박을 허락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면 참 불공평할 것 같습니다. 공평을 원칙으로 하는 염라부의 심판에도 어긋나는 일이지요.

누구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누구는 한국사람이라고 일년에 이틀 삼일씩 이승으로 외출증을 끊어서 휴가를 나온다면 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 말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말해도 좀 웃긴데 여러분들은 웃기지 않습니까? 저승이 군대도 아닌데 휴가증도 있고 외출증도 있고........

그럼 왜 전세계에서 다른 나라사람들은 그렇게 우리나라처럼 열심히 제사를 지내지 않을까요? 제사만 지내면 아무리 죄를 지어서 지옥으로 가도 일년에 이틀 삼일정도는 휴가를 얻을 수 있는데....... 만일 전세계 사람들이 다 틀렸고 우리만 맞다면 우리의 추석이나 설, 그리고 제사를 전세계로 수출해야 됩니다. 전 세계의 영혼들이 같이 잘살아야 되니까요.

만일 저승과 이승을 필요에 의해 왔다갔다 한다면, 그렇다면 그야말로 그 영혼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좌지우지하는 전지전능의 신이겠지요. 그러면 그 조상신들이 보호하는 모든 우리네 백성들은 다 잘살고, 좋은 대학가고,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달린 추석차례기사에 나오는 제사에 관한 댓글에 제사를 폐지하자느니 제사가 미신이라느니 제사는 남의 나라 풍습이라느니 하는 글이 많이 보여서 그래도 다행입니다. 제가 처음 이러한 일을 주장할때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는데 이제는 그래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저녁뉴스에서 추석차례후 음식 때문에 부부싸움 때문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는 보도를 한 후에 앵커가 “차라리 그럴거면 제사를 없애는게 좋겠다” “제사 음식은 너무 비싸니까 다른 음식을 해라”는 멘트가 나왔다는건 그만큼 반 제사파의 세력이 커진 것 같아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사실 제사의 음식은 주자가례에 정해진 것으로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마음대로 바꾼다는 것은 이미 제사에 대한 신성불가침의 절대 영역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거거든요.

구한말 갑오경장(1894년)으로 반상의 차별이 철폐되어 양반만 드리던 제사를 모든 사람들이 드리기 시작했는데 복은 커녕 나라가 멸망하는 참변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전까지는 그래도 소수만 드렸는데 갑자기 거족적으로 부산에서 의주까지 조선팔도의 모든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자 바로 우리나라가 망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일전에 신문에서 18세기에 들어 족보가 대량으로 위조되어서 가짜 양반이 양산되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족보를 위조할 정도되면 돈이 있는 측입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루벌어 하루먹기도 힘든데 무슨 양반에 족보타령을 할 수있겠습니까? 그래서 법제상으로 양반과 상민이 차별이 없어지자 양반인양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로 우리나라의 제사가 확산된 속도는 가짜 양반들이 늘어나는 속도와 맞물리고 있습니다.

기실 제사는 고려말 주자를 신봉하는 안향이란 선비가 당시 원나라에서 유행하던 주자학을 도입하면서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불교를 배경으로 하는 고려왕조에 대항하기 위해 유교를 의도적으로 퍼지게 하려고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전혀 생소한 주자가례를 수입한 것입니다.

