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번을 보았는지, 2-3년에 한 번씩 꼭 보는 것 같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참 근사하게 그려지는 영화 콘스탄틴 입니다. 천사 가브리엘 역할을 맡은 인상적인 여배우 틸다 스윈튼도 대단히 매력적입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이라는 다른 영화를 통해서, 틸다 스윈튼은 2008년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여하튼 이 영화 콘스탄틴에서도 가브리엘의 강력한 존재감은, 처음 봤을 때는 거의 경악적인 수준이었지요. 인간을 지독하게 부러워하던 그녀의 질투 같은, 강하고 기묘한 표현력은 지금도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아, 이제는 이 이야기도 제법 잘 알려져 있지만, 농담반 진담반으로 콘스탄틴은 역시 금연 캠페인 영화였다 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종교계에도 널리 퍼져있는 개그를 덧붙이자면, 신부님 혹은 목사님, 담배나 술 자꾸 하면 지옥에 가나요? 라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들을 것입니다. "뭐, 지옥까지는 가지 않을 것 같은데, 확실히 천국에 좀 더 빨리갈지는 모르겠구나." 백해무익한 담배, 물론 애연가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 달콤한 담배. 너무 가까이 하다보면, 우리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담배를 사랑하고도 오래도록 무병장수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통계적으로 담배는 가까이 할수록, 몸이 상할 위험성이 치솟는다는 거! 잊지 맙시다!
콘스탄틴은 종교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이 등장하며, 천국과 지옥이 묘사됩니다. 천사도 등장하고, 악마도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지루하기(?) 십상인 설교는 조금도 나오지 않고, 시원한 액션 장면은 필요할 때마다 화끈하게 나옵니다. 제작비만 거의 1억 달러로 알려져 있는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니까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무적을 자랑하는 존 콘스탄틴은 그 강한 힘이 거의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힘을 기본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데, 데몬 앞에서도 조금도 망설임이 없으며, 담배 한 개피가 꺼지기 전에 이 데몬 개XX를 없애버리고자 노력하는 폼나는 인간이지요. 존 콘스탄틴이 들으면 조금 억울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을 이른바 "쾌락주의자" 라고 부르면 어울립니다. 쾌락주의자는 굳이 몸의 즐거움만 탐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만의 만족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자신이 잘난 맛에 살아가는 나르시스트, 그래서 비교우위에 있는 것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모두가 쾌락주의자가 될 위험이 아주 높습니다.
종교적 세계관의 프레임을 통해서 본다면, 보통 신이 사랑하는 인간이란, 겸손한 인간, 기도하는 인간, 잘못에 대해 회개하는 인간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콘스탄틴은 한 가지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감에 차 있으며, 기도는 나약한 인간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잘한 것은 많아도, 잘못한 것은 찾아봐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이 잘 표현했듯이, 그런 식으로 (잘나게) 살아서는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꽤 들어맞습니다. 이건 부자가 천국에 가기 어려운 것과 거의 흡사합니다. 부자는 많은 재능으로 바꿔써도 될 것입니다.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는 그 자체로 폼나게 살 수 있으므로, 대부분 거추장스러운 신 따위가 불필요할테니까요.
그러므로 존 콘스탄틴이 이 세계에 대해서, 이해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균형 따위"를 추구하고 있기에, 이 세계를 거의 역겹다는 투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참 맞는 말입니다. 신은 인간을 장난감 정도로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좋습니다 :) 가끔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일부 사람들이, 복지 라는 단어에 거의 거품 물고 반대하는 것도, 부의 불균형에 대해서 자율을 추구해야 한다며 개입하지 말고 좀 놔두라고 강하게 항의하는 것도, 콘스탄틴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파워와 균형은 그야말로 정반대의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주장한 개념을 빌려오면 이 대목을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겠네요. 사람이 행동하는 동기, 그 욕망에 대해서, 아들러는 우월성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모두가 균형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면, 내가 잘났다는 것 (우월성) 을 증명할 길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땅의 능력자들은 가진 것으로 남을 도우며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가진 것으로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무나 따라하지 못하는 것들로 자신을 치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쯤가면, 인간에게 신성이 있으면, 그만큼 악한 내면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게 정말 분명합니다.
잘 나가던 콘스탄틴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까닭은, 재밌게도 사랑 입니다. 권력관계를 단번에 뒤집고 무너뜨릴 수 것이 사랑이 가진 기묘한 힘이지요. 콘스탄틴은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랐고, 마침내 자기희생에 대해서 깨닫고, 그것을 실천합니다. 나는 죽어도 좋지만, 저 사람의 바람은 반드시 이루어 달라는 그 기도. 희생이라는 단어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한 무게감 입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가 천박함이라면, 너부터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도 덧붙이면 좋겠네요. 의사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지독한 배고픔을 견디며, 어떤 사람들이 빵조각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보고 커다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인간만이 가능한 이 고귀한 행위를 훗날 또 목격합니다. 병으로 죽기 직전의 인간이 마지막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간병하는 사람에게 먼저 들어가 쉬라고 말한 후 다음 날 조용히 숨을 거둔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앞설 수 있는 존재, 천사마저도 부러워 할만한 인간의 놀라운 면입니다. 인간은 짐승 보다 더 추해질 수 있지만,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며 최후까지도 배려심을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아, 콘스탄틴에서는 지옥을 묘사한 대목도 인상적이지요. 불이 가득하고, 고통이 가득하다는 것은 물론 뻔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점이 재밌습니다. 종교계에서는 금식이라는 말을 가끔 씁니다. 싸움의 무기로, 단식투쟁이라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금식이든, 단식이든 간에 물은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지요. 그런데 물이 없다 라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옥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이 살 수 없는 곳, 견딜 수 없는 곳에 대해서 지옥이라 부르면 어울릴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현실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물 한모금만 이라는 간절한 바람마저, 이루어지지 못할 때, 무거운 공기 속에서 괴로워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 한모금 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든 살아갈 때, 나아가 세계를 바꾸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세계가 지옥으로 변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콘스탄틴이 또 다시 생명을 연장 받으면서 막을 내립니다. 신을 경멸하고, 헤비 스모커에, 잘난 맛에 사는 인생을, 신이 단지 그가 자기 희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한다는 사실에, 타락천사 루시퍼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기회를 얻었을 때, 콘스탄틴은 말합니다. 그는 매우 매력적인 말을 합니다. "내가 알게 된 게 있다면, 신이 우리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야 말로, 저는 그가 가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것이 믿음입니까, 원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남들이 다 돌을 던질 때, 스톱 이라고 말하고, 남들이 다 욕하고 침뱉을 때, 그들에게 잘못이 없다 라고 말하는 존재입니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도 말도 안 됩니다. 너같은 죄인은 죽어라, 혹은 너희들 다 복수하겠어 라고 말해야 아주 속시원한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신은 움직이지요. 저도 솔직히 아직 머리로는 이해를 못 합니다 :)
제가 콘스탄틴을 여러본 이유는, 그건 아마도 사람이 누리는 특별함 때문입니다. 인생은 짧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신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주지만, 그럼에도 산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늙지도 않고, 힘도 있고, 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천사나 악마에 비한다면, 인간의 삶이란 덧없고 순간이며 무의미 하게 느껴집니다.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비교 따위는 치워버릴렵니다. 저는 그저 오늘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고된 밥벌이도 탓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해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받은 게 아닐까 싶은 하루입니다. / 2013. 02. 리뷰어 시북.