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싱글맨 (A Single Man, 2009)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6. 21:30

 지인 L양의 추천으로, 톰 포드 감독의 영화 싱글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톰 포드가 누군지부터 살펴봅시다. 90년대 밀라노에서 일했던 디자이너로서, 구찌의 여성 디자인을 담당했던 인물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는 미학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주연배우 콜린 퍼스 (조지 역) 의 깔끔한 슈트와 오래된 벤츠 자동차는 눈을 사로 잡습니다. 심지어 그가 살고 있는 집마저도 아름다운 구조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패션에는 문외한이고, 미학적 감각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이 말은 생각납니다. 아티스트리의 창립자 에디스 렌보그의 말 "세상의 모든 여자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이 영화는 동성애자가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오늘 리뷰는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인지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에 어울리는 저의 찬사는 이 대사 입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 역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그럼 오늘은 이 시선을 따라서 이야기를 출발해 보겠습니다.

 

 

 미리 밝혀두지만, 저는 성다수자인 이성애자 입니다. 따라서 글을 가급적 차분하고 사려깊게 쓰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풍자할 의도는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다만 이성애자의 시선과는 조금 다른 동성애자의 시선만이 있을 뿐입니다. 혹여 이 리뷰에 차별적 시선이 담겨 있다면, 저의 역량부족이므로 부디 너그럽게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성공한 교수 조지는 매력적인 남자 입니다. 지적이며, 유머스럽고, 신중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어냅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을 보내던 조지는 어느날, 충격적인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16년간 같이 교감을 나누었던 최고의 파트너 짐을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된 것입니다. 그 날부터의 그의 삶은 쟃빛이 되었습니다. 악몽에 시달리고, 한없이 가라앉는 우울감이 가슴을 사로 잡습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큰 고통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는 분명 "사랑하는 것을 잃은 상실감" 일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이 상실감은 채워지지 못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예를 들어, 지금 제 책상 위에는 도쿄대 강상중 교수님의 책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젊은 아들의 죽음 앞에서 강상중 교수님은 꾹꾹 눌러서 이 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책에는 빅터 프랭클의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하려네." 상실감 앞에서도 삶에 대해서 예라고 말하는 것. 오늘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미학과 색감에 대해서 언급할 역량이 전혀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조지의 인생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합니다.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결단이지요. 그의 선택은 죽음을 통해서, 사랑하는 이를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보여주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짐과의 입맞춤은, 바로 이 죽음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곧 죽기로 선택해도, 삶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기묘한 점입니다. 테니스를 치고 있는 젊은 육체는 조지의 눈에 한 없이 아름답게 빛나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조지의 인생은 쟃빛이 되었지만, 대조적으로 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생기 있게 저마다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은 여전히 아름답게 반짝이고, 청춘은 선명한 푸르름을 과시하듯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올드 맨"이 되어버린 조지는, 이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총알을 사러 움직입니다. 천천히, 하루를 음미하듯이 보내면서 말이지요.

 

 싱글맨의 미덕은, 조금도 과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사람에만 시선을 맞춥니다. 그리고 감히 표현하자면, "살아가는 것의 훌륭함"을 근사할 정도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누군가 떠나가면, 또 누군가 찾아온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것을 좇아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허무한 일들이 그렇게나 많지만, 놀라운 일들도 그렇게나 많다는 것을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것 투성이인 셈입니다.

 

 그런 소박한 느낌 가운데서도, 조지는 좀처럼 짐을 잊지 못합니다. 오랜 친구인 찰리가 설득해봐도, 조지에게는 짐의 빈자리는 누군가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인생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겠노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는 올드 맨이면서도, 스트롱 맨입니다.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그리고 그 순간을 지금 자신이 짊어지고자 할 뿐입니다.

 

 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젊은 제자 케니와 교감을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수영을 하는 강렬한 장면이 펼쳐지지요. 파도가 정확히 머리를 치고, 마침내 조지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되찾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인생을 앞에 두고 어찌 생을 스스로 마감할 수 있단 말인가. 수영을 마치고, 조지가 총을 서랍에 넣고서, 굳게 잠가버리는 장면은, 세련되고 근사합니다. 마이너리티면 어떻고, 괴로움을 겪으면 어떻습니까. 그럼에도 삶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결말에 대해서는 제가 해석할 수준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조지는 그렇게 갑자기 쓰러져 삶의 좋은 순간들을 두고서 떠나야 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만, 리뷰를 마치며 한 가지 힌트 정도는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고의 디자이너로서 90년대를 보낸 톰 포드 감독은 구찌를 떠나며, 어쩌면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아름다운 순간은 화려한 날 보다는 일상에서 빛나고 있었고, 그가 디자인 했던 명품 보다, 더욱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인간의 아름다움" 에서 예술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배우는 메시지는 "지금을 사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마지막 처럼 사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매일의 일상을 빛나게 느껴볼 것을 권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 과잉해석 일지도 모르나, 뭐 일단 제가 느낀 대로 써놓는게 정직한 리뷰가 되겠지요. 그 정도로 이 영화는 일상의 하루가 너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조차 아름답다는 것, 그 일상은 어쩌면 짐 같이 안타깝게 사고로 죽었던 그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고 원했던 하루라는 것. 바로 이 점을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응원하며. 건배!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