‘주자가례’는 문자 그대로 주자라는 사람의 집에서 하는 예식을 말합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고 고려왕조에 대한 반역을 위한 음모의 일환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제사는 사대주의적인 발상과 반역의 음모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도입되었습니다. 앞에서는 군자를 논하고 뒤에서는 뒤통수 칠 음모를 꾀하는 것이지요. 유교가 보면 군자는 당당해야 된다느니 임금에게 충성해야 된다느니 하고 말하지만 결국 이 사람들이 유교를 받아 들인 결정적인 계기가 고려조에 반항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사실 주자학은 군주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반역은 유교의 가르침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제사는 정권을 찬탈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욕심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상을 숭배하는 미풍양속이 뿌리깊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사대주의적 뿌리의 부끄러운 역사와 우리의 무지가 빚은 결과일 뿐입니다. 제사는 주자가례가 도입되면서 일부 사대부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양반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착각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 제사가 우리민족에게 광범위하게 퍼진 미풍양속이라고 여기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가 전 민족에게 퍼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민족의 멸망을 앞두던 19세기 중반이후, 보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조선이 멸망하기 직전인 19세기 말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부 사대부들 사이에서만 전해져 내려왔고 그것이 후대로 오면서 점점 퍼지게 되었지만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민들까지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왜냐면 상민들은 아예 제례의 대상에서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사에 관해서 살펴보기 위해 ‘사례편람’이니 하는 책과 논문들을 좀 찾아봤는데 제사를 지낼 때의 복색에서 상민의 복색에 관해서는 아예 나와있지도 않았고 나와 있는 것은 양반 중에서 벼슬의 높낮이에 대해서만 나와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무슨 벼슬까지는 어떤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내고 벼슬이 없는 진사는 어떤 옷을 입고, 아직 등과하기 전의 백두, 즉 양반 중에서 벼슬이 없는 사람은 어떤 옷을 입어라는 정도지 상민들에 관해서는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양반이라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집안의 뼈대를 자랑할 수 있는 두 가지의  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양반은 족보와 제사로 자기네들의 신분적 우위를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상민들에게 제사는 이제까지 자기들이 감히 드리지 못했던 양반들의 전유물로 자기들도 시행하면서 신분상승의 자기 만족감을 주었던 것이고 ,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어 양반이 법제상으로 없어지자 재빨리 자신들도 제사를 지내면서 양반인양 기분을 낸 것입니다.

조선 후기 들어오면 사실 나라에 가짜 양반들이 엄청나게 늘어 납니다. 왜냐면 양반이 아니면 세금과 부역 때문에 살아 남을 수가 없어서지요. 그래서 몰래 몰래 족보를 사서 양반행세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반상의 차별이 철폐가 된 것을 계기로 공공연하게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양반들만의 전유물인데 이를 규제할 양반이 없어지니까 너도 나도 양반인양 하려고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면 양반이 있을 때는 양반의 위세에 눌려서 감히 상민들이 제사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리돌림을 당한다고 합니까?

이렇게 놓고 본다면 글쎄요, 제사니 차례니 하는 것,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것은 민족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라 양반들의 신분과시를 위한 음성적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이 됩니다. 심지어 왕실 제사의 방식을 놓고 조정의 대신들이 당파로 나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왕왕 벌어집니다. 이는 양반들이 얼마나 쓸데없는것에 목숨을 거는 황당한 사람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제사는 민족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라 단순히 귀신들을 위하는, 그래서 사탄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다름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추석 차례도 이것의 연장 선상에 있습니다. 애초에 추석이 생긴 것은 달신을 섬기는 제사에서 유래합니다. 설은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에서 유래한 것이고요. 그래서 설을 중국에서는 춘절, 즉 봄의 계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후대에 오면서 중국에서는 중추절 즉 추석에 달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의미는 없어지고 달을 구경하는 것으로 성격이 변화합니다. 일본에는 음력을 모두 양력으로 변환시켰기 때문에 양력 815는 패망기념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일이 바로 우상숭배아닙니까?

제사는 신위라는 형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신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나는 절한다, 네가 어쩔건데........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런데 추석날 전국이 우상숭배로 골이 아플 지경이 된다면 과연 우리의 영성이 어찌되겠습니까? 

5절에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여기서 행음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간음은 주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일을 행했다’는 이 표현은 누구 누구할 것 없이 다같이 부끄러운 일을 담대히 실천에 옮겨 행동한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로 이러한 집단적 영적 행음이 이제 버젓이 벌어질 것입니다. 누구 누구 할 것없이 다 하니까 전혀 여기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걸 하지 않으면 놀림이 되거나 말거리가 됩니다.

이런 제사나 차례뿐만 아닙니다. 국가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것이 고사라는 것입니다.

