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써니 (Sunny,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1. 11:39

 설날.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올해로 이제 90대가 되는 할머니는 이상하리만큼 저를 귀여워하셨지요. 이번 설날에도 저는 할머니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용히 듣곤 합니다. 노인은 그 자체로 도서관 같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무래도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해주기 마련입니다. 경로당에서 아직도 현역으로 식사준비를 한다는 정정하신 할머니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밥짓기, 반찬하기가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많은 양을 준비하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 나이가 나보다 적은 할머니들도 많이 있지만, 젊을 때부터 봉사하고, 식사준비하고, 이런 것이 몸에 배여 있지 않으면 못 한단 말이지." 저녁 늦게 이 이야기를 듣자 마자, 저는 묘하게도 그 날 오후에 보았던 영화 써니의 장면이 겹쳐져 보였습니다. 그리고, 읽고 있던 책의 한 대목과도 겹쳐졌습니다. 삼중으로 겹쳐지면서 떠오르던 영감은 이것입니다. 인생이란, 저마다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각자의 삶의 역사가이다. 자, 그럼 즐거운 영화 속 이야기 출발합니다 :)

 

 

 써니는 여고생들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 입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추억보정"이라는 말을 씁니다. 추억은 원래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지고, 영화 포스터처럼 살짝 눈부시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도 추억보정이 잘 걸리는 편인데, 그래서 지금 보다, 어린 시절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밥벌이의 고단함 앞에서는, 그 때가 좋았지 라는 생각을 누구라도 해보았을테지요. 작가 루쉰처럼 "과거를 좋아하면 과거로 돌아가버려라" 라고 일갈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오늘은 감상적인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여고시절로부터 어느새 시간은 20년이 넘게 흘러서, 나미(유호정)는 40대 중반의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호사스러운 일상이지만, 반복되는 "사회적" 역할에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잃어갑니다. 그녀는 아내로서 자신의 맡은 바들을 책임져야 하고, 딸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에서의 소박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그녀는, 자꾸 저처럼 "추억보정"이 걸리는가 봅니다. "웃음이 가득하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여고 교복을 입어보는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미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벗삼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유는 있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 춘화가 지금 죽을 병에 걸려 있으니까요. 친구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듯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며, 나미는 산다는 게 참 부질 없어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영화는 극적인 방법으로 이 삶의 예측불가능성, 부조리함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고시절에 뭉쳤던 일곱은 저마다 꿈을 가지고 있고,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했지만, 긴 세월이 흘러서 지금의 모습은 그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요. 영화 내내 나오는 개그대사 "야, 넌 못 알아보겠어." 저는 이것이 써니의 핵심 키워드로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바랐던 모습과, 지금의 우리 모습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바뀌어져 있습니다.

 

 미스코리아를 꿈꾸었던 친구는 술집에서 일하고 있고, 쿨한 여신(!)포스를 자랑하던 수지는 어떻게 지내는지 행방도 묘연합니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친구는 시월드의 감옥에 갇혀 있고, 화가가 되고 싶었던 나미는 그림을 그려보지 못한지가 한참이나 되었습니다. 욕쟁이 친구는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했으나, 남편이 바람났고 (...) 써니의 리더 춘화는 죽기 직전입니다. 보험설계사 장미는 행복의 파트너 대신에, 구박의 파트너가 되어 있습니다. 사실 산다는게 그렇지요. 쓴다는 것도 그렇지요. 바라던 모습과는 적어도 한참은 동떨어져 있고, 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은 99%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너덜너덜해지고, 구질구질해져버린 일상. 나미를 중심으로 해서, 이들은 다시 한 번, 뭉쳐보기로 합니다. 압권인 장면은 나미의 딸래미를 위해서, 40대 중반의 아줌마들이 통쾌한 복수를 날리는 장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봄직한 판타지를 영화는 즐겁고도 화려하게 보여주는데, 우리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봐,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끈끈한 사이라고!" 하지만 공교롭게도 경찰서로 끌려가는 (...) 현실 앞에서, 그들은 미친 사람들 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여고 코스프레를 하고, 싸움질 하는 한국형 갱단 (웃음)

 

 아, 그리고 써니는 추억의 장면들을 잘 재현해 놓았다는 것도 숨은 미덕이지요. 저는 운좋게도 아주 어릴 때는, (가난한 지금과는 다르게;;;) 집안이 꽤 중산층이었는데, 그래서 레코드판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지금도 추억의 팝송 등을 좋아하는 것이, 아마 그 시절에 자주 레코드판으로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뭐, 여러가지로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들이 가득하다는 것이 써니의 다른 즐거움이지요. 추억과 현재를 넘나들며 써니는 인생에 대해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서론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우리는 저마다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 독특한 사람이다 라는 중요한 생각이지요. 예전 류승완 감독이 인터뷰에서 그는 오백만 관객이 보았던 흥행영화가 있다면, 그것은 단 한 편의 영화가 수백만번 상영된 것이 아니고, 500만 편의 영화가 상영된 것이다 라고 인상적인 말을 했지요. 즉 저마다 영화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같은 장면에서도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같은 영화라도 20대 때 보는 것과 40대 때 보는 것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까닭이 바로 "삶은 저마다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깊게 생각해볼 것은 "시간의 속도"에 관한 개념입니다. 흔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말하는데, 그렇다고 경험하는 폭과 깊이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행복한 추억"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행복하게 떠올릴만한 기억이 없는 시간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냥 지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 때 대체 무엇을 했는지, 전혀 추억이 없다는 것은 가장 슬픈 일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가는 연습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시간이 느리게 갈까요. "행복한 오늘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작은 열정"이 저는 해답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몇 자 안 되는 결론이지만, 저는 이 결론을 얻기 까지 아주 많은 삽질을 했습니다.

 

 영화 속 장면에서 비슷한 힌트를 찾는다면, 어린 시절의 나미가 용기를 내서, 자신을 싫어했었던 수지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손꼽을만 합니다. 이러한 용기를 내는 작은 노력이, 우리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암이 걸리든, 걸리지 않든,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면 죽음 앞에 서야 합니다. 그 때, 행복했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슬픈 인생이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써니는 영화 마지막의 장례식 장면이 밝게 그려집니다. 왜냐하면 이 여고 갱단은 (웃음) 멋진 추억을 품에 안고서 살아갈 수 있기에,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작은 열정을, 작은 용기를 내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의 오늘이 좀 더 풍성해 지기를, 좀 더 재밌어 지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언젠가 죽음 앞에 설 때에, 따뜻한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들에게 따뜻하고 소박한 선물을 할 수 있기를. 그 근사한 미래를 보여주는, 과거에 관한 영화, 지금까지 써니 였습니다! (여담으로, 어쩐지 오늘 리뷰는 꽤 마음에 듭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