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리뷰

시북(허지수) 2013. 2. 15. 15:12

 영감을 주는 영화는 여러 번 봐도 재밌고, 인상적입니다. 블랙 스완에 관해 이야기를 남겨볼까 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저예산 영화입니다. 발레장면 외에는 사실 크게 돈들어갈 일도 없겠지요. 철저하게 주인공 니나(나탈리 포트만)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천3백만 달러로 제작한 영화는, 그러나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3억 달러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렸으며, 많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정말 발레리나 처럼 나오는 나탈리 포트만은, 영화를 위해 10kg을 감량하고, 1년동안 가혹한 발레 특훈을 받으며, 열연을 펼쳤는데, 그녀는 이 영화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합니다. (물론, 표현하기 어려운 일부 발레연기 장면에서는 대역의 전문 발레리나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압권인 것은 그녀의 고통이 가득한 표정이지요. 생각할 것이 많은 영화, 블랙 스완의 이야기로 들어가 봅니다.

 

 

 극장에서 처음 블랙 스완을 봤을 때는, 솔직히 조금 무서웠습니다. 스릴러 같은 긴장감도 팽팽하게 흘렀고요, 그리고 다시금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안타까움 이었습니다. 불완전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인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전제하고 본다면, 오히려 그녀가 슬프게 까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블랙 스완을 "신이 되고 싶었던 욕망" 이라는 관점에서 리뷰를 시작할까 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주인공 니나는 드디어 꿈꾸던 그 날을 맞이했습니다, 공연의 주연으로 발탁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감격에 벅차서 눈물까지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습니다. 너무 기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려본 인생이라면 알 수 있겠지만, 이런 순간은 살아가면서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성공의 그 자리,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인내를 겪어야 했을까요. 기쁨의 순간은 힘든 많은 시간과 함께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이제 공연의 주연이 되었고, 백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두 가지 연기를 해내야 한다는 것! 화이트 스완은 그녀의 장기이자,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골칫거리는 이 반대편입니다. 블랙 스완을 아름답고 매혹적이게 소화해야 하는데, 이게 좀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니나가 왜 블랙 스완을 연기할 수 없는지 세심하게 말해줍니다. 그녀는 하얀 옷을 입고 다니고, 집에는 인형이 가득하고, 내면에는 어머니의 규율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한 번에 모두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생활방식을 한꺼번에 바꾸는 일은 대부분 불가능합니다.

 

 괴로워 하던 니나는, 주연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검은 길을 향해서 한 걸음씩 발을 디딥니다. 영화 블랙 스완이 매우 매력적인 것은, 이 모습이 결코 가면을 쓰는 것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마치 원래 자신의 내면에 검은 모습이 다 들어있었는데, 그것을 이제 해방하는 것처럼 섬세하게 그녀의 감정변화를 담아냅니다.

 

 니나는 달라집니다. 하지 않던 말을 내뱉기 시작하고,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고함을 치고, 술을 마시며, NO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제 그녀는 두 가지 모습을 완벽히 연기해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주연의 꿈"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무명으로 살아가는 엄마처럼 되는게 끔찍히도 싫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검은 색으로 온몸을 칠하더라도, 찬사받는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쯤에서 아우렐리우스의 이 말이 어울리겠네요. "시간이 흐를 수록 영혼은 생각의 빛깔로 물든다" 니나의 영혼은 그렇게 물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머릿 속이 욕망으로 사로잡혀가기 시작하자, 그녀의 영혼마저도 서서히 검게 변해갑니다.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고, 그동안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들이, 마치 쓰레기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좋아하던 달콤한 케이크마저 역겹게 보인다는 점을 영화는 매우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성공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멀리하고, 성공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가까이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녀의 공연장면에서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화이트 스완을 아름답게 연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블랙 스완을 치명적인 매력으로 연기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 버립니다. 시적 표현을 감히 써보자면, 니나는 이제 "밤의 아름다움"이 된 것입니다. 낮의 따스함은 온데간데 없고, 밤의 유혹과 욕망이 그녀를 춤추게 합니다. 두 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연기해서, 신들린 연기를 펼치고 싶었던 발레리나는 그렇게 고통 속에서 변하고 만 것입니다.

 

 힘(또는 재능)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힘은 우리를 신으로도 만들어 주고, 악마로도 만들어 줍니다.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라는 개념은 어쩐지 복잡한 방정식처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영화는 우리가 하얀 길인지, 검은 길인지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쪽을 선택하면, 한 쪽을 포기해야 함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시점에서 본다면, 영화 블랙 스완은 아주 근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하게도 될 수 있고, 악하게도 될 수 있는,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즉 우리 안에 천사 같이 깨끗하고 순백의 마음이 있는 동시에,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욕망에 사로잡힌 검은 마음이 함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세상에 악마가 있다면, 우리를 직접적으로 할퀴기 보다는, 우리의 검은 마음이 우리를 사로 잡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그 선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예산에, 한달 반의 시간을 가지고도, 블랙 스완처럼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긴 시간 동안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도, 망작이 나오기도 합니다. 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계속 도전해 나가는 "말도 안 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 적당히 안주하거나, 적당히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생도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얀 색이 되라, 검은 색이 되라 그것은 개인의 문제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한채, 죽음 앞에 설 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영화의 다소 충격적인 결말을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립 박수 앞에서 찬란하게 쓰러져가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 앞에서, 저는 제 나름대로의 마이너 해석을 내놓고 싶습니다. 우물쭈물 어정쩡하게 시간만 낭비하면서, 허무하게 살기 보다는, 설령 자신의 모습이 생각보다는 다르게 변할지라도, 일단 부딪혀 보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요? 음악으로 친다면 마이너한 코드들은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도미솔의 깔끔한 화음이 주지 못하는, 미묘한 여운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상처받고, 그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죽어갈지라도, 처절하리만큼 그 괴로움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니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완벽이라는, 함부로 닿을 수 조차 없는 신의 영역에 도달하고 싶었던 그녀의 욕망 가득한 열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겠지요.

 

 이제 욕망 가득한 말을 적어보며 리뷰를 마칩니다. 저는 여전히 맑은 마음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동시에 결정한 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두 가지 모두가 안 되기 때문에, 오직 용기 없음을 탓할 뿐입니다 :) / 2013. 0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