가령 지방자치단체의 장인 시장이나 군수, 지사들이 무슨 무슨 축제에서 초헌관이 되어서 제사를 지내고, 고사를 지낼때 절을 하고 , 경축한다면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게하고 , 또 무당의 굿을 무슨 무형문화재로 만들어서 나라에서 이들에게 돈을 주고 보호하고 장려하는 일을 우리는 지금껏 계속하고 있습니다. 무형문화재가 되면 제자에게도 돈을 주는데 나라에서 세금으로 무당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까지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몇 년전에는 ‘왕꽃선녀님’이라고 국영방송의 일일연속극의 주인공으로 무당을 등장시킨 드라마까지 나왔습니다. 정말 갈데까지 간거죠. 불교, 제사, 국정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눈에 제대로된 곳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안 망하고 이만큼이라도 사는 걸 보면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차례, 성묘, 제사, 이런 것들은 민족적으로 내려오는 고유의 미풍양속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이 되기 때문에 더 없이 아름다운 것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무덤에 난 풀을 깎아 내는 벌초를 하지 말란 말이 아닙니다. 성묘
 제사 얘기를 하니까 준성이란 친구가 생각납니다. 하하, 제 친구는 아니고 제가 교육전도사로 있을 때 그 교회 중고등부 학생회장이었던 멋진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여러 곳에서 설교때 이 청년의 예화를 했었는데 당분간은 생략해야 되게 생겼습니다. 그 청년의 신변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뭔고 하니 우리가 정신없이 차린 제사음식이 무슨 돈으로 장만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놀랍게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까

호세아2:8절에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기가 찹니다. 추석은 원래는 달신에게 감사하는 절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추석은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수확의 기쁨을 즐기는 명절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호세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이 성경구절의 말씀과 지금의 우리네 사정과 그렇게 상황이 똑 같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마치 바알이 준걸로 착각해서 사람들이 바알에게 제사를 드린다 뭐다 하며 난리를 피우는 꼴이 역겨워서 하나님은 9절에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내것이다. 그래도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더니만 너희들은 그것을 가지고 바알을 섬기며 스스로를 바알의 자녀라 하는구나!

하나님이 왜 그 많은 것들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의 아내이자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부양하는 부양의 의무를 다하신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가장이 하나님이 아니고 사탄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감사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0절에 “내가 그 수치를 드러내리니 저를 내손에서 건져낼자가 없느니라”

귀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고,  사탄을 섬긴 그 영적인 간음죄, 바로 그 수치를 드러내실 것인데 누구 앞에서 드러내십니까? 그 귀신, 그 우상, 그 사탄 앞에서 드러내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섬기는 너의 백성이 나에게 이렇게 징계를 받고 있다. 그러니 네가 힘이 있다면 어디 한번 나의 분노로부터 이 백성을 건져보아라.

조상신이 우리를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건져낼 수 있습니까? 부처가, 천지신명이 우리를 하나님의 분노로부터 건져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대적으로 누가 설 수 있습니까?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심이 깊기 때문에 질투하심도 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사탄에게 절하며 그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결코 그냥 보시지를 못하십니다. 단지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위해서 오래 참으실뿐. 그가 일단 우리를 향하여 진노의 채찍을 드시면 아무도 그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가 없습니다.

우상숭배를 제일 싫어하시는 질투의 하나님께서 주신 돈을 가지고 엉뚱한 귀신을 섬긴다고 난리를 친다면 도대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또한 그런 일은 결국은 사탄만 좋은 일을 시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중에서 설마 하나님이 귀신섬기라고 돈을 주셨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안계시겠지요.

우리가 계속해서 귀신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자기가 주신 모든 재물을 다 거두어 가실 것이며 그래도 우리가 귀신을 계속해서 섬긴다면 우리의 몸을 치실 것이며 우리의 지혜를 어둡게 하셔서 삼사대까지 귀신을 섬긴 죄값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이렇게 한탄할 것입니다

7절에‘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제가 언젠가도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나라가 IMF위기를 맞기 전에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 후보들이 유세를 하는 도중에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 모두 모였습니다. 그곳에 통일대불이라고 하는 동양 최대의 석불을 조성하고 이것을 기념하는 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대통령 후보라고 나선 사람은 모두 가서 축사를 하는가 하면 합장을 하며 중들 앞에서 불자들 앞에서 꼬리를 쳐대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의 장로라고 하는 후보도 가서 합장을 해댔으니 어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또 97년도에 설악산 신흥사에서도 통일대불을 만들었는데, 팔공산 동화사의 것이 서있는 석불이라면, 이건 앉아있는 청동불입니다. 이 청동불을 만드는데 돈이 얼마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08톤의 청동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돈을 그런 식으로 써대니까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대한민국 건국 후 최초의 경제신탁을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지 않습니까. 불교의 입장에서야 민족의 국운이 융성해 져서 통일을 이루게 해 달라고 통일대불을 만들었는데 국운 융성과 통일은커녕 나라의 부도와 수많은 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요.

