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극동방송( 홈페이지 http://busan.febc.net/ )에서 홍종일 목사님의 설교가 2012년 11월 20일 저녁 8시 43분에 라디오로 방송되었습니다. 다시 듣기 주소를 아래 쪽에 링크를 겁니다. 방법은 쉬우니,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출처는 부산극동방송 다시 듣기 코너 입니다.
http://211.197.53.110/template/1/viewer/Mod_Audio.asp?BRD_ID=CS121105140628
1. 바로 상단의 주소 클릭. (211로 시작되는 주소)
2. 시간이 흐르는 막대기 바 (재생 스크롤 바) 를 43:00 로 이동시키면 바로 듣기 가능.
3. 처음 듣기를 하는 분은 극동방송 듣기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홍종일 목사님의 이번 설교 내용은 사도 바울의 이야기 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잘 알려진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베드로나 바울이 되겠지요.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이 바울의 서신이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바울은 영향력이 큰 인물이지요. 그런데 초기에는 이방인처럼 겉돌았던 "변방"의 인물이자, 긴 시간의 침묵을 거쳤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아니 대체 왜 이런걸까요? 예수님을 따르면, "짠~"하고 즉시 멋지게 좋은 일들이 생기면 될텐데요... 선한 일들을 한다는데 자꾸 욕만 먹고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음... 글쎄요... 저 개인적으로 이것을 "기다림"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제일 시간이 안 갈 때가 언제인가 라고 물을 때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시간" 이라고 답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럽고,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하게 산다고 해서 그 결과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더 편하게, 더 악하게 선택을 할 때가 점점 많아집니다. 쉽게 말해서 "기다림"이 사라져버린 현대 사회는 모두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분주하며, 시간 낭비는 죄악시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충격적인 것은 그것을 차별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발산한다는 것이지요. EBS의 실험에 따르면, 앞에서 경차가 잠깐만 늦게 출발해도 3초 안에 거의 즉시 빵빵 거리고, 고급차가 늦게 출발하는 경우 10초 가까이 조용하게 있는 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현주소 입니다. 기다림이 사라진 사회에서, 제일 먼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은 언제나 가볍고 약한 사람들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림의 시간을 우리에게 주는 까닭은, 약한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충분히 숙고하고, 우리에게 겸허함을 배우게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급하게 "이것이 바로 신의 뜻이다" 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하게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광신자 또는 이단들일 수도 있겠지요. 신앙이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결국 하나님과 나의 관계이며, 나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어떻게 관계가 하루 아침에 완벽해 질수 있을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과일이 긴 시간을 거쳐서 열매를 맺듯이, 인간관계도 아름답고 풍성해 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 정확하게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앞서가서 이끌려는 지도자의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바울은 눈이 멀기 전에 앞장서서 사람들을 박해하는데 열심을 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것은 결코 멋진 지도자의 길이 아닙니다. 진정한 지도자의 길이란, 긴 시간을 기다리고, 견뎌내며, 사람들의 아픔과 함께 움직이는 길이어야 합니다. 10년 가까이 이방인 생활을 했던 그 바울은 후에 이렇게 사람들에게 전하고 다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노예도 주인도, 남자도 여자도, 구별하지 않습니다" 우리야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는 까닭입니다 ;)
오늘날 우리 모두 구별짓기에 너무나 능숙합니다. 명품인지 아닌지를 구별하고, 무엇을 입고 있는지 순식간에 스캔하며, 남과 조금이라도 달라지기 위해서, 정확히 말하자면 남보다 더 높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합니다. 기다리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불안해 하는 우리의 모습들.
분명 역설으로 들리겠지만, 이렇게나 빠르고 스마트한 세상일지라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메튜 헨리의 짧은 이야기 덧붙이면 좋겠네요. "형통한 날에도, 역경의 날에도,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긴 시간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공통적으로 타인을 대할 때 겸손하게 대할 것을 말합니다. 빠른 삶은 인간을 오만하고 만들고, 느린 삶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드는 걸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힌트는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습격당한 사람을 보고서도 다른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헉, 강도인가? 그렇다면, 혹시 내 신변에도 위협이 있지 않을까?"를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갑니다. 그 후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은 여기서 역설적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 내가 지금 돕지 않으면,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될까?"를 생각했습니다.
빨리 가면서 남을 돕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급하기 때문에, 당장 내 처지부터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발걸음을 늦춘다면, 느리게 갈 수 있다면, 이웃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만 줄여야 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긴 장문은 어쩌면 부질없는 이야기 일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돕는 다고 해도 세상은 전혀, 조금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진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습격당한 사람처럼, 그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의 인생은 앞으로 모든 게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도우면서 살아야 하며,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세계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가게 해주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이름은 분명 "그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기" 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급하기 보다는 기다림을 아는, 그런 멋진 사람, 지도자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합니다. / 시북.
아직 오디오 설교파일이 없어서, 오디오 곧바로 재생은 이번 주에 지원하지 않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