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 이야기 입니다. 영화는 단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보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어쩐지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것은 이 하루가 대단히 특별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근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엔나 거리가 아름답고,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근사합니다. 물론! 에단 호크(제시역)가 잘 생겼고, 줄리 델피(셀린역)가 매력적이라서 영화가 더욱 즐거운 것도 사실입니다.
비포 선라이즈의 백미라면, 역시 감칠맛이 넘치는 찰진 대사 입니다. 인상적인 대사만으로도 리뷰를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서 토씨 하나 까지는 정확한 대사가 아닐 수 있으나, 대략적인 느낌을 살려낸다면, 아마 꽤나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나저나 감칠맛이 넘치는 대사라니요? 감칠맛에는 재밌는 두 번째 사전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뜻이지요. 네, 바로 그것이 담겨 있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 속으로 떠날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사람이며,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면 그 풍경 전체가 그림 속의 한 풍경처럼 느껴질 수 있고, 싫은 사람과 함께 멋진 명소를 가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요, 어쩌면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지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기차가 달립니다. 우연한 계기로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꽤 멉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호감을 느끼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3초. 서로가 싫지 않았던 그들은 단번에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했습니다. 어느새 마주하게 되었지요. 여기서부터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그냥 털어놓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 현재의 이야기 등등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이야기에 몰두합니다. 읽고 있던 책은 어느새 가방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흥미로운 책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지요.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삶이라는 녀석은, 그러고보면 많은 경험과 과거의 축적이고, 이것들이 모여나가면서 우리를 저마다의 특질로 구성합니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기차보다 더 빨리 흘러가지요. 훈남 제시가 내려야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제시가 셀린에게 작업을 거는 모습은 어쩐지 귀엽습니다. "오늘 하루를 함께 하면서 멋진 시간들을 보내지 않겠어?" 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두 사람의 비엔나 여행은 시작됩니다. 계획도 없습니다. 발이 가는대로 움직이고, 그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비로소 이름을 묻습니다. 후아유?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런데 잠깐! 제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꺼야. 너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명대사를 우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대로 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꺼야. 이 일을 계속해서 해보고 싶어."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젊음은 정말로 근사한 것이 아닐까요? 무슨 일이든 과감하고 치열할 수 있는 젊음의 순간은 언젠가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까지도 그렇게 지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조금 위화감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 굳이 묘지를 걸어가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러한 생의 선명한 뒷면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지만,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니까요. 그 유명한 경구도 있잖아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다시 영화로 돌아가 봅시다. 밤거리를 함께 걷던 제시와 셀린. 프랑스 아가씨 셀린은 아주 영감이 넘치는 대사를 합니다. "부모님은 68혁명을 겪고 싸워야 할 것이 분명했다면, 그래서 덕분에 나같은 사람이 부족할 게 없이 자랐음에도, 여전히 마음 속에서는 나도 싸워야 하는게 있는게 아닐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이 솔직하고 총명한 대사에 순간 저도 마음이 빼앗기는 줄 알았습니다 (웃음) 사람은 저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정말로 있습니다. 부족함을 느낄 줄 아는 이 마음에서 출발해서 문명이 건설된 것이 아닐까 할 정도입니다. 정녕 우리는 만족을 모르고,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걸까요?
이런 의미에서 기계화된 현대 사회에서, 굳이 소통하는데 기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전화부터 시작해서, 이메일, 문자메시지, 카톡카톡까지, 이 모든 게 있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가 아닐까요. 우리 마음 속에 꼭 필요한 게 있다면, 기계의존증을 벗어던지고, 사람의 체온을 더 느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이 있다는 셀린의 말은 엄청난 여운을 줍니다. 신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니까요.
놀랍게도 현대사회는 우리의 부족한 점을 자꾸만 자극해서, 무엇인가를 "소비"하게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보다는, 사람과 소비 사이의 관계만을 파고들어 간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사람과 소비 사이에는 이상하리만큼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만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인생을 충만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소비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소울메이트 한 명만 있어도, 우리가 지금보다 10배는 더 행복해지는 까닭입니다.
이 리뷰의 마지막은 마법(?)같은 대사로 마무리 하면 좋겠네요. "만약 이 세상에 마법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힘일꺼야"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힘, 너와 내가 연결되어서 통하는 것. 그래요. 마법은 다른게 아니에요. 바로 이것이겠지요. 감성을 울리는 연애영화로도 정말 좋은 작품입니다. 오늘 비포 선라이즈 이야기는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메마른 감성으로 일상이 힘들다면, 주말에 한 번쯤 이 작품을 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오늘도 끝까지 힘내시길 응원하며. / 2013. 0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