게다가 넘쳐나는 돈으로 금은동철석목의 각종 부처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공원의 입장료를 강제로 징수하여 많은 부분을 절에 주는 이런 나라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절들은 돈이 넘쳐나서 구리기와를 올린다. 청자기와를 올린다하고, 교회는 오히려 피폐하여 목사들이 흩어져 생업을 도모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이 과연 무엇때문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그러면 교회는? 이렇게 묻습니다. 실제로 교회의 90%는 다 영세하고 목사가 생활을 걱정할 정도입니다. 각 노회에서 재정적으로 자립하는 교회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도대체가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사랑하실 구석이 있어야 복을 받을 것 아닙니까

그래도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성도들, 한줌의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의 손길을 늦추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판에 결정적으로 일년에 두 번씩 민족적 집단 우상숭배가 행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상에게 절하고 그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면 그것은 곧 마귀에게 절을하고 마귀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마귀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 신민으로 그 자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솔직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고귀한 인간들이 마귀에게 절하는 것은 영적인 눈으로 봤을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는 일이고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일단 한번 우리가 마귀에게 머리를 숙인다면 마귀는 우리를 영원히 떠날 수 없도록 속박하려 할 것입니다.

추석때 식구들이 모여 앉아 서로서로 정을 나누며 하나님이 주신 복에 감사하며 일상에 지친 삶가운데서 휴식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한국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과 과도한 경쟁으로 힘든 삶을 살아 갑니다. 그러니 추석연휴는 이들에게 얼마나 달콤한 휴가입니까? 음식도 많이 하세요. 그러나 제사음식으로 차리지는 마세요. 괜히 제사음식에 안들어가면 안되는 과일과 고기는 상인들이 엄청나게 바가지를 씌울테니까요.

안 믿는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얼마나 이 추석이 보람될까요? 수백년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마음껏 기뻐하고 자랑하세요. 그러나 거기서 그치십시오. 뿌듯하면 그에 걸맞게 멋지게 살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제발 그러한 죄. 마귀의 종에게 절하는 죄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승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서로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앙순결을 꼭 지킬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여러분을 믿습니다

만일 그러지 않다면

11절과 13절에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바알들을 섬긴 시일을 따라 내가 저에게 벌을 주리라”

범죄한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기쁨의 날들에 참여할 자격이 없어지겠고 하나님은 이 날들을 오히려 애통의 날로 정하실 것입니다.

바알을 섬긴 날 수 만큼 해신을 섬겨서 설이 생기고 달신을 섬겨서 추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조상신을 섬기는 제사를 지내는 날이 되었습니다. 좋습니다. 어쨌든 추석은 이제 우리 민족에게 최대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이명절의 성격을 한번 바꾸어 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조상도 모르고 애비 애미도 없는 패륜아! 다른신, 다른 것은 전혀 귀 기울이지도 않고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개독교인

좋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우리가 지금의 명절 풍습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땅의 이방인으로 남아있어야 될 것이며, 일년에 두 번씩 사탄이 승리하는 축제의 날에 참여하는 배신자나 방관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예 내가 너희의 명절과 기쁨과 안식을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이미 우리의 많은 명절은 없어 졌습니다. 월삭도 없어 졌습니다. 이제 겨우 두 개의 명절만이 남았습니다. 이것마저 폐지되지 않게 잘합시다.

그렇게 되기 전에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 성도들은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민족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영적인 전투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민족최대의 명절이자 한반도 최대의 영적전투!

이 명절에서 기쁨을 맛보시고 푹 쉬시되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래부터는 참고자료 입니다. ※

도암(陶庵) 이재(李縡, 1678~1746)는 상례(喪禮)에 관례(冠禮)와 혼례(婚禮)를 덧붙여 『四禮便覽』을 서술하였고, 이에 주석을 추가한 『增補四禮便覽』이 지송욱과 황필수에 의해 1900년에  발간되었는데 이 책은 판본을 거듭하면서 현재까지 많은 이들이 참고하는 중요한 예서이다.

金集(1574~1656)이 편집한 『疑禮問解』에 나와 있는 것과 동일하게 아버지 제사의 경우 주인과 형제들은 검푸른 비단으로 만든 두건과 검푸른 베로 만든 적삼, 베로 싼 각이 진 대를 착용하였고, 할아버지 이상의 제사에는 검푸른 비단으로 만든 적삼을, 방계친척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적삼을 입었다.

 이재는 『家禮』가 四禮에 따른 정리가 미흡하고 『喪禮備要』는 상례와 제례만을 주로 함으로서 고금을 아우르고 길흉에 통용될 수 없다 하여 『家禮』를 강령으로 하고 그 예는『喪禮備要』를 따르고 관례와 혼례를 보태어 『四禮便覽』을 엮게 되었다. 이 책은 선생이 돌아가신 뒤 傳寫하여 내려온 것을 그의 손자인 李采가 정본을 만들었고 그의 아들인 李光正이 1844년에 간행하였다.

숙종 시대 사람으로 알려진 金景游가 지은 것을 1836년(헌종 2년)에 그의 손자인 金衡魯가 간행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1897년(광무 1년) 후손 金台鉉이 다시 14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위의 기록들을 자세히 본다면 우리는 이런 제사에 관한 책들이 결국은 몇몇 양반학자들에 의해 한권씩 자필로 씌어졌지만 세상에 간행된 것은 19세기 중반이후부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널리 퍼진 책은 1900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당시의 여건상 간행되자 마자 퍼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책은 결국 조선이 국권을 상실할 때에야 비로소 퍼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그렇게나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믿었던 조상신을 거국적으로 제사지내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나라가 망하는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상신을 숭배하는 제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조상의 음덕으로 후손들이 발복해서 잘살도록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귀신의 비위를 맞춘다?

그런데 그 좋다는 제사를 일부만 드리다가 거국적으로 드리기 시작해서 십년도 안되서 나라가 망한다면 어떻습니까? 제사의 효능이 의문스럽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제사가 왜 조상숭배의 미풍양속이 아니라 우상숭배인가에 대하여 혹시라도 의문이 있는 이들은 제사의 기본 순서를 보면 이것이 단순한 조상숭배가 아니라 종교적 의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는 처음 사당에서 신위나 위패를 끄집어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처음 강신에서 나중에 향의 연기를 타고 신이 하늘로 돌아가는 것으로 의식이 끝이나는 철저한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상민들이 과연 사당이 있었을까요? 이걸 보면 제사는 결코 상민이나 가난한 양반들이 드릴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사의식 중에 헌다라고 있습니다. 차를 바친다

그런데 왜 차를 바친다고 하면서 실제로 우리나라의 제사에는 숭늉이나 물에 밥을 약간 말아서 놓을까요? 사실 차는 조선시대에는 엄청나게 비싸서 일반인들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숭늉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의식 중에 ‘헌다’가 있을까요?

그것은 제사가 주자의 집안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자가례가 고려에 전해졌고 17세기 중반이후 양반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해서 19세가 말에야 일반인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진 것입니다.

사실 제사를 수입한 이유는 불교를 배경으로 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이 제사는 반란의 음모로 생긴 겁니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당당한 군자의 이미지 하고는 전혀 안맞습니다. 고려라는 나라의 뒤통수를 치려고 만든 것이 바로 주자학의 도입입니다.

그러나 양반이라고 다 제사를 지낸 것은 아닙니다. 유교중에서도 주자학을 신봉하는 사림들이 제사를 지낸겁니다. 이들은 임진왜란이후에 비로소 세력을 펴기 때문에 적어도 17세기는 되어야 제사에 대해서 떠들게 된겁니다. 그전까지는 몇몇 전문가들만이 제사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말한 겁니다.

그러다가 조선말 가짜 양반들이 집단적으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제사의 법도를 모르니까 비로소 제사에 관한 책들이 널리 퍼지게 된 겁니다. 오늘날도 널리 읽혀지는 제사책이 1900년에 비로소 세상에 나온걸 보셨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길게 잡아도 제사가 거국적으로 드려지게 된 것은 100여년에 불과합니다. 주희 (주자)는 차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중국 복건성의 무이산에서 제자를 가르치면서도 차를 즐겨 마셨습니다. 무이수선이란 차가 중국에 있는데....... 말이지요.

자료로 남깁니다 -2-

신농씨보다 훨씬 전인 「BC 3898년에 한웅천왕께서 신시를 여시고 고시례(高矢禮)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하도록 하시고 주곡(主穀)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신시본기> 제3편에 나온다. 바로 여기 나오는 고시례가 바로 농사의 신이기 때문이다. 이 기록을 더 살펴보면 「이 때는 농사의 방법도 잘 갖추어지지 않았고 불씨도 없음이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산에 들어가니, 다만 교목들만 거칠게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앙상하게 말라 버린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는 것을 오래도록 침묵하며 말없이 보고 서 있는데 홀연히 큰바람이 숲에 불어 닥치자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일어나면서 서로 부딪쳐 비벼대며 불꽃을 일으키는데 번쩍번쩍하고 불길이 잠깐 동안 일어나더니 곧 꺼졌다.

이에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돌아와 오래된 홰나무 가지를 모아다가 서로 비벼 불을 만들었으나, 다만 완전한 것이 못 되어, 다음날 다시 교목의 숲으로 가서 왔다 갔다 하며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드는지라 고시씨는 크게 한 마디 외치면서 돌을 집어 던져서 이를 맹타했다. 그러나 겨냥이 틀려서 바위의 한 쪽에 돌이 맞아 번쩍하고 불을 냈다. 마침내 크게 기뻐하며 돌아와 다시 돌을 쳐 불씨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백성들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쇠를 녹이는 기술도 일어나더니 그 기술도 점차로 진보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부싯돌의 시작인데 지금 우리가 부싯돌로 부르는 것은 이렇게 돌로 쳐서 불을 얻는 방법을 단군의 넷째 아들인 부소가 다시 재현하여 백성들을 습기와 추위로부터 벗어나게 했기 때문에 부소의 ‘부’자와 고시의 ‘시’자를 따서 부싯돌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기 전에, 특히 들판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음식을 조금 떼어내어 고시례라고 하면서 세 조각 정도 버린다. 이것을 두고 혹자는 음식에 따라온 귀신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도 하고, 들판에 있는 잡귀신에게 조금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너무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다. 

우리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고, 불로 이렇게 익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여 주신 우리들의 조상인 고시(高矢)님에게 감사하다는 예를 표하는 마음에서 고시례를 하는 풍습이 생겼건만 지금에 와서는 왜 고시례를 하는지 그 의미를 모르고 재미로 고시례를 하면서 엉뚱한 소리들을 하고 있으니

여러분 웃기지 않습니까?

오늘날에도 제사를 지내고 사람들은 고시례를 행하지만 이들과 추석차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후세의 우리들은 전혀 무식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관점에서도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우스꽝스런 행동입니다.

더구나 단군을 부인하는 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제사와 이러한 고시례의 결합이 전혀 연결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민족의 전통과 미풍양속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남의 나라 개인의 집안 풍습을 따르고 정작 자기네의 역사는 잊어버리는 황당한 일을 하고 있으니 부끄럽고도 웃기는 일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한국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국적불명의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료로 남깁니다. -3-

양곤의 대표적 불교유적지는 시가지 북쪽 언덕에 자리한 쉐다곤파고다. 99.6m 높이의 황금탑이다. 2,500년 전 타부사·발리카란 두 상인이 부처의 머리카락 8개를 가져와 오칼라파 왕에게 전했고, 이를 모시기 위해 탑을 세웠다. 최초의 탑 높이는 27m. 그러나 지진으로 형태가 없어진 것을 15세기에 들어서 신소부 여왕이 자신의 몸무게만큼 금을 보시해 중건했다. 이후 이를 계기로 역대 왕과 국민이 오늘날까지 금을 보시해 증축되면서 지금의 높이가 됐다. 현재 탑에 덧칠된 금의 양은 70t. 4년에 한 번씩 덧칠한다.

탑의 일산(탑 꼭대기의 우산 모양)에는 보시받은 각종 목걸이, 귀걸이, 팔찌 등이 매달려 있고, 중앙에는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는 76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장식돼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티벳 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5세의 위상은 포탈라 궁에서 그가 받고 있는 대접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포탈라 궁에는 수많은 불상과 역대 달라이 라마들의 소상, 8명의 달라이 라마 시신을 모신 영탑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달라이 라마 5세의 영탑은 단연 두드러진다. 홍궁 중심에 위치할 뿐 아니라 15m의 높이에 11만 냥의 황금과 20만 개의 진주로 치장돼 있는 화려함도 다른 곳을 압도한다.

티벳 불교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5년 전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인도 보드가야에서 처음 접한 티벳 불교는 그들의 주황색 가사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티벳 승려들은 망명자의 신분이었지만 전세계에서 모여든 많은 불교도들 가운데서 두드러진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오랜 세월 닦아온 고도의 정신주의는 물질 위주의 현대 사회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1년 뒤 막상 라사에서 본 티벳 불교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화려함과 웅장함의 절정인 포탈라 궁과 거리를 오가는 누추한 티벳 사람들은 너무 조화롭지 못했다. 이곳에서 승려들은 지배자의 모습이 더욱 강했다. 포탈라 궁을 짓는데 100만 명의 인부를 동원한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여기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건축현상과 관련하여 할말이 많지만 다음에 본격적으로 설교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 영암교회 홍종일 목사님 설교 2012년 10월 7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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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영암교회는 가정교회 운동,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운동, 쉼을 소중히 하는 운동 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 백운공원 옆 /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은 strongbell@한메일 / stronghjs@네이버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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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러한 목사님의 주장은 파격적으로 들리고, 과격하게 들리고, 또 위험하게 들릴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과 정보의 교류가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이제 제사에 대해서 다른 인식을 가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제사라는 행위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오랜 전통이 있던 것도 아니며, 그 방법조차도 100년전에 발행된 책에 의존해야 하는 제사라는 행위. 이것은 우리 모두의 욕망이었지요. 축약하면, 양반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잔뜩 늘어나서, 제사를 통해서 "나는 양반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기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양반이 되어서 온갖 부역과 가혹한 세금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요.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말기에는 너나 나나 양반이 되었고, 너나 나나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고, 국가는 망조의 길로 접어듭니다. 여하튼 당시 사람들에게는 제사 행위가 신분 세탁의 증명수단으로서 기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바로 오늘날까지 이러한 제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누구를 위해서인가? 무엇을 위해서인가? 질문하지 않은 채, 수십년간 계속해서 내려왔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오랜 아름다운 전통" 이라는 금칠을 했지만, 실제로는 "무너져가는 사회시스템에 편승해서 모두가 한몫은 건지려는, 욕망에서 시작되었고, 그조차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던 행위" 에 불과하다는 것. 이러한 것을 오랜기간 전통이라고 믿고서 사람들이 명절마다 고생하고, 싸운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만듭니다.

조금만 멈춰서서 생각해봐도 당연할 것입니다. 내 딸, 내 아들, 내 손주가 고생해서 값비싼 과일과 각종 음식을 준비해서 나를 기억하는 것을 좋아할 것인지... 아니면 그 돈과 수고를 아껴서, 가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좋아할 것인지... 평소 왕처럼 대접받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당연히 저같으면 후자가 좋을 것입니다. 부모의 기쁨은 결국 자식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하, 물론 기독교에서 인간에 대한 첫 번째 지킬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가 나옵니다. 그러면 장수한다고까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여기서의 공경이라는 말은 무겁게 생각하다와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즉, 평소 부모님의 말을 무겁게 생각하고, 잘 지키려고 노력하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잘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면 좋겠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부모님을 가끔씩 생각하고, 그 때의 말씀들을 가슴 속에서 무겁게 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 2012. 10.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